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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로봇중독 | 김소연, 임어진, 정명섭 (별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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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24 14:03

근미래의 아이들은 어느 날 부모님께 이렇게 물을지도 모른다. 스마트폰이 뭐예요? 기술의 발달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다. 다이얼식 전화기를 모르는 사람들이 더 늘어나고 있다. 컴퓨터 저장장치인 디스켓을 본 적 없는 아이들이 성년이 되었다. 우리가 아는 기술의 발달과정은 연속성 안에서 체험과 이해의 단계를 밟으며 진행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태어나서부터 그 기술을 체험하고 자라난 신인류를 마주하고 있다. 가끔 어린아이들이 휴대전화나 태블릿을 조작하는 모습을 보면서 놀라고는 한다.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려서부터 마주한 기술의 영향으로, 미래의 아이들은 다른 사유와 행동양식을 가질 것이 분명하다. 기술과 관련한 우리의 사유 방식이 윗세대와 비슷하면서도 조금은 다른 것과 같을 것이다. 그리고 이 다음 세대들이 겪는 더 변화의 폭은 우리보다 클 것이다. 기술 발달의 격차가 다르기 때문이다. 

학창시절 미래 생활을 추측한 상상도를 떠올리면 날아다니는 자동차 외에는 거의 모든 것이 상용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심지어 날아다니는 자동차마저도 기술적으로 구현할 수는 있다고 한다. 이 또한 기술에 맞는 새로운 법적ㆍ사회적 기준을 만드는 일과, 연료 문제 정도가 해결된다면 곧 우리 눈앞에 등장할 것이다. 기술의 발달엔 이렇게 점점 가속도가 붙고 있다.

발전하고 있는 수많은 기술 중 현재 일부 상용화가 된 것도 있다. 바로 자율주행 기술이다. 인공지능 기술의 눈부신 발달은 먼 미래의 일이라고만 여겨졌던 자율주행 자동차가 실험적으로 도로를 달리게 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의 발달은 인간의 삶이 더 풍요로워질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 외에도 수많은 문제를 품고 있다. 최근 중학생들과 자율주행 자동차에 대해 토론을 했다. 자율주행 자동차가 사고의 순간에 누구를 살리려고 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가 주제였다. 사고가 날 때의 순간에 자율주행 인공지능은 어떤 판단을 내리도록 설계되어야 하느냐는 질문을 하자, 아이들은 희생자를 제일 적게 나오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차, 운전자의 안전은 2순위가 되는 것인데 구매자들이 그 차를 신뢰하고 구매하겠느냐는 질문을 하자 아이들은 고민에 휩싸였다. 다시 몇몇 아이들이 운전자 보호를 우선으로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만약 탑승자만의 희생으로 거대한 사고를 막을 수 있는 순간에도 반드시 우선적이어야 하느냐는 질문을 했다. 덧붙여서 만약 희생자의 수가 동일하다면 인공지능은 어떤 선택을 하여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질문했다. 아이와 어른, 남성과 여성, 나아가서는 부자와 빈자까지 항목을 세분하자 아이들은 결국 “너무 어렵네요”라고 말하며 선뜻 답을 내지 못했다. 잠시 침묵 후에, 답을 내지 못했다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고 아이들에게 설명해 주었다. 문학과 철학, 인문학 같은 것들이 이런 고민을 이끌어내는 일이며, 독서는 사유하고 망설이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과학소설과 영화들의 단골 주제는 새로운 기술과 만나는 지점에서 인간이 가진 폭력성과 모순이 드러나는 것이다. 김소연의 「특이점을 지나서」는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로봇과 그 로봇을 대하는 인간들의 내면을 보여준다. 우선 이 단편을 읽으면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로봇이 인간의 창조물이면서 인간의 능력을 웃도는 일이 가져오는 공포만을 주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미래 기술에 대한 공포만을 막연히 생산하는 독법으로는 이 소설을 제대로 읽을 수 없다. 이 공포는 사실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배척이 문명사회의 일원으로서 상대적으로 낙후된 문명을 무시하는 태도나 백인우월주의, 식민지 담론, 귀족주의와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소설의 화자 ‘오지영’과 겉으로는 모범생이지만 로봇에 대한 공포와 자격지심을 가진 ‘진용’, 그리고 인간과 흡사하면서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로봇 ‘이니’의 관계는 로봇이라는 소재를 뺀다면 우리의 역사에 항상 있어 온 문제다. 이는 사회적으로 우월한 위치를 선점한 세력과 하층민의 갈등, 식민지 교육을 받아 제국의 인간보다 더 뛰어난 결과물을 내놓는 피지배자 간의 갈등과 균열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제국주의의 해체를 가져온 이런 사건은 이제 과학의 발달과 ‘특이점’을 통해 다시 한번 도래할 것이다. 기술의 발달이 가져온 문제들은 없던 현상이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인간 사회에서 끊임없이 돌고 돌던 문제임을 수없이 상기해야 한다. 그래야만 기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벗어나 문제의 핵심에 다가갈 수 있다. 소설의 마지막에 ‘이니’의 제안을 두려움 없이 받아들여 자신의 본모습을 찾게 되는 ‘지영’처럼 말이다.

소설집의 표제작인 「로봇 중독」 역시 비슷한 주제를 가지고 있다. 주인공 ‘선우’는 3D프린터 설계회사의 연구원인 엄마의 도움을 받아 로봇을 제작한다. 지니어스의 줄임말인 ‘지니’라는 이름을 가진 로봇은 처음에는 이름과 다르게 미숙하고 어리숙하기만 하다. 그러나 그것도 아주 잠시뿐이다. ‘지니’는 무서울 정도로 성장하여 곧 물질적 풍요에 무감각해진 ‘선우’와 ‘재호’, ‘승호’보다 더 인간적이며 타자를 소중히 하는 모습을 보인다. ‘지니’는 나아가 영웅적 행위에 관심을 가지고 이타적인 고민까지 하게 된다. 인간은 성인이 되고 사회적 존재로 성장하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과 자원을 필요로 한다. 심지어 인간은 그 자원마저도 알뜰하게 사용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로봇의 덕을 보게 될 미래의 인류도 여전히 무책임하고 무지하며 스스로에게만 관대해도 되는 걸까?

마지막 작품인 「거짓말 로봇」은 인류가 이러한 경각심 없이 살아갔을 때의 세상을 가정한 소설이다. 인류는 핵전쟁으로 지구를 살 수 없는 곳으로 만들고 화성으로 이주한다. 거기에 더하여 스스로 생존할 능력이 없어 로봇에 기대 생존을 이어나간다. 그러면서도 로봇을 통제하고 그들 위에 군림하는 것이 당연하다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뛰어난 로봇을 두려워해 일부러 성능을 제한하고 그것도 모자라 거짓말이 가능한 로봇으로 로봇들을 감시한다. 거짓말이 가능한 로봇은 인간의 손에 통제되고 있었지만, 선하고 속임수를 모르는 주인공 ‘조명욱’을 속여 탈출에 성공한다. 주인공 ‘명욱’의 아버지는 인간과 로봇의 공존을 생각하는 사람으로, 거짓말 로봇을 돕는다. 거짓말 로봇은 인간을 믿지 않고 자신의 생존만을 위해 거짓말을 하며 탈출의 기회를 노린다. ‘명욱’과 그의 아버지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탈출할 기회를 노리지만 쉽지 않다. 거짓말 로봇은 들키지 않기 위해 ‘명욱’과 같이 행동하던 중 로봇을 혐오하는 ‘검은 두건단’을 마주치고 큰 위기에 빠지지만, ‘명욱’의 도움으로 위기를 벗어난다. 거짓말 로봇은 그 이후부터 ‘명욱’과 그의 아버지를 신뢰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관리소장으로부터 추적당해 붙잡혔을 때, 관리소장이 생존을 미끼로 진실을 요구하지만 거짓말 로봇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타인을 위해 거짓말을 한다. 이 소설은 거짓말을 통해서 옳고 그름의 가치를 판단한다. 사회는 기득권의 생존을 위한 거짓말은 정당하고, 도구로 사용되는 이들의 거짓말은 나쁜 것으로 받아들인다. 인간의 욕심 때문에 벌어진 핵전쟁 이후에도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그들은 같은 잘못을 반복할 것이다.

작품은 ‘명욱’과 그의 아버지의 진실한 태도가 공존의 열쇠임을 말미에 보여준다. 우리가 먼 미래에 벌어질지도 모를 일들을 걱정할 때, 되돌아봐야 할 것은 지금의 우리이다. 세 작품 모두 로봇이나 인공지능을 마주한 미래 세상을 소재로 쓰였지만, 주제는 모두 인간의 파괴적인 본성에 대한 경고이자 반성을 촉구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막연한 두려움은 오히려 인간의 실수와 실패를 유발한다. 미지의 전염병 앞에서 타자를 의심하고 밝혀진 과학적 사실을 외면하는 사람들이 있다. 과학과 지성의 발달 앞에서 더욱 확실해지는 사실은 인간 문명이 세계를 이해한 것보다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더 많다는 것이다. 지식에 대한 갈망과 정확한 이해만이 인간의 멸망을 막을 수 있다. 로봇을 두려워해서 로봇을 공격하는 무지한 자들이 인간들까지 망가뜨리기 전에 우리는 반성하기 위해 독서하고 망설여야 할 것이다.

- 이범근 (동일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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