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NFT ‘열풍’이다. 최근의 디지털과 인터넷 문화, 콘텐츠, 산업 트렌드는 NFT를 빼놓고 설명할 수가 없을 정도다. 혹여 NFT가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는 사람이라도, ‘지루한 원숭이 요트 클럽’이니, ‘크립토펑크’니,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심지어 때로는 별로 미학적 가치가 있는지도 모르겠는) 원숭이 그림이나 점으로 대충 찍어낸 듯한 사람 얼굴 그림 한 장의 호가가 몇 억에 이른다는 기상천외한 이야기를 접한 적이 있을 것이다. 유명한 예술가의 작품도 아니고, <모나리자>같은 명화처럼 ‘진품’의 아우라가 남달라 걸어 두고 감상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디지털 ‘원본’과 사본의 질이 다른 것도 아니고, 그림의 복제가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간단한 구글링으로도 수많은 NFT 이미지를 확인 및 복사할 수 있다). 그럼에도 2022년 NFT 시장은 원화 기준 거의 3조에 육박하며, 마돈나, 저스틴 비버, 지미 팰론, 패리스 힐튼, 에미넴, 스테픈 커리 등 우리에게도 익숙한 전세계적인 셀러브리티들이 앞다퉈 소장하고 과시하는 값비싼 수집품으로 취급되고 있다. 대체 NFT가 무엇이길래? NFT는 ‘대체불가능 토큰(Non-Fungible Token)’을 일컫는 용어로, 블록체인에 저장된 디지털 데이터의 고유한 단위를 말한다. 그 이름이 말하듯 ‘대체불가’한 고유성을 띤 일종의 ‘진품’증명서로, 디지털 원본의 발행, 판매 및 구매 이력, 소유권 정보가 모두 블록체인에 기록 및 저장되어 사본과의 차별성을 입증하는 자료가 된다. 따라서 NFT를 소유한다는 것은 물리적 작품 자체보다도 작품의 원본성, 고유성이 가져다주는 무형의 ‘가치’ 획득에 가깝다. 객관적인 가치를 산정하기 어려운 예술 작품처럼, 일정한 시장가격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주로 오픈시(OpenSea), 슈퍼레어(SuperRare) 등 NFT 특화 거래소를 통한 경매 방식으로 거래된다. NFT로 ‘민팅’(minting, 발행을 의미)할 수 있는 소재는 단순한 디지털 이미지에 국한되지 않는다. 예술작품이나 전통 문화재부터 미디어 아트, 스포츠 경기나 음원, 게임, 가상현실 내 디지털 부동산까지, 우리가 발행하고, 소유하고, 거래할 수 있는 NFT의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웹의 미래에 대한 근래의 논의에서 특히 NFT가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이것이 가져오는 새로운 경제적 기회가 기존의 디지털 가치 생태계를 바꿀 것이라는 기대에 있다. 이러한 인식은 ‘플랫폼 시대(Flew, 2021)’로 규정될 만큼 플랫폼 일변도였던 지금까지의 인터넷 환경에 변혁을 촉구하는 목소리와 궤를 같이한다. 플랫폼은 잠재적 고객 접촉과 유통 확대, 안정적 거래 등을 위한 시장을 제공할 뿐 아니라 상품과 서비스 및 콘텐츠 거래 등의 관리자로서 온라인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경제행위의 필수적인 중재자(intermediaries)로 자리해 왔으나, 동시에 그 독점적 지위의 남용으로 지탄의 대상이 되어 온 바 있다. 플랫폼 운영의 핵심적인 사항에 대한 의사결정에서도 이용자의 목소리는 소외되어 왔다. 예컨대, 유튜브에서 콘텐츠에 붙은 광고 수익은 유튜브에 45%, 창작자에 55% 비율로 배분되며, 게시된 콘텐츠에 대한 최종적인 수익권은 창작자가 아닌 유튜브 플랫폼에 귀속된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문제시하면서도 정작 플랫폼의 울타리를 벗어나기는 어려운 딜레마에 빠진 상황에서, NFT는 ‘판도’를 바꿀 하나의 전환점으로 여겨졌다. 분산형 블록체인 기반의 NFT시장에서는 원칙적으로 플랫폼의 중개 없이도 판매자와 구매자 간 ‘직접적’ 거래가 가능하고, 누가, 무엇을, 얼마나, 어떤 조건으로, 누구에게 판매할 것인지 등의 계약 조건에 대해 개별 판매자 주도의 결정이 가능하며, 판매에 대한 수익이나 최종적인 소유권 또한 원칙적으로 거래 당사자의 몫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NFT 시대의 플랫폼은 어떤 모습일까? 적어도 현 상황에서 우리가 익히 알고 경험해 온 플랫폼의 그림자는 건재하며, 이는 어느 정도 필연적이다. ‘정가’가 존재하지 않는 NFT는 더 많은 사람들이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함에 따라 그 가치가 상승하게 되는데, 여기서 이용자가 증가할수록 그 가치가 더해지는 ‘네트워크 효과(Katz & Shapiro, 1994)’를 핵심적인 작동 원리로 삼는 플랫폼의 존재양식이 NFT 성장을 위한 필수적인 자양분이 되는 까닭이다. 앞서 언급한 오픈시나 수퍼레어 또한 NFT 전문 ‘플랫폼’이다. 창작자와 창작물의 풍부한 공급, 다양한 배경과 이해관계를 가진 시장참여자의 지속적인 교류와 거래가 NFT 시장의 성패를 가르는 필수적 조건이 될 것이며, 이러한 관점에서 기존의 플랫폼을 대체할 모델은 쉬이 떠오르지 않는다. 혹자는 기존의 ‘중앙집중형’ 혹은 ‘분산형’ 시스템의 차이에 주목하여 NFT에 기반해 등장하는 플랫폼들의 ‘새로움’을 논한다. 기존의 플랫폼은 대부분 중앙집중형 서버에 이용자 데이터를 저장하고 플랫폼 자율적으로 운영규약 및 정책에 대해 결정하는 지배구조를 채택하고 있는 반면 NFT의 기반이 되는 블록체인 분산형 인터넷 환경에서는 이용자가 개개인이 선호하는 개별 저장소나 서버에 데이터를 저장하고 여기에 대한 주체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통 거래가액의 2.5% 정도로 책정되는 NFT 플랫폼의 거래 수수료도 기존 플랫폼에 비해 합리적이다. 그러나 분산형 시스템 자체가 플랫폼의 의사결정 혹은 지배구조의 변화를 의미하는지를 묻는다면, 얘기는 조금 복잡해진다. NFT 플랫폼의 대표주자인 오픈시의 경우 블록체인 기반 NFT 거래를 지원함에도 운영에 있어 기존의 중앙집중형 거버넌스를 채택하고 있는데, 여기에 대해 이용자의 시스템에 대한 수평적 의사결정을 보장하지 못하고 플랫폼에 경제력이 집중되는 독점 체제로의 회귀와 같은 기존 플랫폼의 한계에 제기되던 동일한 비판이 적용될 수 있다. 그럼에도, NFT에서 발견될 수 있는 표절 혹은 도용의 위험성을 조기에 차단하고, 시스템에 침투하는 버그나 해킹 공격 등 NFT의 거래 단위인 가상화폐의 안전성 위협에 대해 즉각적으로 조치하는 등 중앙집중형 지배구조의 효율적이고 신속한 의사결정을 요하는 여러 이슈들이 존재한다. 따라서, 중앙집중형 구조에 대한 섣부른 가치판단은 아직 시기상조일 수 있다. NFT 확산이 필연적인 플랫폼의 권력구조적 변화로 귀결되리라 예측할 수 없는 이유다. 일부 플랫폼 이용자들에게도 NFT가 무조건적인 낙관의 대상은 아니다. 국내에서는 NFT와 연동된 엑시인피니티 등 P2E(play-to-earn) 게임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대세이나, NFT와 가장 밀접하게 관련된 전세계의 게임 개발자나 게이머 커뮤니티가 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사실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올해 초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된 게임 개발자 컨퍼런스에서 2천 7백여명의 게임 개발자를 설문한 결과, 70%이상의 개발자가 NFT와 가상화폐 도입 및 개발에 관심이 없다고 답한 바 있다. 유비소프트(Ubisoft), 일렉트로닉 아트(Electronic Arts), 팀 17(Team 17) 등의 게임개발사는 자사 이용자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NFT 도입 계획을 철회하기도 했다. 게이머들은 NFT가 게임을 더 재미있게 만들어주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NFT를 가지지 못한 게이머의 플레이에 제약이 될 수 있다고 항의한다. 이는 주로 거대 자본의 개입으로 추진되는 NFT의 게임 도입이 궁극적으로 소비자보다는 기업의 이윤 추구를 위한 방식으로 적용될 것이라는 우려와 맞닿아 있다. 이는 음악이나 예술 영역에서의 NFT의 적용과는 사뭇 다르게 나타난다. 많은 팬 커뮤니티는 NFT 구입을 통해 주목받지 못했던 변방의 예술을 후원하여 문화의 지평을 넓히는 동시에 소외된 비주류 예술가들과 보다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예술 향유의 경험을 차별화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어서다. 결국 플랫폼이 속한 업계와 이용 커뮤니티의 특성에 따른 조건부 가치판단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 NFT가 가져올 이용자 중심 경제 생태계를 통한 개별 창작자 육성과 보호, 이용자 개개인에 소유권이 분산된 형태의 수평적 조직 형성, 자율적이고 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 창출… 플랫폼의 이상적인 미래상으로 흔히 나열되는 구상은 복잡한 현실세계의 문제와 맞닥뜨렸을 때 당초의 생각만큼 ‘이상적’이거나 ‘현실적’이지 않을 수 있다. 과연 NFT가 현재 플랫폼에 편중된 인터넷 권력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촉매가 될 수 있을까? 유튜브나 메타, 틱톡 등 기존의 거대 플랫폼이 그들 비즈니스 모델의 일부로 NFT의 ‘자체 상품화’를 시도하고, 최근의 시세 급락과 맞물려 가상자산의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대두되는 지금, 플랫폼과 인터넷의 미래에 대한 희망은 그저 요원한 꿈으로 남게 될까. 박소영 (중앙대학교 인문콘텐츠연구소 HK연구교수) 참고문헌 Flew, T. (March 18, 2021). Communication Futures for Internet Governance. Available at SSRN: https://ssrn.com/abstract=3806967 or http://dx.doi.org/10.2139/ssrn.3806967 Katz, Michael L., and Carl Shapiro. (1994). Systems Competition and Network Effects. Journal of Economic Perspectives, 8(2). 93-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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