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신문 허정윤 기자] 4차 산업혁명이라는 산업구조의 대전환과 코로나19로 인한 위기가 이어지는 상황 속에서 ‘공공성’이라는 시대적 가치에 대해 논하는 자리가 열렸다.
경인행정학회 주관으로 ‘4차 산업혁명과 포스트코로나 시대 그리고 공공성’이라는 주제의 융합세미나가 지난 7일 중앙대 대학원 대회의실에서 개최됐다.
이번 세미나는 박광국 가톨릭대 교수의 ‘패러다임의 변화와 교육의 발전방향’이라는 기조발표를 시작으로 국가 산학연 협력정책의 고도화 방안, 국립대병원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대안 모색 등 총 2개 세션에서 발제와 토론이 이뤄졌다.
세션 진행에 앞서 김서용 경인행정학회 회장은 “개인과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패러다임의 변화와 함께 교육에 기반한 공공성 강화가 함께 수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가 마주한 위기의 시대는 한 개인이나 한 학회 관점으로 해법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지식인들이 모여 융합적 관점으로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상규 중앙대 총장은 축사에서 “논의를 통해 한국을 이끌 인재 양성 방향과 공공성 발전 방향에 대한 대안이 마련되길 바란다”며 “곧 있을 대선에서도 오늘 세미나에서 논의되는 어젠다가 중요하게 다뤄질 것을 기대한다”고 언급했다.
이어 박해심 아주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은 “IT와 접목된 의료 바이오기술을 이끌 교육인재 양성을 위해서 교육부가 의사과학자의 양성을 전주기적으로 투자하길 바란다”는 의견을 냈다.
마지막 축사자로 나선 정종철 교육부 차관은 “국가와 사회의 미래를 구축하는 핵심은 교육과 연구개발에 달렸다. 이를 위해 폐쇄적인 교육부가 아니라 ‘개방’과 ‘회복’을 추구하는 교육부가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세미나를 통해 나올 담론을 귀 기울여 듣겠다”고 말했다.
■말뿐인 융합과 거버넌스, ‘디지털 트렌스포메이션’과 ‘리좀 사고’ 필요해 = “속은 안 바뀌고 ‘무늬’만 바뀐 교육이 많다. ‘기초 수학’이라는 과목명 앞에 ‘AI’만 붙이는 식”
기조발표를 맡은 박광국 가톨릭대 행정학과 교수는 “인구문제, 기후‧환경위기,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지식정보사회 도래 등의 거시적인 변화를 한국 사회가 겪고 있음에도 교육이 제대로 변화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계층 간 격차가 심한 사회는 지속가능 발전을 하지 못한다. 디지털 격차, 교육 격차를 줄이지 않으면 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박 교수는 “이제는 개인의 발전에 초점을 맞춘 교육을 할 게 아니라 ‘연결성’을 토대로 교육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발생하는 사회문제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돼 일어나고 있기에 교육 역시 이 부분을 이해하지 않으면 문제 해결은 대안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 사회 문제 해결과 인류 발전을 위해서라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게 모든 데이터의 ‘디지털 트렌스포메이션화’와 ‘리좀(Rhyzome) 사고’ 함양을 강조했다.
박 교수는 디지털화된 데이터를 토대로 사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해야 하고 동시에 학문 간 경계를 그어 학생들을 가르칠 게 아니라 전공과 상관없이 협업하고 소통하는 능력을 갖춘 ‘4C 역량’ 인재를 키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4C’는 △협업(Collaboration) △창의(Creativity) △신뢰(Confidence) △도전(Challenge) 등을 의미한다.
‘리좀’은 가지가 흙에 닿으면 뿌리로 변하는 뿌리줄기 식물을 가리키는 식물학 용어로 수평적 관계를 의미하는 개념으로도 널리 쓰인다. 박 교수는 “근간의 문제는 어떤 한 부처나 부서가 단독으로 처리할 수 있는 것들이 없다”며 “정부 부처를 ‘실선’으로 갈라 일하지 말고 ‘점선’으로 분류해 서로 자유롭게 드나들고 논의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향후 추진업무로 △국가교육위원회와 교육부 간 합리적인 역할 분담과 협치 △고등‧평생‧직업교육 기능 강화 △사회부총리 역할 강화 △‘디지털 교육진흥국’(가칭) 신설 △각 부처 인적자원 개발 정책 총괄‧조정하는 ‘인재혁신전략본부’ 신설 △학술진흥 비전과 방향 제시하고 학술지원 정책 수립하는 별도 전문 기관인 ‘학술진흥원’ 신설 등을 제시했다.
■“산‧학‧연의 핵심은 대학”… ‘컨트롤 타워’ 아닌 ‘코칭 센터’ 역할 하는 교육부 역할 강조 = 기조 발표를 마친 뒤 주효진 가톨릭관동대 교수가 ‘국가 산학연 협력정책의 고도화 방안’을 주제로 1세션 라운드 테이블 대표 발표에 나섰다.
주 교수는 “공공성의 측면에서 산학연이 잘되려면 정부 부처 단위가 아니라 국가 단위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처와 업계를 막론하고 폭넓은 네트워킹 속에서 이뤄져야 시너지 효과가 드러나는 영역이라고 본 것이다. 그는 “산학연 협력을 통해 대학의 변화‧발전이 가능하다. 대학과 지역사회 간 긴밀한 협조를 통해 인재양성은 물론 일자리 창출과 지역 혁신에까지 도모할 수 있다”며 산학협력을 통한 여러 가지 가능성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런 산학연 협력 체계의 발전 속에서도 국가 산학연 협력을 더디게 하는 정책적 문제도 공존하고 있다. 부처별로 산학연 정책을 사업단위로 보는 시각이 여전히 있고 산학연 협력을 단순히 일자리 창출로만 바라보는 등 접근관점별 이견이 존재한다.
주 교수는 “대학은 인재, 기술, 정보, 인프라 등 산업 생태계의 성장을 위해 필요한 핵심 자원을 모두 보유한 산학연 협력의 메카”라며 “대학 중심으로 협력이 연계돼야 그 효율성이 증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례로 스탠퍼드 대학이 주변 벤처기업들과 산학협력을 통해 실리콘 밸리의 탄생을 견인했다. 이어 “교육과 인재양성, 연구개발과 기술 창출‧사업화로 이어지는 대학과 기업의 선순환 체제에서 혁신 성장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국가 산학연 협력정책 성공을 위해 △학문 간 융‧복합을 위한 제도개선(교육과정 개편, 정원조정, 예산분배) △대학 주도의 선제적 기술 개발 및 가치창출 △산업계로 원활한 기술이전‧사업화 △대학의 지역 창업 생태계허브화 △국가산학연협력위원회 기능 강화 △산학협력법 개정 △고등교육재정교부금 신설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조정 등 방안을 제시했다.
주 교수는 “대학이 국가 산학연 협력정책의 지속적인 변화와 발전의 필요충분요소라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며 “이를 위해 사회부총리 부처인 교육부의 위상과 역할의 재정립은 물론 교육부가 ‘콘트롤 타워’가 아니라 ‘코칭 센터’로서 중추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말로 발표를 마무리했다.
■다양한 논의가 오간 토론, “산학협력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에는 한목소리 = 세션1 라운드 테이블 토론에 참석한 노영희 교수(건국대 LINC+사업단장)는 “산학협력 차원에서 요구되는 인재상부터 어떤 것인지 명확히 제시될 필요가 있다”며 “먼저 산학협력 정보공유 시스템을 구축해 산학협력의 A부터 Z까지 알 수 있는 오픈 이노베이션 체제가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종하 한라대 언론정보학과 교수(한라대 대학원장)는 “세계적인 흐름을 볼 때 인문 사회 계열 학문이 가미되지 않은 융합 서비스는 글로벌 서비스가 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산학협력이라 하면 ‘공학’이나 ‘자연계열 학문’을 먼저 떠올리기 쉬운 상황 속에서 인문학이 산학협력 프로젝트로 잘 다뤄지지 않은 점을 지적한 부분이다. 김 교수는 “산학협력을 촉진하려면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며 “규제는 연구자들로 하여금 ‘자기 검열 강화’ 기제로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배영찬 한양대 공대 교수는 산업 발전에 보탬이 되는 우수한 대학원생을 대학이 길러내야 한다고 봤다. 배 교수는 “현재 산학협력의 주체는 대학원생들이 많다”며 “의무교육에 가까운 정도의 진학률을 보이는 학부교육보다 대학원 교육에 힘을 실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배 교수는 “실제로 한국 공과대학 상위 10개 대학의 대학원 진학률은 30%가 안 되는 반면에 일본 공과대학 대학원 진학률은 상위 25개 대학에서 80%가 넘는다”며 한국 대학의 상황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찬규 중앙대 국문과 교수(중앙대 인문콘텐츠연구소 소장)는 앞선 발표자들과는 다른 측면에서 교육개혁에 관한 의견을 제시했다. 이 교수는 “대학은 기초학문을 충실히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곳”이라며 “정부가 ‘4차 산업혁명 인재가 필요하니 인력 양성해라’라는 식으로 대학에 요구할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필요 충분을 채우는 관계가 아니라 상생발전을 꾀하는 모델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이 교수는 “정부에서 주는 한시적 사업 재정으로 교육을 진행하다가 그 재정이 끊기면 사업도 유야무야 되는 경우를 많이 봤다”며 자생력이 부족한 대학의 모습에 우려를 표했다. 그러면서 “산학협력 모델로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해 나가려면 기초학문 쪽 투자를 많이 해야한다”고 덧붙였다.
김영미 상명대 행정학과 교수는 “융합교육이 강조되고 있지만 학과 중심의 대학은 협업이 어려운 구조”라며 “학문 간의 벽을 낮추고 캡스톤 디자인이나 인턴십 등의 현장 체험 교육방식을 통해 학생들이 자기 역량을 강화할 수 있도록 기업과의 연계를 촉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궁문 원광대 창의공과대 교수는 “산학협력 없이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나라는 없다”며 선진국의 유명 도시에는 언제나 산학협력의 메카가 있음을 설명했다. 남 교수는 “대학은 혁신을 위한 인프라와 인력이 갖춰진 곳이기 때문에 지역 혁신의 주체가 될 수밖에 없는 곳”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산학협력과 관련된 여러 국책사업이 중복되는 점을 지적하며 “사업을 벌이는 사람들이 씨를 뿌리기만 하지 말고 거름을 주고 양질의 토양을 만드는데 애써주길 바란다”라는 마음을 내비쳤다.
1세션 교육부 관계자로 참석한 장미란 교육부 산학협력일자리정책과 과장은 “LINC 3.0을 기획하면서 고민한 것이 ‘산학협력센터’”라며 “지역‧대학별로 어떤 교육을 진행하는지, 어떤 산업체와 어떻게 협력해 결과물들을 만들어내는지를 공유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답했다. 일종의 정보 공유 플랫폼 구상을 밝힌 셈이다.
장 과장은 “기업이 대학과 협력하면 금리 우대를 받거나 정부지원사업 신청 시 가점을 받을 수 있도록 할 생각”이라며 “‘K-ESG’ 평가에 산학협력 부분을 평가 항목으로 넣기 위해 여러 부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는 현장실습 중심으로 운영되는 산학협력이 아니라 공동연구나 기술이전 중심으로 산학협력의 색을 더 짙게 만들겠다는 구상으로 풀이된다.
조태성 한국일보 기자는 “산학연 협력의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고등교육교부금법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며 대학에서 학생들이 많은 경험을 쌓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강조했다.
이번 융합세미나는 △한국문화정책학회 △한국비교정부학회 △한국산학협력정책학회 △한국자치행정학회 △한국지방정부학회 △한국정책분석평가학회 등 6개 학회가 주최하고 △한국행정학회 문화행정연구회 △한국행정학회 보건의료융합특별위원회 △가톨릭관동대학교 보건의료융합연구소 △중앙대학교 인문콘텐츠연구소 등 4개 연구소와 연구회가 함께 참여해 논의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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