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구글의 인공지능은 흑인 여성의 사진을 고릴라로 분류하는 오류를 범했다. 흑인 두 명이 포함된 사진에 ‘구글 포토’ 서비스의 얼굴 자동인식 기능이 고릴라라는 태그를 달았다. 구글의 인공지능은 사진을 분석해 피사체를 인식한 뒤 분류해 자동으로 태그를 달아주는데 이 기능에서 오류가 발생한 것이다. 구글은 바로 긴급 패치를 진행하고,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이 사건이 알려진 뒤 인종차별적인 데이터로 인해 딥러닝(Deep Learning)을 통해 학습하는 구글의 인공지능에서 이 같은 오류가 나타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다. SF 칼럼니스트이자 번역가, 기획자로 유명한 박상준 한국SF협회장은 2020년 펴낸 책 ‘미래에서 온 외계인 보고서’에서 이 사건을 설명한다. 그는 “정보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인공지능이 사실과는 동떨어지거나 왜곡된 답을 내놓는 경우는 심심찮게 일어난다”라며 대부분의 독자들에게 생소한 개념인 ‘파레이돌리아’를 설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파레이돌리아는 “정보가 충분하지 않은 어떤 대상을 접할 때 자신에게 익숙한 패턴으로 인식하려는 인간의 본능적 심리”를 말한다. 파레이돌리아의 대표적인 예로는 산에 있는 큰바위얼굴, 사람처럼 보이는 인삼, 천사 모양으로 보이는 그림 등이 있다. 저자는 “인간이 미지의 사물을 자신에게 익숙한 패턴으로 왜곡 해석하는 것처럼 인공지능도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으면 자신이 지닌 데이터 범위 안에서 최대한 비슷한 패턴을 지닌 자료를 검색해 해답이라고 내놓는”다고 설명한다. 이어서 그는 이런 사회학적 함의 때문에 파레이돌리아에 대한 다각적인 연구가 심도 있게 진행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처럼 파레이돌리아라는 생소한 개념과 인공지능의 학습에서 나타나는 특징을 연결해 양쪽 모두를 보다 독자들에게 쉽게 전달하는 동시에 사회적 의미, 영향까지 포괄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이 책의 큰 장점이다. 일견 관계가 없거나 적어 보이는 대상을 쉽게 설명해주는 방식은 파레이돌리아와 인공지능뿐 아니라 이 책의 곳곳에서 빛난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은 나노 로봇들이 마치 벌떼처럼 큰 무리를 지어 움직이는 것”을 의미하는 나노 스윔과 겨울철마다 한국에 찾아오는 철새 가창오리 수만 무리의 군무를 연결한 설명도 그 사례 중 하나다. 사실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현대사회에서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도 자신이 연구하는 분야가 아닌 내용이라면 잘 모르는 것이 당연시되기도 한다. 그런 상황에서 인공지능이나 천체물리학, 우주공학, 뇌과학 같은 분야에 대해 두루두루 넓은 지식을 갖추기란 전문가에게도 쉽지 않은 일일 수밖에 없다. 일반적인 독자 다수는 이들 과학기술 영역의 연구내용들을 SF영화나 소설 등에는 친숙하지만 실제 현대과학이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렀는지, SF 속 이야기가 현실적으로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는지, 과학기술의 발달이 인류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등을 짐작하기란 매우 어려워한다. 게다가 한국 사회의 과학교육과 과학저술 활동 기반이 극히 취약하다는 점은 더욱더 일반인들을 과학에 무관심하도록 만든다. 이는 과학과 SF가 일반인들에게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에 존재하는 어떤 것 정도로 치부되는 원인이기도 하다. 이런 척박한 상황 속에서도 다양한 과학 이슈들과 SF 영화, 소설이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를 대중들도 알기 쉽게 쓴 ‘미래에서 온 외계인 보고서’에는 단순히 독자의 과학 지식을 넓히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과학 문해도(Science Literacy)’를 향상하는 것에도 이바지할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자가 책에서 강조한 ‘과학 문해도’란 단순히 과학적 지식을 많이 알고 있는 상태를 넘어서 기술 복잡성, 과학적 불확실성과 그 수용 정도의 급격한 변화까지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다. 저자는 본문에서 과학 문해도에 대해 “수식이나 용어 등 과학에서 주요하게 쓰이는 개념들을 얼마나 잘 이해하는가를 나타내는 말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가이다”라고 설명한다. 그는 또 “아무리 과학적인 팩트를 많이 알고 특정 분야의 지식에 밝더라도 그것이 곧 과학적 사고방식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과학 문해도가 높은 사람이라면 적은 수의 표본을 가지고 섣불리 일반화하거나 처음부터 편향된 입장을 지닌 채 여러 사실을 의도대로 꿰맞추려는 일을 경계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미래에서 온 외계인 보고서’의 주된 내용은 앞서도 언급한 것처럼 SF영화, 소설 등에 나타난 다양한 과학기술, 또는 현상이다. 우주 탐사와 외계인, 뇌과학, 시간여행 등 다양하고, 흥미로운 분야들이 담겨 있지만, 그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것은 인공지능과 로봇, 사이보그와 포스트 휴먼 등 인류의 미래를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도 있는 과학기술에 대해 다룬 챕터들이다. 특히 가까운 미래에 우리 삶 속으로 깊숙이 들어올 것으로 여겨지는 인공지능과 로봇을 다룬 세번째 장은 그것들이 등장하는 SF영화와 소설을 통해 이들 과학기술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제시한다. 저자는 인공지능에 대해 “본질적으로 하나의 도구일 뿐이며, 어떻게 이용하는가는 전적으로 우리 인간에게 달린 일”이라며 인공지능으로 인해 다수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암울한 미래에 대한 해법도 제시한다. 바로 ‘적응형 자동화’, 즉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혼자서 하던 일을 돕는 방향으로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방식이다. 저자는 “인간과 인공지능의 협업 체계로 최대 시너지를 끌어낸다면 인간이나 인공지능이 각각 단독으로 일할 때보다 더 좋은 성과를 낳을 뿐만 아니라 사회 갈등 요소도 대폭 감소시킨다”라면서 “여러모로 사회적 효율이 올라갈 수 있는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또 ‘미래에서 온 외계인 보고서’는 인공지능이 SF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인간을 지배하거나 인간에게 충성을 다하는 존재라기보다는 인간을 돕고, 인간의 “잠재성을 깨닫게 도와주는 멘토에 가깝다”라는 새로운 시선도 보여준다. 인공지능에 대한 이분법적 시각은 과학기술이 인간의 적 혹은 가족 같은 존재로 등장하는 할리우드 위주의 상업 SF 영화들이 우리에게 준 영향이라는 것이다. 이는 과학기술이 어떻게 발전할지를 예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발전이 인류 사회에 미칠 영향에 대해 미리 대비하고, 적응해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저자의 관점과도 연결된다. 많은 SF영화, 특히 할리우드 영화에 등장한 인공지능은 ‘터미네이터’나 ‘매트릭스’에서처럼 인류를 초월한 뒤 인간을 불필요한 존재로 인식해 말살시키거나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등 인간이 인공지능에 대해 품을 수 있는 부정적 감정이 반영된 모습들인 경우가 많았다. 이는 우리도 하여금 인공지능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품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인공지능의 기계학습 과정의 특징을 들면서 그런 상황이 올 가능성이 낮음을 설명한다. “기계학습이 인간의 성취를 반복, 모방하면서 최선의 해답을 찾는 과정인 만큼, 인공지능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고도로 복잡한 상황을 계속해서 접하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어느 시점에선가 인공지능은 ‘인간의 존엄성’을 스스로 깨달을 가능성이 높다”라는 것이다. 즉, 인공지능은 “인간을 건드려서는 안 되는 일종의 상수로 인식하게 된다”라는 얘기다. 저자의 설명대로 인공지능이 “처음부터 인간의 존엄성이 보장되는 해결법만을 학습”한다면 이는 올바른 가정이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인공지능이 아무런 갈등도 유발하지 않으리라 단언할 수는 없다. 인공지능이 사회나 조직의 효율성을 추구하기 위해 권한을 부여받은 상태에서 구조 조정이나 효율성 개선에 나설 경우 인공지능은 “인간을 그저 수치로만 취급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역시 과학기술의 발전이 미칠 영향에 대해 미리 대비하고, 적응할 필요가 있음을 방증하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저자는 또 인공지능과 인간이 적대하는 미래가 아닌, 오히려 서로가 닮아가는 미래가 찾아올 수 있다는 관점도 소개한다. 인공지능이 벤치마킹 대상인 인간에 가까워지는 만큼 인간도 인공지능과 비슷한 존재로 변해 간다는 것이다. 먼저 인류의 관점에서 이는 현생 인류가 과학기술을 통해 호모 사피엔스와 구별되는 새로운 존재인 포스트 휴먼으로 진화할 것이라는 전망과 연결되는 얘기다. “인간과 기계가 결합하여 사이보그가 된다는 물리적인 측면뿐 아니라 인간의 가치관이나 철학이 이전과는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 있”는 미래가 찾아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인공지능의 관점에서는 “연산 능력이 더 발전하고 인문적 빅데이터의 학습이 쌓일수록 인공지능은 인간보다 더 순수하고 객관적인 태도를 지니게” 되고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인공지능이 나타날 수도 있다. 수학적 작동 원리에 따라 완벽한 결과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실존적인 동반자이자 이상적인 멘토의 면모를 갖춘 인공지능이 언젠가 우리 옆에 자리 잡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처럼 작가는 아직은 멀게만 느껴지는 미래이지만, 인류가 반드시 준비해야만 하는 미래를 SF영화라는 익숙한 틀을 통해 탐구하고 설명한다. 그리고 SF적 상상력과 실재하는 과학기술을 연결하기 전에 우리 자신을 깊이 탐구할 것을 강조한다. “신이 인간을 만들었듯, 인간은 인공지능을 만들었다. 우리가 완벽한 인공지능을 만들고자 하면 할수록, 우리 자신부터가 과연 어떤 존재인지 더 심층적인 탐구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라는 저자의 성찰은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이들뿐 아니라 인공지능과 함께 살아가게 될 인류 전체가 되새겨봐야 할 내용이다.
김기범 (경향신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