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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로봇에 대한 신뢰, 그리고 사회적 생명에 관하여
Level 10조회수220
2022-09-13 13:52

 <2022인공지능인문학 추천도서 독후감 경연대회 일반부 수상작> 


 
   로봇1은 사람을 대체할 수 있을까? 그 답은 인문학적 담론에서는 주로 우려로, 경제 담론에서는 주로 기대로 표현된다. 필자는 공학 전공자로서 몇몇 데이터과학 알고리즘을 공부했고, 현재는 기업체에서 그것들을 적용해 업무 자동화, 고도화를 구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주로 경제 담론 관점에서, 앞서 언급한 기대를 목표로 제안서를 쓰고 일거리를 만든다. 하지만 실제 프로젝트는 기대만으로 진행되지도, 기대한 방향 그대로 진행되지도 않는다. 우리가 빵만으로 살 수는 없지 않던가?

사람에 대한 불신(不信)

   인문학적 담론은 사람이 대체되는 데에 주로 우려를 표한다고 했지만, 인문학도 때로는 사람을 불신했다. 동양의 법가 사상이 대표적이다. 유가가 성선설을 바탕으로 덕치를 주창한 것과 달리 법가는 성악설에 근거한다. 순자가 성악설에 근거하면서도 방법론으로는 예치를 주창한 것과 또 다르게 한비자의 법가사상은 상과 벌을 적합한 수단으로 보았다.2 
   앞선 논의가 선악을 다뤘다면, 보다 경제 냄새가 나는 담론으로 테일러리즘이 있다. 그는 노동자들의 '솔선'에 의존하는 '주먹구구식' 관리보다, 체계적 분석을 거쳐 성문화된 법칙과 공식들이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것이라 주장했다. 노동자의 '솔선'에 대한 의존을 비판하고 경영자 주도의 '과학적' 관리를 주창하는 그의 요지3는, 그의 저서 『과학적 관리의 원칙』 전 페이지에서 에코처럼 울려 퍼진다.

  이 로봇들은 복도를 이리저리 돌아다녀야 하는 사람보다 훨씬 빠를 뿐만 아니라, 휴식을 취하지도, 코로나19를 걱정하지도, (아마존이 유럽과 미국에서 경험한 것처럼) 열악한 작업 환경에 대해 항의하지도 않는다. 가끔 나타나는 컴퓨터 바이러스를 뺴면 전염성 질병에 면역이며, 접촉자 추적과 검사, 검역, 살균으로 야단법석을 벌일 일도 없다. 4

   사람을 대체하는' 로봇에 대한 기대를 담은 책이나 기획안을 보고 있노라면 테일러가 떠오를 때가 많다. '솔선'의 바통을 '사람', '아날로그' 등의 단어가 이어받았고, '과학'의 바통은 '로봇', '알고리즘' 등의 단어가 이어받았다. "사람에 의한 운영은 비효율적이고, 사회적 갈등과 질병에 대한 노출 등 예측하기 어려운 리스크를 내포하고 있어 기업 입장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그래서 어서 '디지털 전환'을 해야할 것만 같다." 이러한 인식은 근래의 팬데믹을 거치며 더 확산되었을 것으로 보인다.5 

우리는 어떤 로봇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디지털 전환'의 주역인 로봇은 어떤 모습일까? 사람에 의한 것들을 스스로 해낼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하는 만큼, 로봇의 수준이 사람에게 비견할 만한 것인지에 대해 관심이 뜨겁다. 그렇다면 로봇은 인간을 닮아야 할까? 우리가 사람의 한계를 토로하며 로봇을 소환해낸 것은, 프랭크 윌첵이 말한 '증강기술의 역사'와 맥락을 같이 한다. 그리고 윌첵은 그 결정체로서의 인공지능은 인간의 뇌와는 상당히 다른 형태일 것이라 전망했다.6 
   사람에 의한 것들을 부정적으로, 비인간에 의한 것들을 긍정적으로 서술한만큼 우리가 로봇에게 기대하는 바 역시 사람을 꼭 그대로 닮은 모습은 아니다. 실제로 인공지능을 - 특히 지도학습을 - 적용한 알고리즘을 구상할 때 이것은 예상보다 큰 난관으로 다가온다. 데이터는 로봇을 가르치는 교과서의 역할을 한다. 그런데 사람에 의한 작업이 남겨둔 데이터베이스는 사실상 무수히 많은 오답노트에 가깝다. 기껏 다량의 데이터를 확보했건만 그 데이터로 로봇을 학습시키면 안 되는 상황인 것이다. 데이터는 스스로 로봇을 온전히 가르치지 못한다. 결국 로봇의 학습 방향은 데이터가 아닌 설계자의 몫으로도 남는다.
   엔카 드라간은 강화학습을 예로 들어 인간 스스로가 원하는 바를 명시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설명했다.7 이는 비단 강화학습에만 해당되는 어려움은 아니다. 소프트웨어 개발, 알고리즘 구상 전반에 걸쳐 필연적으로 내포되어 있는 문제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코드를 작성하고 디버깅하는 매순간 자신의 코드가 왜 이상한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자문해야 한다.
   여러 인공지능 알고리즘의 공통점을 하나 들라면 해석 가능성과 정확도를 맞바꾼 것이라 하겠다. 해석이 불가능하리만치 복잡하기 때문에 이상한 결과의 원인을 규명해내기가 훨씬 어렵다. 엔카 드라간이 하필 강화학습을 예로 든 것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적합하다. 알고리즘은 복잡해짐으로써 유연성을 얻었고, 다량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파라미터 최적화만 잘 하면 매우 높은 정확도를 달성할 수 있다. 하지만 앞서 자신의 코드에 대해 자문하던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이제는 반대 방향으로 자문해야 한다. 왜 자신의 코드가 정확한 결과를 만들어낸 것일까? 그리고 그는 답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누가 로봇을 평가할 것인가?

  알고리즘의 복잡성 문제는 로봇을 학습시키고 개발하는 관점을 넘어서, 그것을 현실에 정착시킬 때에도 이슈가 된다. 필자는 현장 개선을 해보겠다고, 담당자들이 수작업으로 몇 시간 하던 업무를 간단히 풀어주는 데이터 알고리즘을 개발한 적이 있다. 전체적인 성능에서 알고리즘이 뛰어나다는 점을 미리 메일로 알려주었고, 담당자들은 미팅 자리에서 개별 사례들에 대해 함께 검증하자고 했다. 하나하나 뜯어보던 담당자들은 왜 특정 사례에 대해 알고리즘이 자신들과 다른 방식으로 의사결정 했는지 물었다. 인공지능을 적용한 수준이 아니었음에도 필자는 답을 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꼈다. 그날의 일은 다행히도 담당자가 "당신이 만든 프로그램인데 왜 당신이 설명을 못합니까?"라고 껄껄 웃으며 해프닝으로 마무리 되었다.

   우리가 사람의 뇌가 작동하는 방식을 잘 모르는 현실을 묵과하는 이유는 사람의 뇌가 항상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며, 인간이 자신의 자연언어를 사용해서 타인과 소통할 수 있고, 배울 수 있으며, 타인을 지도하고, 동기를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로봇이 알파고처럼 불투명한 존재가 된다면 (후략)8

   필자가 만난 담당자들은, 프로그램이 작동하는 방식을 잘 모르는 현실을 묵과한 채 그것을 잘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만약, 알고리즘의 성능을 평가하는 기준에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거나, 혹여나 발생할 수 있는 프로그램의 오작동이 야기할 위험이 매우 중대하다는 등 상황이 조금만 달랐더라면 주디아 펄이 말한 바와 같이 '묵과'의 기준은 매우 까다로워졌을 것이다. 주디아 펄의 지적이 또 한 번 흥미로운 것은, 로봇을 불신하고 사람을 신뢰하는 이유를 서술했다는 점에 있다. "사람은 속도, 정확성, 지구력에 있어서 오늘날의 로봇을 당해낼 수 없다."9  필자는 담당자들의 엑셀 파일에서 발견된 갖가지 실수들을 떠올리며 요시 셰피의 말에 동의하면서도 언제나 로봇의 정확성을 신뢰할 수 있는지의 질문에 대해서는 자신있게 동의하지 못한다. 사람은 우연히 실수로 일을 그르칠 수 있고, 로봇은 가끔 우리는 이해할 수 없지만 스스로의 필연적인 프로세스를 거쳐 일을 그르칠 수 있다. 결국 조지 다이슨의 말처럼10 , 사람과 로봇의 대체 관계 역시 '신뢰'의 문제가 될 것이다. 한 발짝 더 나간다면, 이 신뢰는 사람들 간 '합의'의 문제가 아닐까?
  장하준 교수는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서 인터넷보다 세탁기가 세상을 더 많이 바꿨다는 도발적인 주장을 폈다. 비슷한 맥락에서 적어도 현재까지는 파이썬보다 스프레드시트가 세상을 더 많이 바꾸지 않았을까? 엑셀이 호모 사피엔스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프로그래밍 시스템이라는 피터 왕의 말에, 필자는 크게 동의한다.11  그런데 스프레드시트는 '디지털 전환'의 대척점에 있는 것 같다. 필자 또한 스프레드시트가 유발하는 여러 문제점12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업무 현장에서는 스프레드시트야말로 프랭크 윌첵의 '증강 기술'로서, 사람에 의한 업무를 고도화해낸 '사람의' 도구였다.
  앞서 언급한 한비자는 시대 간의 질적 차이에 주목했다. 필자가 만난 담당자들이 난생 처음 보는 공급망 불안에 창의력을 발휘해 만든 스프레드시트로 대응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동시에 '시스템에도 생명이 있다'라던 필자의 선배의 말도 떠올려본다. 그 생명이란, 인간 사회에서의 '사회적 생명'이리라. 로봇을 재생산하고, 그것에 대한 신뢰를 합의하여 새로이 사회적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결국 누구의 몫일까? 물론 사람의 사회적 생명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필자 : 박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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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공지능'과 '로봇'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로봇'을 사용했음을 각주에 기록해둔다. 단어 AI(Artificial Intelligence)의 쓰임새가 폭증하면서 주로 이것과 무리지어 연상되는 개념들이 여럿 있으나, 이 글에서 필자는 그것들만을 대상으로 삼으려는 것은 아니다. 이 글의 제재는 비인간에 의한 자동화다. 예컨대 RPA(Robotic Process Automation) 기술을 보자. RPA는 인간의 잡다한 작업을 자동화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대개 AI와 무리지어 연상되는) '학습'을 동반하지는 않는다. 필자가 기계에 대해 문외한임을 고려하면, 엔카 드라간의 글에 등장하는 '비물리적 로봇'이야말로 이 글의 대상을 정확히 지칭한다고 하겠다.
2.  "한비는 당시의 혼란한 시대적 상황에서 유가들이 내세우는 주장은 군주의 지위를 낮추고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았다. 한비는 순자와 달리 예치가 아닌 법치를 주장한다. (중략) 순자는 사회적 행위규범인 예가 고금을 통해 일관된 것임을 인정한다. 이러한 예 관념은 시대 간의 질적 차이를 인정하는 한비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한비의 법은 시대를 관통하는 것이 아니라 각 시대마다 그 내용을 달리 하는 것이다.", 윤찬원, 『한비자, 바른 법치의 시작』, 살림, 2013
3.  "구식의 경영형태하에서 어떤 경영방식의 성공은 노동자들의 '솔선'을 얻는 것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한다. 그리고 사실상 이 '솔선'이 정말로 얻어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과학적 관리하에서는 노동자들의 '솔선' - 즉 그들의 성실, 선의, 창의성 - 이 과거의 경영체제 하에서보다 훨씬 더 획일적으로 또 훨씬 광범위하게 얻어진다. (중략) 경영자들은 과거에 노동자들이 보유해왔던 모든 전통적인 지식을 모으고 분류하고 표로 만들고, 이 지식을 노동자들의 일상작업에 매우 도움이 되는 원칙과 법칙, 공식들로 바꾸는 부담을 떠맡는다.", 프레드릭 W. 테일러, 박찬후 옮김, 『과학적 관리의 원칙』, 박영사, 1994
4.  요시 셰피, 김효석∙류종기 옮김, 『뉴 애브노멀』, 드루, 2021
5.  Mckinsey, Industry 4.0 : Reimagining manufacturing operations after COVID-19, 2021
6. "인간의 몸과 마음을 개선하려는 것은 인간이 지닌 본능이다. 역사적으로 옷, 안경, 시계는 인간이 강인함, 지각, 의식을 향상하고자 했던 정교한 증강 기술의 역사다. (중략) 자기 향상과 혁신을 향한 이러한 충동은 인간을 어디로 이끄는가? 정확한 사건의 순서와 소요 시간은 예측할 수 없지만(최소한 나는 할 수 없다), 몇몇 기본적인 고려 사항들이 제시하는 대로라면, 결국 가장 강력한 마음의 통합체는 현재 우리가 아는 인간 뇌와는 상당히 다른 형태가 될 것이다.", 프랭크 윌첵, 김보은 옮김, 「지능의 통합」, 『인공지능은 무엇이 되려 하는가』, 프시케의 숲, 2021
7.  "보상을 최적화하려는 로봇의 행보는 설계자인 인간에게 처음부터 로봇이 최적화할 수 있는 적절한 보상을 주어야 한다는 더 큰 짐을 지운다. 원래 발상은 인간이 로봇에게 시킬 일이 있으면 로봇의 올바른 행동을 장려하는 보상 함수를 기록하는 것이었다. 불행히도 인간이 보상 함수를 구체적으로 명시하면 그 보상을 최적화하기 위해 나타나는 로봇의 행동이 우리가 원하는 행동이 아닌 경우가 자주 일어난다. (중략) 진공 청소 로봇에게 먼지 흡입량에 따라 보상하면, 로봇은 흡입한 먼지를 다시 뱉어내서 흡입하는 동작을 반복함으로써 보상을 받으려 한다.
 인간은 대개 자신이 정확하게 무엇을 원하는지를 명시하는 데 끔찍할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소원을 들어주는 수많은 지니 신화가 이를 입증한다. 외부에서 명시한 보상을 받는 로봇이라는 인공지능 패러다임은 보상을 완벽하게 심사숙고해서 설계하지 않으면 실패한다.", 엔카 드라간, 김보은 옮김, 「인간을 인공지능 방정식에 끼워 넣기」, 『인공지능은 무엇이 되려 하는가』, 프시케의 숲, 2021
8.  주디아 펄, 김보은 옮김, 「불투명한 러닝머신의 한계」, 『인공지능은 무엇이 되려 하는가』, 프시케의 숲, 2021
9.  요시 셰피, 김효석/류종기 옮김, 『뉴 애브노멀』, 드루, 2021
10. "무언가를 구축하기 위해 반드시 그 대상을 이해할 필요는 없다. 뇌처럼 작동하는 기계를 만들기 위해 뇌가 움직이는 방식을 완벽하게 알 필요는 없다. 프로그래머와 윤리적인 조언자들이 알고리즘을 아무리 감시해도 해결할 수 있는 허점이 아니다. '착한' 인공지능은 신화일 뿐이다. 인간과 진정한 인공지능의 관계는 언제나 증거가 아니라 신뢰의 문제가 될 것이다.", 조지 다이슨, 김보은 옮김, 「제 3원칙」, 『인공지능은 무엇이 되려 하는가』, 프시케의 숲, 2021
11.  "파이썬 기반 데이터 과학 플랫폼 '아나콘다(Anaconda)'의 CEO 피터 왕은 인터뷰를 통해 '엑셀은 호모 사피엔스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프로그래밍 시스템'이라면서 '머글도 이 도구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데이터를 집어넣고, 질문하며, (그리고) 모델링을 한다'라고 말했다.", Matt Asay, CIO코리아 옮김, 「파이썬의 궁극적 목표는 엑셀을 대체하는 것이다」, InfoWorld, 2021
12.  정리를 잘한 글이 있어 소개한다. Isaac Sacolick은 데이터 품질 문제 유발, 협업 저해, 대규모 데이터셋을 다룰 수 없는 점 등을 스프레드시트의 단점으로 들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 글 참조. Isaac Sacolick, IT World 옮김,「스프레드시트가 비즈니스를 망치는 5가지 이유」, InfoWorld,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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