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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대학에 가는 AI vs 교과서를 못 읽는 아이들 | 아라이 노리고(글), 김정환(역), 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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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15 15:52
 

딥블루, 왓슨, 알파고 등의 출현이 알려주듯 인공지능의 인지능력은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발달하기 때문에 특정 시점에 인공지능 수준을 고정한 테스트는 이내 부정확해지는 한계를 갖는다. 더 강력한 인공지능이 나타나 기존에 불가능하다고 여겨진 장벽을 넘어설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공지능과 인간 인지능력의 비교는 종국적으로는 승패의 향배가 예상되지만, 순간을 사는 우리에게 특정한 시점에서 둘의 비교는 의미가 있다. 

<대학에 가는 AI vs 교과서를 못 읽는 아이들>은 일본 국립정보학연구소 교수인 아라이 노리코가 2018년 펴낸 책이다. 2011년 일본에서 국립정보학연구소 주도로 시작한 인공지능 ‘도보로군’의 도쿄대 입학 프로젝트의 책임자인 아라이 교수가 집필한 이 책은 인공지능과 인간이 인지능력을 경쟁하는 상황을 통해, 새로운 환경에 적합한 교육을 탐구한다.

‘인공지능 도보로군 도쿄대 입학 프로젝트’는 2011년 시작된 10개년 프로그램으로, 2020년까지 도쿄대 입시에 합격할 수 있는 인공지능 개발을 목표로 한다. 프로젝트의 진짜 목적은 인공지능이 인간 고유 역량으로 여겨져온 능력을 어디까지 추월할 수 있는지를 밝혀냄을 통해 인간이 인공지능에게 일자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는 어떠한 능력을 갖춰야 할지를 찾아내는 것이다. 

책을 집필한 시기는 프로젝트의 최종 결과가 나온 시점이 아니라, 프로젝트 시작이후 7년이 된 시점이라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 책은 중간점검을 통해 프로젝트의 의미와 유효성을 알아본 셈이다. 일단 인공지능 도보로는 빠르게 학습하며 도쿄대 입시를 준비해가고 있다. 2013년 처음 치른 일본 유명학원의 대입선발입시센터(한국의 수능) 모의시험에서 900점 만점에 387점을 받았다. 전국 평균인 459점보다 크게 못미친 점수였지만, 3년 뒤인 2016년 모의시험에서는 950점 만점에 525점을 받아 전국평균인 437점을 크게 웃돌았다. 2016년 도쿄대 사전입시 수학문제에서는 전체 수험생의 상위 1%에 해당하는 높은 점수를 거두었다. 2016년 점수로는 도쿄나 간사이의 유명 사립대학 상당수에 입학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알파고를 통해 충격을 안겨준 딥러닝이 본격 적용되기 이전임을 감안하면 인공지능 도보로가 일본 대학입시에서 도쿄대 입학이 가능한 수준에 도달하는 게 결국 시간문제일 수도 있다는 전망은 가히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저자 아라이는 이미 2016년 모의고사에서 수험생 상위 20%의 수준의 실력에 도달한 인공지능 도보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인공지능 도보로에게 뒤처진 80%의 학생들에게 어떻게 해야 밝은 미래를 안겨줄 수 있을까?” 수험생의 80%가 대입 모의시험에서 중간개발 단계에 있는 인공지능보다 능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은 암울한 미래를 의미하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인지능력을 압도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고, 이미 상당히 많은 영역에서 이는 현실이 되었다. IBM의 왓슨은 2012년 미국의 유명 방송퀴즈프로그램 <제퍼디 쇼>에서 퀴즈의 달인들을 꺾고 우승했으며, 2016년 12월 31일 국내 <EBS>는 장학퀴즈 프로그램에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개발한 한국어 인공지능 ‘엑소브레인’을 출전시켜 역대 장학퀴즈 왕중왕전 우승자들과 수능시험 만점자를 제압하고 우승한 바 있다. 2016년과 2017년 바둑 인공지능 알파고는 이세돌 9단과 커제 9단을 비롯한 최고수들을 꺾으며, 바둑의 세계에서 인간은 컴퓨터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2018년 5월 8일 구글 개발자대회(I/O)에서 선다 피차이 구글 CEO가 공개한 구글의 인공지능 음성비서 ‘듀플렉스’는 전화예약 등의 직무테스트에서 사람과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인지능력을 과시한 바 있다.

하지만 저자는 도보로 도쿄대 입학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인공지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인간을 능가할 수 없는 영역이 남아 있음을 강조한다. 심화신경망 방식의 딥러닝은 인간 두뇌의 신경망을 모방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인간 뇌를 모방한 게 아니라 뇌를 본딴 ‘수리적 모형’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는 수량화할 수 있는 데이터는 사람과 비교할 수 없이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할 수 있는 인공지능도 행복이나 감정처럼 수량화할 수 없는 인간의 특성은 처리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인간은 디지털 정보로 변환할 수 있는 정보와 지식만을 소통하는 게 아니라, 소통하는 정보에 의미를 담고 표현하고 전달한다. 인간은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고 뜻을 표현할 수 있으나 기계는 이를 따라 할 수 없다. 저자는 “말에는 단순한 기호의 나열을 뛰어넘는 의미가 있다”며 “의미는 관측이 불가능하다”라고 말한다. 똑같은 말이라도 우리는 대화 맥락, 대화 상대와의 관계, 당사자의 마음 상태에 따라서 전혀 다르게 해석하고 수용한다. 

딥러닝 방식의 인공지능이 이미지 식별에서 인간을 뛰어넘는 빠르고 정확한 능력을 갖추었으나 저자는 영상과 언어가 다름을 지적한다. 자연언어와 달리 영상은 전체가 부분의 합으로 구성되는 비교적 단순한 구조로 되어 있으므로 인공지능이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지만 언어는 다르다. 언어를 통해 소통하는 인간은 의미를 만들고 해석하는 존재다. 언어는 비단 문학작품이 아니어도 기본적으로 의미를 담는 도구이고, 단순한 기능적 수행을 넘어서서 인간의 정신활동, 감정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포괄적이고 비정형적인 매개체이다. 언어를 통해서 의미를 파악하는 능력은 인공지능이 인간을 따라잡을 수 없는 영역이며, 이를 독해력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일본의 비도시지역 고등학생들의 절반이 독해력 시험에서 무작위로 찍은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력을 보였다는 사례를 소개하며, 미래엔 무엇보다 독해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인공지능과 공존하는 사회에서는 인공지능이 못하는 일을 배우는 게 교육의 핵심인데, 이를 위해서는 독해력이 필수다. 세상 모든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환경에서 호기심과 독해력만 있으면 기본적으로 무엇이든 스스로 학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을 훈련시켜 도쿄대 입시를 통과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제시한 학자가 결론으로 제시하는 방법이 독해력 향상이라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기계는 아무리 발달해도 인간처럼 의미를 읽어낼 수 없다는 점, 그리고 인간은 기계와 달리 다양한 방식으로 의미를 만들고 의미를 통해 소통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모바일 환경에서 우리는 더 많은 글을 읽고 소비하고 있다. 하지만 문장에 담긴 내용을 풍부하게 읽어내는 능력은 하락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젊은 세대의 독해력 저하 문제가 거론된 바 있다. <기생충> 영화평론에서 ‘명징한 직조’라는 표현에 대해 쏟아진 대중의 비난이나 ‘3일 연휴’를 ‘사흘 연휴’라고 잘못 표기했다고 비난하는 소동이 그 사례다. 기계는 인간처럼 의미를 읽어낼 수도, 만들어 낼 수도 없다는 점은 인공지능 시대에 교육이 지향해야 할 바를 알려주며 인문학이 왜 미래의 필수학문인지를 말해준다. 

구본권 (<한겨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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