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은 소설 작가가 될 수 있을까?” 2016년 일본에서는 AI가 쓴 SF 단편소설 <컴퓨터가 소설을 쓰는 날>이 호시 신이치 문학상의 1차 예심을 통과한 적이 있고, 2018년 국내에서 KT가 주관하는 “인공지능소설공모전”이 개최되기도 하였다.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고 생각되었던 소설 창작에 AI의 도전이 이루어지고 있다. 인공지능의 글쓰기는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종합하여 재구성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글쓰기 방식은 기존의 이야기를 조합하고 배치하여 새로운 작품을 창작하는 웹소설의 스토리텔링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웹소설은 고전과 현대의 다양한 이야기들, 그리고 마스터 플롯과 수많은 클리셰 등을 차용하고 변주하여 인물, 사건, 배경 등의 세계관을 구성하고 서사를 전개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독자들의 관심을 유도하고 이야기의 개연성을 확보한다. 이러한 웹소설의 스토리텔링은 “모든 텍스트는 인용구들의 모자이크로 구축되며 모든 텍스트는 다른 텍스트를 받아들이고 변형시키는 것”이라는 크리스테바의 상호텍스트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정보를 조합하고 배치하는 스토리텔링은 웹소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소설을 쓴다는 것은 이미 존재하는 세계를 조합하고 배치해서 또 하나의 세계를 완성해가는 작업이며, 21세기 한국소설의 한 특징이 조합형 소설로 파악되는 것이다. 이는 정지돈의 소설을 도서관 소설, 지식조합형 소설로 평가한다거나, 김중혁 소설가가 스스로를 ‘레고블럭’이라고 지칭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즉 정보의 조합과 배치의 스토리텔링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오늘날의 대중문학과 순수문학 모두에서 활용되는 것이다. 인공지능의 소설 창작에 대하여 학계는 두 가지의 상반된 반응을 보여주었다. 그중 하나는 인공지능의 예술이란 창의라기에는 미흡한 의사(pseudo) 예술품을 대량 생산하는 작업이 될 것이고 예술적 글쓰기는 인간의 영역에 머물 것이라는 반응이고, 다른 하나는 창작 행위의 주도권이 인간에서 인공지능으로 넘어가기 시작했으며 인간이 만든 도구가 인간보다 훨씬 우월한 사고와 표현력을 지닌 창작의 주체가 될 것이라는 반응이다. 그런데 인공지능은 창의성을 지닐 수 없다는 관점에서 21세기 한국문학은 과연 창의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다분히 인간 중심적인 관점에서 인간이 만든 조합형 소설은 창의적이고, 인공지능이 만든 소설은 창의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물론 현재의 인공지능 소설은 인공지능이 만들어냈다기에 놀라울 뿐 단어도 부자연스럽고 문장도 유기적이지 못하며 전체 서사의 방향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 기반 언어생성 모델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2019년에 OpenAI는 GPT-2(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 2)를 공개하였다. GPT-2는 약 800만 건의 웹페이지 데이터와 약 1,000만 건의 텍스트 데이터라는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한 인공지능 기반의 언어생성 모델이다. GPT-2는 단어나 문장을 키워드로 제시를 하면 약 40GB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기존에 인간들이 작성하던 뉴스 기사, 블로그 게시글, 소설 등의 글을 작성할 수 있다. 이러한 GPT-2의 글은 원인에서는 기존의 글(데이터)을 분석 종합 재구성하는 기계적 작업의 산물임에도 결과에서는 인간의 글과 마찬가지로 독립된 글(텍스트)로서 의미와 효용을 갖는다. 이는 인공지능이 충분한 양의 데이터를 학습하면 창의력과 자율성, 예술성을 획득할 수 있음을 증명한다고 할 수 있다. 이후 2020년 OpenAI는 또다시 GPT-3를 공개하였다. GPT-3는 GPT-2보다 최대 1000배나 큰 1750억개의 매개 변수를 가지고 있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GPT-2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더 큰 모델로 더 많은 데이터를 학습한 GPT-3의 글쓰기는 이제 인간의 수준과 다를 바 없다고 평가받는다. 인간과 GPT-3 사이의 대화에서 누가 인간이고 누가 인공지능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가 된 것이다. 나아가 GPT-3의 모방 표현은 인간의 정체성, 대행자, 불멸성 등에 대한 기존 개념의 변화를 초래할 가능성도 논의되고 있다. 이제 인간은 유한한 실존을 바깥으로 노출시키고 물질화하는 존재론적 행위로써 글쓰기의 유일한 주체가 아닐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이다. GPT-2와 GPT-3의 성능 차이는 모델과 데이터의 규모를 늘리는 것만으로 인공지능이 인간의 글과 유사한 수준을 글을 작성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GPT-3의 개발자는 GPT-3가 아직 심각한 약점이 있고 때로는 어리석은 실수를 한다며, 세상을 바꿀 AI의 초기 단계에 해당한다고 이야기한다. 개발자의 말대로 GPT-3가 세상을 바꿀 인공지능의 초기 단계라면, 기술의 발달과 자본의 투자로 지금보다 모델과 데이터의 규모가 획기적으로 늘어난 미래의 인공지능 기반 언어생성 모델은 인간의 것과 구분할 수 없는 창의적인 소설을 창작할 가능성도 존재할 것이다. 최소한 이야기의 조합과 배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웹소설의 공동작가 역할은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인간은 ‘드라마티카 프로(Dramatica Pro)’, ‘스토리헬퍼(storyhelper)’ 등 디지털 서사 창작 도구를 활용하여 이야기를 창작하고 있다. 아직은 공학적인 전문성을 요구하기 때문에 활용되지는 못하지만, 글 쓰는 인공지능 역시 기존의 디지털 서사 창작 도구처럼 실제 소설 작가들의 스토리텔링 도구가 될 날이 올 것이다. 그런데 인공지능 기술이 더욱 발달하여 소설 창작에 있어서 인간과 인공지능의 역할 비중이 역전된다면, 그때에도 인간만이 소설 창작의 주체이고, 인공지능은 도구일 뿐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러한 단계에 이르면 “인공지능은 소설 작가가 될 수 있는가?”는 어리석은 질문이 될 것이다. 글 쓰는 인공지능만 사용하면 누구나 소설을 창작할 수 있는 세상에 소설 작가라는 직업 자체가 유물(遺物)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강우규(중앙대학교 인문콘텐츠연구소 HK연구교수) AI타임스 http://www.ai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14024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