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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작기계, 감각기계, 생각기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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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16 14:15

인간기계와 기계인간, 두 합성어의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 인간기계는 기계에 방점이 있고, 기계인간은 인간에 방점이 있다. 요컨대 전자의 ‘존재론적’ 규정은 ‘인간 같은 기계’며, 후자는 ‘기계 같은 인간’이다. 굳이 사례를 찾자면 인간기계는 AI를 탑재한 로봇, 기계인간의 경우는 기계와 결합한 인간, 말하자면 사이보그쯤 될 것이다. 이 차이는 결정적이지만 꼼꼼히 뜯어 살펴보면 경계는 희미해진다. 
우선 차이를 보자. ‘물리적으로’ 구분하자면 인간은 유기체, 기계는 무기체다. 또한 인간은 생명체로 성장과 번식, 소멸의 과정을 밟는다. 반면 기계는 생명체가 아니며 따라서 성장과 번식, 소멸이라는 이른바 ‘생명현상’을 거치지 않는다. 또 다른 중요한 차이는 기계가 인간이 제작한 ‘도구’라는 점이다.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기계를 고안했다. 신체의 물리적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고안된 ‘동작기계’는 힘과 속도의 측면에서 인간보다 우월했다. 각종 공작기계에서부터 자동차, 항공기 등이 그것이다. 감각기관의 불완전함을 보완하기 위한 기계, 소위 ‘감각기계’도 있다. 망원경과 현미경, 축음기, 카메라 등을 통해 인간의 감각능력은 무한히 확장됐다. 나아가 인간의 사고과정을 모방한 ‘생각기계’도 진화하고 있다. 기계학습을 바탕으로 빠르고 정확하게 정보를 처리하는 AI가 그 예다.
실상 인간이 ‘제작한’ 기계는 모두 인간을 모방한 것이다. 동작기계는 인간의 행위를, 감각기계는 감각능력을, 생각기계는 인간의 사고과정을 따라할 수 있도록 고안됐다. 그런 점에서 인간과 기계의 ‘근본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양자는 서로 닮았다. 이 ‘인간을 닮은 기계’에 대한 기획은 17세기 과학혁명 이후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여 현재의 휴머노이드로까지 진화했다. 그 기획의 첫 단계는 18세기의 오토마타, 말하자면 스스로 작동하는 기계다. 계몽주의 철학자 디드로와 달랑베르는 <백과전서>를 저술하면서 오토마타를 “스스로 움직이는 엔진, 혹은 자체로 운동의 원리를 지닌 기계”로 정의한다. 그리고 오토마타의 일종인 안드로이드를 “인간의 형상을 하고, 용수철이나 다른 장치를 사용하여 인간과 외적으로 유사하게 행동하거나 다른 기능을 수행하는 오토마타”로 분류한다. 18세기의 대표적인 오토마타 제작자 자크 보캉송(Jacques Vaucanson)은 플루트를 부는 오토마톤, 북 치는 오토마톤, 인공오리를 제작했고, 피에르 자케-드로(Pierre Jacquet-Droz)는 글 쓰는 오토마톤, 그림 그리는 오토마톤, 피아노 치는 오토마톤을 제작했다. 이미 이 시기에 인간의 정교한 행위를 모방하는 기계가 완성됐던 셈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인간의 행위를 모방하는 기계를 제작했을까?
 


<자크 보캉송의 오토마타>, <자케-드로의 오토마타>
 

 

<자케-드로의 글쓰는 오토마톤> 

 인간과 기계의 ‘구조적’ 동질성을 믿었기 때문이다. 단초는 ‘동물기계론’이다. 대표적 기계론자였던 데카르트는 동물의 신체와 기계는 구조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주장한다. 요컨대 “다양한 오토마타나 움직이는 기계를 구성하는 부품들을 동물의 신체 속에 있는 뼈와 근육, 신경, 동맥, 혈관 등과 비교할 때 신체를 기계로 간주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18세기의 유물론자 라 메트리는 인간의 신체 역시 ‘동물기계’의 관점에 따라 기계와 다를 바 없으며 차이는 단지 ‘구조적 복잡성’에 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요컨대 인간은 ‘복합기계’라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동작을 모방한다 해서 기계와 인간이 같다고 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도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며, 자의식을 갖기 때문이다. 그래서 데카르트는 인간의 ‘영혼’이 신체와 별개로 따로 존재한다고 주장하며 영혼불멸설을 포기하지 않는다. 반면 라 메트리는 영혼의 존재를 주장하면서도 그것이 물질의 산물이라는 입장을 취한다. 즉 생명이 다해 신체라는 물질이 소멸하면 영혼도 함께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라 메트리는 철저한 유물론자다.
기계는 어떨까? 인간의 행위를 똑같이 모방하는 로봇에게 자의식이나 영혼이 없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제 아무리 로봇기술이나 AI기술이 발전한다 해서 자의식을 지닌 기계가 가능할 것 같지도 않다. 그런데 현대 뇌과학이나 인지과학 분야의 연구 결과들은 인간의 의식 또한 뇌세포의 뉴런에서 작동하는 알고리즘의 산물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의 사고도 기계적이라는 뜻이다. 기계학습 원리 중의 하나인 인공신경망이 뇌의 인지 과정을 모방한 것임을 고려하면 인간과 기계의 거리는 더욱 좁혀졌다고 할 수 있다. 그 속도가 빨라진다면 자의식을 지닌 기계가 ‘언젠가는’ 나올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반대로 그런 기계는 SF에서나 가능하다는 주장도 있다. 어떤 주장이 현실에 가까운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인간과 기계의 차이가 지속적으로 좁혀져 왔다는 점이다.
기계시대의 개막 이후 인간은 줄곧 기계와 공존해 왔다. 현대문명의 눈부신 성장은 기계의 도움 없이 불가능했다. 동작기계의 힘과 속도는 산업혁명을 이끈 동력이었고, 감각기계는 인간의 감각능력을 확장시켜 세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주었다. AI라 불리는 생각기계는 이제 인간이 풀 수 없었던 다양한 문제들을 ‘대신’ 해결해주면서 과거에 없었던 또 다른 세계를 열고 있다. 그 과정에서 인간과 기계의 관계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기계는 ‘본래’ 도구였다. 필요하면 가져다 쓰고 효용성이 다할 때 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이제 기계는 인간을 닮아가고 있다. 비록 ‘아직은’ 생명 없는 사물에 불과하나 가족이나 친구의 지위에 버금가는 기계가 나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이미 ‘가상인간’이 우리의 일상 가까운 곳에 와있는 상황이다. 결국 인간은 기계와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해야 할 것이다. 물론 아시모프의 경우처럼 ‘두려운 기계’를 고려하여 로봇은 인간에게 위해를 가하지 말아야 한다는 로봇공학 3원칙을 설정할 필요도 있지만, ‘윤리적’ 관계를 염두에 두고 현명한 공존방식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기도 하다.

박평종 (중앙대학교 인문콘텐츠연구소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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