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언제나 환대받는 주제지만 젠더는 어디에서도 시원하게 이야기하기 어려운 주제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젠더의 문제가 드러나도 불편하고, 젠더의 문제를 작정하고 외치면 그 또한 듣고 보기 불편하다. 이런 식으로 젠더의 문제는 사회 안에서 단 한 번도 제대로 말해진 적 없이 이상하고, 불편하고, 불쾌한 어떤 것이 되어 왔다. 젠더라는 불편하고도 오래된 이야기는 인공지능 시대에 노골적으로 매개되기도 하고 은밀하게 감춰지기도 한다. <AI 안과 밖에서 젠더>는 인공지능 기술의 안과 밖에서 목격할 수 있는 사례들을 살펴보며 그 안에서 역사적으로 꾸준히 전복하고 확장해 온 젠더 개념이 어떻게 다시 이분법적이고 위계적인 젠더 관념에 갇히고 마는지 보여주고자 한다. 이 책은 인공지능 기술과 연결하여 젠더의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열 가지 주제로 구성되었다. 각각의 주제는 독립적으로 다루어졌지만 연결해서 읽으면 주제의 배치 자체에서 ‘인공지능과 젠더’이 양가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방식을 드러내고 있다. 첫 장에서는 지금 인공지능이라 불리는 기계학습의 기본 원리인 ‘패턴식별’에 대해 알아보고 기계학습이 젠더를 인식하기 위해 어떤 식으로 우리를 분류하고 기계가 인식할 수 있는 패턴으로 구성하고 있음을 문제화한다. 하지만 포털에서 유해한 콘텐츠를 자동으로 필터링하기 위해 도입된 인공지능 기술에서 젠더의 문제가 어떻게 다루어지는지 살펴보는 두 번째 장에서는 젠더의 문제는 인식되지 않고 끊임없이 배제됨으로써 문제가 된다. 세 번째 장은 인공지능이 젠더 편향을 낳게 된 것의 원인으로 지목받고 있는 여성 데이터 부족에 대해 다룬다. 특히 여성의 데이터가 인공지능 기술 이전에도 역사적으로 부족했고 이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 왔는지 설명한다. 반면 네 번째 장은 여성의 얼굴만 있는 인공지능 기술을 다룬다. 인공지능을 작동하기 위한 여성이 데이터는 부족하지만 상품화된 인공지능의 목소리, 얼굴, 성격 등으로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여성의 외형에 대해 논의한다. 다섯 번째 장은 인공지능 기술, 더 나아가 과학과 기술 발전의 역사가 주도적으로 다루지 않는 여성의 노동에 대해 다룬다.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인공지능 젠더 편향의 대부분은 기술기업의 직원 대부분이 (백인) 남성으로 이루어진 것에서 기인한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사실 과학과 기술의 역사는 백인 남성의 역사로 다루어지는데 이 과정에서 잊혀진 여성들의 노동을 다룬다. 여섯 번 째 장은 여성의 노동을 현재 디지털 전환 및 인공지능 정책의 관점에서 다룬다. 사회 전반을 디지털 인프라 기반으로 전환하고 있는 디지털 전환 및 인공지능 정책 안에서 필수적이지만 정책적으로 소외되고 있는 여성의 돌봄 노동에 대해 살펴본다. 일곱 번째, 여덟 번째, 아홉 번째 장은 우리 사회에 내재되어 있던 젠더의 문제가 인공지능 기술을 통해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 세 가지 서로 다른 영역을 통해 다룬다. 일곱 번째 장은 대규모언어모델 등 인공지능 기술이 사회에 내재된 젠더의 문제를 어떻게 학습하고 있는지 다루었으며, 여덟 번째 장은 인터넷 및 디지털 기술에서 인공지능 기술에 이르기까지 여성을 향한 성범죄가 어떻게 매개되고 정교해졌는지 유해물 생성 인공지능 등을 살펴본다. 아홉 번째 장은 정책이나 윤리에서 젠더의 문제가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는지 비판적으로 살펴본다. 마지막 장은 ‘젠더 균형’이라는 상상이 기술기업이나 정책을 통해 어떻게 실천되고 있으며 사실은 이것이 얼마나 어렵고 상상에 그치는 기획일 뿐인지,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탐색하고 있다. 인공지능 시대에 젠더의 문제는 어디에나 있다. 그리고 젠더의 문제는 또 다른 분류 방식에 의해 기술과 사회가 만들어 낸 ‘경계’를 경험하게 될 모두의 이야기다. 우리는 인공지능 시대라는 기술적 진보를 이루었지만 여전히 ‘젠더’라는 오래된 주제는 논의하기를 꺼린다. 하지만 젠더는 불편하기만 한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다. 인공지능이라 불릴 만큼 기술과 과학의 진보를 이루는 긴 시간동안 지속적으로 배제되어 온 사람, 집단, 이론, 생각들에 대한 이야기다. 이정현(중앙대학교 인문콘텐츠연구소 HK연구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