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추천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사고 싶은 물건이 생기면, 우리는 스마트폰을 이용해 관련 키워드를 검색하고 가장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웹사이트를 추천받아 구매한다. 소셜 미디어 앱은 나의 실제 지인을 앱 내의 친구로 등록할 수 있도록 추천해준다. 유튜브는 내가 좋아할 만한 영상을 끊임없이 추천해준다. 모르는 곳을 찾아갈 때는 앱을 통해 대중교통 이용 경로를 추천받고 도착 시간을 비교해 선택할 수 있으며, 심지어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좌석에 앉아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도, 목적지 정류장에 근접하면 알람이 울리므로 안심하고 갈 수 있다. 말 그대로 추천의 홍수 속에 살고 있는 우리의 일상생활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 추천시스템이 자리 잡고 있다. 우리는 별다른 의심 없이 추천을 신뢰하며 따른다. 이러한 추천의 핵심은 데이터를 이용한 알고리즘에 있다. 이 책의 전체를 지배적으로 관통하는 주제는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이용한 인간의 삶의 질 향상이다. 대부분의 알고리즘은 매우 어려운 수학적 모델과 기호학적 분석을 통해 해석해야 하기에, 보통의 사람이라면 ‘이렇게 복잡한 수식이 내 삶의 질을 어떻게 향상시키는가?’라는 의문과 함께 알고리즘을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저자의 서술 방식은 매우 친절하다. 복잡한 수식은 배제하고 알고리즘의 핵심 원리를 오직 예시를 통해서만 설명한다. 그는 도표, 그래프, 그림, 간단한 계산과정을 총동원하여 알고리즘을 소개한다. 이 책의 저자인 크리스토프 드뢰서는 독일 주간지의 과학 담당 편집자이자 과학 저널리스트로서 다수의 과학 관련 칼럼과 도서를 집필했다. 그는 어려운 주제를 이야기하면서도 유쾌하고 흥미로운 표현과 예시를 적절히 이용함으로써 일반 독자의 관심을 이끌어내는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이 책은 독자로 하여금 지적 호기심을 충족했다는 포만감을 느낄 수 있도록 상당히 전문성 있는 알고리즘을 소개한다. 그러나 친절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알고리즘 하나하나는 사실 쉽게 이해될 만한 것들이 아니기에 흐름을 놓치지 않도록 집중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대략적인 흐름을 파악하고, 알고리즘이 도달하고자 하는 핵심 목표를 이해하는 일은 충분히 가능하다. 이것이 우리 삶에 어떤 편의를 제공하는지도 함께 말이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예시들이 직관적으로 흡수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독일 사람이라면 아주 쉽게 받아들여질 일상의 언어들이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경우가 있다. 지역명이나 사람이름 등이 그러하다. 책은 주제 단위로 알고리즘을 분류했다. 목차 상으로는 계산, 검색, 내비게이션, 추천, 연결, 예측, 투자, 암호화, 압축, 사랑, 학습으로 나열된다. 각 장에서 다루는 알고리즘들은 누구나 한 번쯤 일상생활 속에서 경험해 봤을 일화와 함께 등장한다. 예를 들어 내비게이션이 추천하는 목적지 경로는 데이크스트라의 최단경로 알고리즘에 기반하며, 웹 검색 결과로 나오는 목록의 우선순위는 구글의 페이지 랭크 알고리즘에 기반을 둔다. 최근의 알고리즘들은 과거보다 훨씬 고도화 되어있지만 알고리즘이 처음 고안된 원리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독자로서는 충분히 만족할 만하다. 특히, 알고리즘의 핵심 원리를 소개할 때 저자는 철저히 독자의 눈높이를 고려한다. 영화, 구글 검색, 페이스북, 주식, 데이트 알선 등 일상 속 소재들이 다양하게 등장하여 전혀 낯설지가 않다. 그런 와중에도 더 전문성이 있는 독자를 고려하여 기술적 용어에 대해서는 모두 영어식 표기가 달려있다. 기술 용어가 난무하는 번역서를 읽을 때의 어려움 중 하나는 한국어로 옮기는 과정에서의 단어 선택으로 인한 의미의 모호성이다. 이런 부분을 피하고자 고유명사나 주요 기술적 어휘들에 대해서 명확히 파악할 수 있게 파란색의 위첨자로 영어표기가 되어있는 것도 독자의 이해도에 따라 더욱 명확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옮긴이와 출판사 편집부의 전문성을 보여준다. 각 장의 주제와 관련된 알고리즘의 소개, 그리고 인간의 삶의 편의성 증대가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전부는 아니다. 본문의 초, 중반 장에서는 알고리즘의 편의성을 주로 다루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다. 저자는 알고리즘에 대해 맹목적으로 찬양하지는 않으며, 알고리즘이 인간에게 내려주는 축복을 어디까지 수용해야 할지 고민해 볼 기회를 제공한다. 6장에서 언급되는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는 범죄자를 미리 예측해 범죄가 일어나기 전에 체포함으로써 범죄율이 99.8퍼센트 감소한다. 만약 이런 알고리즘이 실제로 개발된다면 우리 삶을 안전하게 보장해줄지 혹은 개인의 인권을 과도하게 침범할지는 생각해볼 만한 문제다. 이와 관련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장은 11장 신경망 학습 알고리즘이다. 신경망은 입력 데이터에 대한 분류를 학습하고 새로운 입력이 왔을 때 이를 예측해주며, 인간이 내부 로직에 관여할 수 없고 철저히 데이터를 따라 자동으로 완성되는 알고리즘이다. 미국에서는 범죄자의 흑인(아프리카계 미국인) 비율이 높기에 이러한 과거 데이터에 기반을 둔 신경망 학습이 도입된다면 더욱 편향되고 인종 차별적인 알고리즘이 나타날 수 있다. 이는 종교나 정치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옳고 그름으로 판단할 수 없는, 종교적 또는 정치적 가치관에 따라 형성되는 데이터를 컴퓨터가 학습한다면, 그 알고리즘은 한쪽으로 치우친 사상을 따라 의사 결정을 내리도록 추천해 줄 것이다. 10장에서 다루는 사랑 주제에서도 저자는 데이트 알선 알고리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다. 데이트 알선 알고리즘이 성향이 비슷한 사람을 이어주는 것이 맞을지, 아니면 상반된 성향의 사람을 이어주는 것이 맞을지 판단하는 일은 어렵다. 같은 성향의 커플은 동질감과 편안함을 느낄 것이고, 다른 성향의 커플은 서로의 부족함을 채움으로써 만족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좋은 알고리즘은 무엇일까? 마지막 장의 제목인 ‘우리는 예측 가능하지 않다’가 저자의 대답으로 보인다. 알고리즘을 이용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은 분명 가치 있는 일이지만, 인간은 알고리즘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인문학적 상상력을 갖고 있다. 따라서 저자는 알고리즘을 어떻게 적용할지 독자와 함께 고민하길 원한다. 구글과 유튜브의 사례에서 예감할 수 있듯 알고리즘은 분명 시대를 지배하는 권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알고리즘을 이해하고 인공지능의 막연한 환상과 두려움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옮긴이의 말을 빌리자면 “지피지기(知彼知己) 백전불태(百戰不殆)”이다. 알고리즘을 알고 나를 알면 인공지능 시대에서 백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을 것 이다. 이기성 (중앙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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