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예술작품으로서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뒤샹의 <샘>이 등장한 것이 1917년도이니 이미 한 세기가 지났다. 100년도 더 된 뒤샹의 작품이 여전히 우리에게 논란을 낳고 있는 것은 그것이 예술의 정의에 대한 의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뒤샹은 여장을 하고 또 그것을 작품 사진으로 남길 정도로 장난기 많고 익살스러운 인물이었기에 당시에는 무언가 심오한 의미가 있을 거라고 기대하기 보다는 하나의 퍼포먼스, 해프닝으로 여겨졌었다. 뒤샹과 가까웠던 지인들조차 소변기의 형태와 광택에 주목하면서 뒤샹이 변기의 기능과 독립된 미적 아름다움을 표현한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샘>에 대해 뒤샹이 직접 언급한 내용은 전혀 뜻밖이었다. 그는 인터뷰에서 “망막적인 것에 과도하게 부여된 중요성을 재조정하려던 것”이라고 말하였다. 즉 뒤샹은 우리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하던 예술과 시각적 아름다움의 연관성에 의문을 제기했던 것이다. 그런데 뒤샹의 작업이 매우 획기적이긴 했으나, 시각적 아름다움에 대한 의문은 뒤샹보다 50여 년 전에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회화에서 모더니즘 예술의 아버지로 평가받는 마네는 19세기 중후반에 예술에서의 아름다움에 물음표를 던졌다. 아름다움은 오랜 시간 동안 예술의 핵심으로 여겨져 왔으며, 그 표현은 가급적 있는 그대로를 재현함으로써 그림임을 감추고 실재처럼 여겨질 것을 표방하였다. 실재보다 더욱 실재처럼 묘사함으로써 그림은 실재보다 더욱 아름다울 수 있음을 보여주려고 노력해왔다. 15세기 초중반 마사초, 우첼로 등에 의해 완성된 회화의 원근법은 평면임에도 있는 그대로를 보여줌으로써 현실적 아름다움을 재현하는 대표적인 표현기법이었다. 그 후 다빈치, 미켈란젤로 등 소위 르네상스 7명장을 거치면서 있는 그대로를 재현하는 예술의 표현은 거의 정착되었다. 이 시기의 회화는 역설적이게도 그림이면서도 그림이 아니라 실재임을 주장하고 있었다. 20세기의 미술사가인 곰브리치는 이를 회화의 환영(illusion) 효과라고 불렀다. 우리가 초등학교때 누구나 한 번씩 해보았던, 교탁위의 화병을 실재처럼 그리려고 노력했던 것이 이 환영효과를 불러오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마네는 이러한 예술의 카논에 의문을 제기했으며, 있는 그대로 대상을 재현하지 않았다. 마네는 인물화의 경우 인물을 부각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주변을 생략하는 비사실적 방식을 도입했으며, 풍경화의 경우에는 원근법을 무시하고 사실적으로 그리지 않으며, 이것은 실재가 아니라 그림임을 강조하였다. 마네의 영향은 인상파, 후기 인상파, 입체파, 야수파 등을 거치면서 더욱 확대되었으며, 20세기 중반의 추상표현주의에서 절정에 이르게 되었다. 이 당시 회화의 난해함은 극에 달했을 뿐만 아니라, 아름다움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뒤뷔페, 쿠닝 등의 추상표현주의 화가들은 누가 더 아름답지 않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지를 서로 경쟁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들은 실재와는 무관하게 자신들의 예술적 상상력을 표현하였다. 이러한 상황은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 중에 드러난 인간성에 대한 불신이 작용하고 있었다. 즉 전쟁 중에 전쟁과는 무관하게 벌어진 홀로코스터 사건은 인간에 대한 신뢰를 상실케 했으며. 그 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인간의 잔혹성을 부각시키게 되었다. 이 시기의 회화는 인간의 겉모습이 아닌 내면의 침울함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그래서 그 당시 회화에서 인간은 이성적 존재라기보다는 동물에 가까운 존재로서 표현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추상표현주의는 대중들에게는 너무나 난해하게 여겨지고 있었다. 특히 당대에 강조되던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모토는 예술가들의 자율성을 강조하고 그들의 창의성을 높이 평가하는 구호였다. 그러나 예술적 가치와는 무관하게 경제적 투자대상으로 여겨지면서 일반인들은 상상할 수 없는 높은 금액으로 거래됨에 따라 대중들로부터 더욱 외면 받게 되었다. 1960년대 추상표현주의가 점차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을 때, 새롭게 나타난 미술은 충격적이지만 추상표현주의와는 달리 친숙한 것이었다. 이른바 앤디 워홀로 대표되는 컨템포러리 예술이 등장하였다. 뒤샹에서 비롯된 미로부터의 탈피는 1960년대에 이르러서 워홀의 <브릴로 상자>에 의해 사람들에게 서서히 수용되었다. 그것은 실재와 동일하면서도 실재에 의해 평가되지 않는다는 예술의 순수성을 표현했을 뿐만 아니라 예술은 지각적으로 식별 가능한 요소들을 통해서 판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뒤샹과 워홀은 예술을 시각이라는 감각의 눈으로 볼 것이 아니라, 정신의 눈으로 보아야 함을 주장하였다. 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창작자의 내면의 세계, 정신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주장을 더욱 강조한 것이다. 이는 예술에서 당연시되어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지각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예술이 인간의 활동 중에서 고차원적 활동이라면, 이는 당연히 정신의 활동이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고려해본다면, 예술에서 정신의 강조는 자유의 획득이며, 예술의 지위상승과 연관되어 있다. 워홀이 <브릴로 상자>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려고 했던 것은 추상미술에 의해서 현실과는 너무 동떨어진 예술을 다시 현실에 돌려줄 뿐만 아니라, 현실을 예술의 일부가 되게 하려는 것이다. 워홀은 일상 세계에서 미학적 아름다움을 보았고, 추상주의가 배척했던 사소한 것들을 의도적으로 높이 찬양했다. 워홀은 평상시 “정말로 멋진 세계 아닌가?”라는 말을 매우 자주했다고 한다. 워홀의 작품이 전시된 1964년의 여름은 미국인들에게는 ‘자유의 여름’이다. 흑인 인권운동과 여성해방운동이 일어났으며, 미국에서 최초로 비틀즈가 모습을 드러낸 해이다. 워홀의 <브릴로상자>에 주목한 미술평론가 단토는 이런 현상들을 20세기가 시작되고서 60년이 지난 뒤에야, 19세기의 억압적 제도들을 청산하려던 해방 정신의 표현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워홀을 위시한 팝아트은 이런 시대정신을 드러낸 것이다. 20세기 중반, 예술의 급격한 변화를 맞이한 상황에서 예술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에 대한 다양한 논의들이 등장했다. 팝아트는 기존에 예술을 정의로 활용되던 모방론, 표현론, 형식론 등으로 설명할 수 없는 예술이었다. 이에 모리스 와이츠는 예술에서 식별 가능한 본질을 찾다가 실패하고 ‘열린 개념’을 내세웠다. 그는 비트겐슈타인의 가족유사성 개념을 예술에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회화, 음악, 건축, 문학 등의 예술에는 완전히 공통적인 속성이 없으며 가족처럼 유사한 속성이 있다는 것이다. 즉 축구, 달리기, 바둑, 체스 등의 게임이 완전히 같지는 않으나 유사하게 놀이로서 묶일 수 있다는 비트겐슈타인의 주장을 예술에도 적용한 것이다. 그러나 단토는 모리스 와이츠의 주장에 반대하면서 다른 주장을 펼친다. 그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열린 개념이 아니라, 열린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1)고 주장한다. 여기서 열린 마음이란 것은 기존의 통념을 넘어선다는 의미에서 개념적 엄격함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다. 그리고 단토의 주장은 이제 막 시작하는 인공지능 시대의 예술에도 적용할 수 있다. 즉 인공지능 예술은 컨템포러리 예술의 연장선에서, 즉 자유로운 예술의 활동 중 하나로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은 기술과 예술의 연관성을 살펴보면 이해될 수 있다.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예술적 상상력과 기술적 상상력은 무관하지 않다. 오랫동안 예술가들은 기술자였을 뿐만 아니라 기술을 선도적으로 사용하던 사람들이었다. 예를 들어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의 발명으로 화가들은 원근법을 더욱 정밀하면서도 필요에 맞게 구사할 수 있었다. 중세의 프레스코화에서 이젤 회화로의 변화는 새롭게 발명된 유화물감의 영향이었으며, 19세기 중반 이후 모더니즘의 발전은 튜브 물감의 발명, 기차라는 교통수단의 발명에 영향을 받았다. 매체에 주목하는 미디어 현상학자 빌렘 플루서(V. Flusser)는 기술적 상상력이라는 용어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기술적 상상이란 기구에 의해 창조된 그림(기술적 그림)을 암호화하고 해독하는 능력이라고 명명된다. 이 연구의 기초가 되는 가설은 이 능력이 전통적인 상상과 현저히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기술적 그림들(사진, 영화, 텔레비전 프로그램 등)의 읽기와 쓰기는 고전적인 그림들(동굴벽화, 모자이크, 유리창 회화 등)의 읽기 및 쓰기와는 완전히 다른 것을 요구한다.”2) 플루서의 주장은 예술이 기술과 얼마나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최근의 미디어아트는 TV, 컴퓨터 그리고 IT 기술의 결합으로 탄생하였다. 기술과 예술의 대립 및 구분은 19세기 중반 이후 사진과 영화가 비약적인 발전을 하는 동안, 미술가들이 새롭게 등장한 기술에 의해 추월당한다고 느끼며 불안감을 표출하는 중에 잠시 첨예해졌다. 그러나 현대의 예술가들은 오히려 가장 앞서서 새로운 기술들을 활용하면서 그들의 상상력을 확장하고 있다. 20세기의 구성주의, 팝아트, 사이버네틱스아트, 스페이스아트, 바이오아트 등 현대의 거의 모든 미술 양식들은 예술과 기술을 선도적으로 통합하고 있다. 현재 인공지능 기술은 회화뿐만 아니라 음악 분야에서도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최근 지상파 방송사는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하여, 이미 타계한 가수의 목소리를 완벽하게 재현해냈다. 이를 접한 사람들은 실재 가수의 목소리와 인공지능 기술이 만든 목소리를 전혀 구분할 수 없었으며, 이러한 상황은 많은 이들에게 놀라움과 충격으로 다가왔다. 20세기의 가수가 21세기에서도 인공지능 기술을 통하여 여전히 활동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디지털 기술과 결합한 미디어 예술은 인공지능 기술에 의해 새로운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다. 가장 주목받는 것은 공간 예술에서 시간 예술로의 변화이다. IT기술에 의한 시간과 공간의 확장은 물리적 확장만이 아니라, 정신적 확장도 수반하고 있다. 사교와 친목을 위한 SNS는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대표적인 삶의 교류방식으로 많은 이들에게 더욱 중요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비대면 접촉이라는 신체없는 정신의 활동이 이제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겨진 것이다. 예술을 바라보는 시각도 상황의 변화, 기술의 변화에 보다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예술은 늘 새로움을 추구했고, 이를 위해 혁신하려고 노력해 왔다. 그러나 예술은 자유를 추구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예술의 활동에는 암묵적인 규칙과 조건이 늘 있었다. 즉 당위와 현실의 차이가 예술에 엄연히 존재하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일찍이 듀이는 “예술에서 새로운 것이란 종교에서 이단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새로움이 없는 것은 예술이라고 할 수 없다”3)고 단언하였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은 기존의 방식을 답습하는 것을 더욱 선호한다. “안전제일주의”는 산업현장만이 아니라, 예술의 영역에서도 통용되고 있다. 그러나 예술사의 중요한 흐름들은 모두 변화를 통해서 이루어져 왔음은 분명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아직까지 ‘열린 예술작품’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것은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4)는 움베르토 에코의 고백은 재조명되어야 한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예술은 기술에 의존적임에도 불구하고 기술의 산물인 사진이 예술로서 인정받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음을 고려해 본다면, 열린 예술작품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어려울 지는 가늠하기 힘들다. 그래서 우리는 “열린 예술작품을 규범적인 의미로 사용하지 않는다”5)고 에코가 말한 점에 더욱 주목해야 한다. 열린 예술작품이라는 개념을 규범적 의미로 사용하는 것은 열린 작품을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더욱더 열린 마음이 중요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공지능이 주도하고 있는 시대의 변화에 부합하기 위해 예술철학에 남겨진 과제는 변화에 걸맞은 새로움의 추구이다. 20세기 화가 뒤뷔페는 “예술의 본질은 새로움(novelty)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술에 대한 견해도 새로워져야 한다. 예술에 알맞은 유일한 체계란 항구적인 혁신이다”6)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새로움과 혁신의 추구에는 항상 거부감이 뒤따른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인식의 변화는 기술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한다. 그래서 철학은 인정하든 하지 않던 간에 시대를 앞서 이끌기보다 시대의 뒤를 따라서 가는 미네르바의 부엉이(Eule der Minerva)였다. 시대의 변화 속에서 철학은 이론적 검토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것을 고민함으로써 시대와 함께 발맞추어야 한다. 그래서 새로움과 혁신이 철학에도 필요하다. ---------------------------------------------------------------------------------
1) 단토, 김한영 옮김, 『무엇이 예술인가』, 2015, 은행나무, 66쪽. 2) 빌렘 플루서, 김성재 옮김,『파상성 예찬: 매체 현상학을 위하여』, 커뮤니케이션북스, 서울, 2004, 159. 3) 듀이, 박철홍 옮김, 『경험으로서의 예술2』, 나남, 2016,79쪽. 4) 움베르토 에코, 조형준 옮김, 『열린 예술작품』, 새물결, 1995, 27쪽. 5) 에코, 같은 책, 같은 곳. 6) 타타르키비츠, 김채현 옮김. 『예술개념의 역사』, 열화당, 1998., 82쪽(강조는 필자). 김선규 (공동연구원, 중앙대학교 다빈치교양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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