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로봇, 역설의 상상력과 생태적 세계관의 즐겁고 행복한 만남
와일드 로봇은 “기발한 상상과 독특한 표현”으로 자신만의 독창적인 그림을 선보여 온 피터 브라운이 어린이를 위해 쓴 첫 번째 소설이다. 흔히 우리가 자기 노래를 직접 만드는 가수를 ‘싱어 송 라이터’라는 특별한 이름으로 귀하게 부르듯, 이제 우리는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제한된 역할에서 벗어나 자신의 글과 그림을 함께 창작하는 피터 브라운을 ‘그림책작가’라는 특별한 이름으로 귀하게 불러주어야 한다. ‘그림책작가’ 피터 브라운이 쓴 첫 번째 소설 ‘와일드 로봇’은 역설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작품이다. 주지하듯 역설은 일상에서 공존할 수 없는 두 개의 모순적인 사물 또는 관념을 병치하여 일상 너머의 진실을 포착하는 수사법이다. ‘와일드 로봇’의 역설은 제목에만 한정되지 않고, 소설 전체로 확장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와일드 로봇’에 구현된 상상력을 ‘역설의 상상력’으로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피터 브라운은 이러한 ‘역설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평범한 로봇 ‘로줌 유닛 7134’가 특별한 ‘와일드 로봇’이 되는 과정을 흥미로운 모험 서사와 감동적인 성장 서사 그리고 독창적인 그림을 통해 전달한다. 그리하여 ‘와일드 로봇’은 좋은 어린이 소설이 대부분이 그러하듯,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의 마음을 얻는 데도 성공한다. 로봇 ‘로즈’의 모험을 통한 성장은 위장 벌레에게 배운 위장술로 밤낮으로 다양한 동물들을 관찰하여 마침내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는 데서 시작된다. 로봇 ‘로즈’는 동물들과 그들의 언어로 소통할 수 있게 되지만, 동물들은 여전히 “넌 정말…… 자연스럽지 않아!”라며 로봇 ‘로즈’를 괴물로 오해한다. 이렇듯 로봇 ‘로즈’와 ‘동물들’ 사이에는 언어적 소통만으로 극복할 수 없는 높고 견고한 오해의 벽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러한 높고 견고한 오해의 벽은 로봇 ‘로즈’와 기러기 ‘브라이트빌’이 모자 관계를 맺는 과정과 이를 바탕으로 로봇 ‘로즈’와 여러 동물이 친구 관계를 맺는 과정이 맞물리면서 서서히 붕괴한다. 다시 말해, 로봇 ‘로즈’와 기러기 ‘브라이트빌’의 ‘가족애’가 로봇 ‘로즈’와 여러 동물의 ‘우정’으로 확장되면서 로봇 ‘로즈’와 기러기 아들 브라이트빌 그리고 동물들은 단순한 소통 단계를 넘어 진정한 공존 단계로 진입한다. 이렇게 공존 단계로 진입한 로봇 ‘로즈’는 더 이상 평범한 로봇 ‘로줌 유닛 7134’가 아닌 특별한 ‘와일드 로봇’이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브라이트빌을 포함한 여러 동물 또한 평범한 존재가 아닌 특별한 존재가 된다. ‘그림책작가’ 피터 브라운이 쓴 첫 소설 와일드 로봇은 생태적 세계관을 성공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이러한 생태적 세계관은 소설의 인물, 소설의 구성, 소설의 시간과 공간, 소설의 주제에 이르는 소설의 모든 국면에 촘촘히 스며들어 있다. 그중에서 소설의 주인공을 인간(남성)이 아닌 로봇(여성)으로 설정한 것과 소설의 공간을 문명 공간이 아닌 야생 공간으로 설정한 것이 가장 탁월한 소설적 전략과 장치라 할 수 있다. 전자(소설의 주인공 설정)와 관련해서는, 이 소설이 인간(남성)이 아닌 로봇(여성)을 주인공으로 설정함으로써 인간중심주의와 남성중심주의를 동시에 넘어선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가 여전히 생물학적 섹스와 사회학적 젠더를 자동화하여 고정된 성정체성과 성역할을 강요하고 있다는 점에서 ‘로즈’의 소통지향적이고 관계지향적인 여성성은 각별하고 소중하다. 이 각별하고 소중한 능력 덕분에 로즈는 기러기 ‘브라이트빌’과 모자 관계를 맺을 수 있었고, 여러 동물과 친구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따라서 이러한 ‘로즈’의 여성성이야말로 이 소설의 생태적 세계관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후자(소설의 공간)와 관련해서는, 이 소설이 문명 공간이 아닌 야생 공간을 공간적 배경으로 설정함으로써 가까운 미래를 디스토피아적으로 재현하는 이제는 익숙하고 진부한 서사에서 벗어나 가까운 미래를 유토피아적으로 재현하는 상대적으로 낯설고 참신한 서사를 만들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피터 브라운은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던 ‘오래된 과거’라는 유토피아적 서사를 로봇과 자연이 공존하는 ‘가까운 미래’라는 유토피아적 서사로 바꿔 씀으로써 인간과 로봇 그리고 자연의 공존 가능성을 깊고 넓게 탐구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인간과 로봇 그리고 자연의 공존 가능성은 ‘고향 상실 서사’와 ‘고향 회복 서사’라는 두 개의 서사로 구체화 된다. 이 두 개의 서사 중, ‘고향 상실 서사’가 구체화된 작품이 와일드 로봇 시리즈 1권에 해당하는 ‘와일드 로봇’이고, ‘고향 회복 서사’가 구체화된 작품이 와일드 로봇 시리즈 2권에 해당하는 ‘와일드 로봇의 탈출’이다. 따라서 와일드 로봇 시리즈는 각각 독립적이면서 동시에 상호 의존적이다. 아래 인용한 와일드 로봇 시리즈 1권에 해당하는 ‘와일드 로봇’의 마지막 부분이 이 점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로즈가 알을 주웠을 때부터 브라이트빌은 로즈의 아들이었다. 로즈는 브라이빌을 죽음에서 구했고, 브라이트빌은 로즈를 죽음에서 구했다. 로즈가 그렇게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아들 덕분이었다. 계속 살아가려면, 그리고 야생으로 돌아가려면, 가족과 친구가 있는 섬으로 돌아가야 한다. 로즈는 하늘을 날면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필요한 수리를 받는다. 새로운 삶에서 탈출한다. 고향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는다. 위에서 인용문이 명확하게 보여주듯이, 특별한 ‘와일드 로봇’ ‘로즈’는 야생의 섬을 반드시 돌아가야 할 고향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문명사회에서 특별한 ‘와일드 로봇’ ‘로즈’는 ‘테크랩산업의 자산’이자 “결함이 있”는 평범한 ‘로줌 유닛 7134’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평범한 ‘로줌 유닛 7134’가 아닌 특별한 ‘와일드 로봇’으로 살기 위해서 ‘로즈’는 반드시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 독자들은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가 멀고 긴 모험을 마치고 진정한 왕으로 귀환하는 것처럼, 야생의 섬의 특별한 ‘와일드 로봇’ 역시 멀고 긴 모험을 마치고 진정한 ‘와일드 로봇’으로 귀환할 것을 기대하고 응원한다. 따라서 ‘와일드 로봇’ ‘로즈’의 본격적인 모험과 성장은 ‘와일드 로봇’ ‘로즈’가 문명사회를 탈출하여 고향인 야생의 섬으로 귀환하는 과정을 그린 ‘와일드 로봇의 탈출’에서 비로소 완성된다고 할 수 있다. 야생의 섬이 아닌 문명사회에서 벌어지는 ‘와일드 로봇’ ‘로즈’의 모험과 성장은 더욱 파란만장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그림책작가’ 피터 브라운의 첫 소설 ‘와일드 로봇’을 역설의 상상력과 생태적 세계관이라는 두 개의 키워드에 초점을 맞춰 살폈다. 피터 브라운은 역설의 상상력과 생태적 세계관을 통해 평범한 ‘로줌 유닛 7143’이 특별한 ‘와일드 로봇’ ‘로즈’가 되는 과정을 흥미롭고 감동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모험의 서사와 성장의 서사를 효과적으로 결합한 탁월한 이야기꾼으로서의 면모와 이 두 서사를 매개하고 종합하는 독창적인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면모를 동시에 보여준다. 이러한 피터 브라운의 면모는 그림이 서사를 시각적으로 반복하거나 서사가 그림에 종속되는 한계를 넘어 서사와 그림이 상호 변증법적으로 결합하여 온전한 하나의 유기적 전체를 구성하는 성과로 나아간다. 그리고 이것이 이 소설이 어린이만 읽는 소설이 아닌 어른도 읽는 소설이 되는 이유이다. 또한 이것이 이 소설이 흥미로운 모험 서사를 즐기는 독자도 감동적 성장 서사를 선호하는 독자도 그리고 독창적인 그림을 선호하는 독자도 모두 만족시키는 이유이기도 하다.
류찬열 (중앙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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