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너머의 세상
1. 빅터는 젊고 활력이 넘쳐서 30대로 보이지만 사실은 250살이다. 5.60대에 심한 심장병을 앓았지만, 인공심장을 이식받은 후 마라톤을 뛸 수 있게 되었다. 100년 전쯤에는 당뇨병에도 걸렸지만, 인공췌장을 이식받았다. 사고로 팔을 잃었지만, 더 튼튼한 인공 팔을 달았고, 수명이 다한 망막 세포를 컴퓨터 칩으로 교체하여, 20대의 시력을 회복했다. 뇌 신경을 이식받아 뇌 기능을 강화한 뒤로는 기억을 확장하고 지식도 자유자재로 다운로드하여, 그 어느 때보다 영리한 상태이다. 항노화 요법으로 개발된 나노로봇이 세포 곳곳을 돌아다니며 질병이나 노화 관련 DNA를 교정해 젊은 신체를 유지해준다. 250년을 살며 가장 힘들었던 일은 첨단기술을 거부한 아내가 65세에 ‘자연스럽게’ 세상을 떠났던 일이었다. 아내를 잃은 상실감은 세월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빅터는 첨단기술을 누리고 살아왔지만, 기술에 대해 양가적인 감정을 느낀다. 기술의 도움으로 삶을 유지해온 것은 다행이지만, 언제 어떻게 죽을지가 두렵기 때문이다. 원한다고 해도 죽기가 쉽지 않다. 몸속에 내장된 다양한 생명유지장치를 다른 사람은 꺼줄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정기적 회춘 프로그램을 중단하고 생체공학적 이식물들이 고장 나기를 마냥 오래오래 기다려야만 그는 죽음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아무도 죽지 않는 세상』은 미래 인간 ‘빅터’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공상과학소설 같지만, 실제로 빅터의 예에서 제시된 첨단기술은 전부 현재 개발 중인 것들이다. 컴퓨터 기술, 초소형 전자공학, 기계공학, 유전자 치료, 인지과학, 나노기술, 인지과학, 세포치료, 로봇공학 등의 분야가 다학제적으로 결합한 융합기술분야(converging technologies, CT)는 인간의 삶을 새로운 차원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빅터’라는 인물은 메리셸리의 소설의 빅터 프랑켄슈타인을 떠올리게 한다. 빅터는 그 이름만으로도 우리가 이미 한 발 들여놓고 있는 세계에 드리워진 예측할 수 없는 공포와 불안을 암시한다. <아무도 죽지 않는 세상>은 한국어 번역판 제목이고 영어책의 원제는 <Beyond human>이다. 현대의학과 사회의 관계를 천착해온 과학저술가인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첨단의료기술 분야의 정보를 독자에게 제공하면서 그 사회적 의미와 결과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제시해주고 있다. 한국어판 제목에서는 수명연장과 같은 첨단의료기술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이 묻어나오지만, 원제인 ‘인간 너머’에서는 호모사피엔스라는 종의 테두리를 넘어서는 새로운 인류의 도래를 ‘있는 그대로’ 조망해야 한다는 의도가 더 잘 엿보인다. 기술을 통해 인간을 개선하는 것에 찬성하든 반대를 하든, 모든 주장을 성실하게 들어보기 위해서 책을 썼다는 저자의 말처럼, 이 책에서는 인간 능력을 강화하는 첨단의료를 둘러싼 상반되는 목소리들을 다양하게 들려준다. 그리고 인간 존재가 어느 때보다도 더 깊은 차원에서 기술과 결합하고 있는 현재 상황을 흥미로운 사례들을 통해 점검한다. 도래할 ‘멋진 신세계’를 불안에 찬 눈으로 비판하는 익숙한 방식의 서술을 넘어서, 이 책은 우리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야만 하는지를 잠깐 멈추어 관찰하고 생각해보게 한다.
2. ‘트랜스휴먼’이라는 말은 올더스 헉슬리의 형인 생물학자 줄리안 헉슬리가 1927년에 쓴 용어로, 인간이라는 유기체가 전통적 ‘인간’에서 ‘포스트 휴먼’이라는 다음 단계의 존재로 이행하는 과정을 나타내는 말이다. <아무도 죽지 않는 세상>은 트랜스휴먼의 이행과정이라는 개념을 전제로, 전통적 인간을 넘어 다른 단계로 들어선 인류를 조명한다. 이 책에서 트랜스휴먼은 기술과 깊게 결합하며 근본적인 변화과정을 겪고 있는 호포사피엔스를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며, 어느 때보다 깊은 차원에서 기술과 결합하는 변화 그 자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기도 하다.
저자는 트랜스휴먼을 가능하게 하는 융합기술의 첫 번째 단계는 인공장기의 보급이라고 말한다. 심장, 췌장, 폐, 망막, 간, 심지어는 뇌의 일부까지도 대체할 다양한 인공장기가 이미 사용 중이거나 개발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신기술들이 질병을 치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의 거의 모든 능력을 향상시키는 인간강화(human enhancement)를 불어온다는 것이다. ‘치료’와 ‘강화’는, ‘정상’과 ‘비정상’이 그렇듯이, 그 경계를 엄밀하게 구분하기가 애초에 불가능하다. 전쟁에서 부상을 입어 변형된 신체를 교정하기 위해 개발되었던 기술이 심미적 성형기술로 발전했듯이, 치료를 위한 기술들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내적 외적 능력을 더 강화하는 단계로 전개될 것이다.
인간과 기계의 직접적인 결합이 진행될수록 인간은 건강해지고 그 능력은 확장되겠지만, 인간과 기계 사이의 경계는 점점 흐려질 것이다. 특히 인공적인 기계가 아니라, 인공부품과 인간세포를 하나로 통합한 생체공학적 장기가 개발되는 중이라는 사실은 이 주장에 힘을 더 실어준다. 이런 이식형 장치는 신체에 훨씬 고도로 통합되어 결국엔 유기물/무기물의 구분을 점점 어렵게 할 것이다. 어디까지가 나이고, 어디까지가 기계인지의 구분이 불가능해진다는 말이다. 머지않아 인간은 일종의 사이보그처럼 몸속에 온갖 이식 장치와 생체공학적 부품을 장착하고, 지능이 있는 로봇을 비롯하여 주변 모든 것과 사물인터넷을 통해 네트워킹할 것이다. 인간이라는 정체성과 고유한 개성의 범위가 크게 확장되어, 트랜스휴먼은 폭넓은 전자 생태계에서 생활하게 될 것이라고 저자는 진단한다.
트랜스휴먼은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생각이며 끔찍한 도덕적 비용을 치러야 할 것이라는 경고의 말들이 무성하다. 기술 발전이 야기하는 디스토피아적 상상과 불안감은 현대인에게는 익숙하다. 특히 인공적 기술이 생명을 조절한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불편한 감정을 불러온다. 저자는 생명이 전통적으로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이해됐으며, 인간 고유의 불변하는 정체성을 함부로 침해할 수 없다는 관념이 여전히 강력하다는 것을 지적하며 융합기술을 반대하는 견해들을 제시한다.
수명연장 등의 인간 능력 강화는 개인의 삶뿐만 사회를 근원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라는 점, 개인의 몸 안에 장착된 기기가 수합한 데이터처리 과정에서 사생활과 자율성이 위협당할 것이라는 문제, 몸과 마음의 고통이 없어진 세상은 고통으로 성취할 수 있는 인간의 고결함 품성을 약화해 인간 정체성을 말살할 것이라는 두려움,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본과 결탁한 기술이 사회적 평등을 위협하여 근본적인 차원에서 불평등한 사회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우려, 그리고 인구과잉과 자원 부족으로 사회적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맬서스 적 세계에서 삶의 질이 급격히 저하될 것이라는 문제 등은 현실적이면서도 설득력이 있는 반대의 목소리들이다.
트랜스휴먼은 전통적인 인간의 범주와 인간 정체성에 새로운 질문을 던져주기에 두렵고 불안하다. 불을 전달해준 프로메테우스가 신들에게서 가혹한 형벌을 받는 신화는 인간에게 근원적으로 자연적인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은 강렬한 욕망이 있으며, 동시에 이에 대한 두려움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저자는 프로메테우스의 욕망과 불안을 호모사피엔스가 계승해온 중요한 인간적 특징으로 지목한다. 트랜스휴먼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3. 인간 너머에는 어떤 인간이 있을까? 기술은 부지불식간에 삶의 미시적인 영역에까지 침투해 들어와, 일상 자체를 깊숙하게 변화시킨다. 1980년대 초반에 퍼스널컴퓨터의 필요성을 이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스마트폰이 없는 삶을 살았다. 도구와 기술은 인간을 다른 삶의 영역으로 급격하게 이동시켰다. 로마 시대 평균 기대수명은 25세였으며, 1900년대 미국인의 평균수명은 45세였고, 현재는 80세에 가깝다. 책의 서두에서 등장한 미래인간 빅터는 250세를 살아가고 있다. 저자는 이런 데이터를 제시하며, 인간은 한 번도 멈추어 본 적이 없고, 변화는 항상 진행형이었으며, 최근에는 기계와의 본격적인 결합의 형태로 이 변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강조한다.
융합기술을 반대하는 다양한 입장을 소개하면서도 저자의 관점은 명료하다. 이미 우리는 인간 너머, 즉 트랜스휴먼의 땅에 발을 들어놓고 여행을 시작했다. 정보기술사회로의 혁신적인 이동 상황은 사회적으로도 이미 트랜스휴먼의 기본 전제들이 수용되고 있음을 방증해 준다. 트랜스휴먼을 낯설고 특별한 상황으로 볼 것이 아니라, 인류가 진화해온 여정의 일부이자 동시에 새로운 국면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구, 기술, 교육, 훈련 등의 수단을 통해서 인간은 자기강화를 거듭해왔다. 활력 있고 아름답게 무병장수하려는 노력을 인간은 과거에도 했으며 현재에도 하고 있고, 그리고 미래에도 지속할 것이다. 신체에 기계를 이식하는 자기강화방식은 낯설고 두렵다. 하지만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은 인간은 원래부터 삶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자기를 개선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 왔다는 것이다. 요컨대 혁명적 자기개조를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고유한 본성이다.
저자는 트랜스휴먼의 시대를 기술적으로 진화의 속도와 방향을 조절하는 ‘기술생리적 진화(technophysio evolution)’의 시대라고 설명한다. 거시적인 진화의 시간에서 트랜스휴먼의 필연성과 가능성을 보고자 하는 것이다. 현재의 기술단계를 거시적인 역사의 맥락에서 이해하는 관점은 매우 중요하다. 20세기의 경험과 지식만으로는 변화하는 시대를 포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물론 현실에서 제기되는 불안하고 두려운 문제들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매우 긍정적이고 낙관적으로 이런 문제들을 돌파하고 있다. 예를 들면 생명 연장과 인간강화 기술은 처음에는 부자들에게 보급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국가 차원의 복지가 실현될 것이고 모든 사람이 보편적으로 이용하게 될 것이라고 본다. 신체를 변화시키고 강화하는 능력은 공상과학소설에서 보듯이 천편일률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극히 개인적인 방식으로 실현될 것이다. 그래서 외적 능력이 평준화될수록, 오히려 인간의 내면적 품성이 강조되어 인간의 다양성이 보장되는 열린 사회가 구현되리라 예측한다.
저자의 낙관적인 전망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지만, 좀 더 넓은 시간의 지평에서 트랜스휴먼의 시대를 바라볼 때 인간 너머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수 있기에 저자의 관점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된다. 메리 셸리의 소설에서 빅터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많은 것이 이미 이루어졌으나, 나는 그 이상을 이룰 것이다. 먼저 새겨진 발자국을 따라 나는 새길을 열어갈 것이다. 미지의 힘을 찾아내고 창조의 신비를 밝히겠다!"라고 선언했으나 결국 파국의 길을 걸어갔다.
더 행복한 삶을 위한 도전과 성취라는 인류 역사에 기대여 새로운 트랜스휴먼의 시대를 조망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인간 너머’를 살아갈 새로운 빅터를 보다 구체적으로 상상해보게 한다.
한수영(중앙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