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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와 ‘메타버스’ 그리고 ‘이야기하는 인공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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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10 16:04

 
“이야기는 현실을 반영하여 개연성 있는 미래를 상상하고 이러한 상상들은 미래의 현실이 되어 왔다. 실재를 지향하는 과학 기술과 허구를 바탕으로 한 대중적 상상력은 대립적인 관계가 아닌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있다.”

  2021년 한 해 가장 큰 관심을 받았던 과학 기술을 하나 꼽는다면 단연 ‘메타버스(Metaverse)’를 빼놓을 수 없다. ‘메타버스’는 가상, 초월을 의미하는 ‘메타(Meta)’와 세계, 우주를 의미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로 ‘가상과 현실이 상호작용하며 그 속에서 사회적·경제적·문화적 활동이 이루어지면서 가치를 창출하는 세계’를 의미한다. 
  ‘메타버스’는 근래에 새롭게 등장한 용어는 아니다. ‘메타버스’라는 개념과 용어는 1992년 발표된 닐 스티븐슨(Neal Stephenson)의 SF소설 <스노우 크래쉬(Snow Crash)>에서 처음 등장했다. 1992년은 이제 막 퍼스널 컴퓨터와 인터넷이 세상에 소개된 시점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작품에서 3D 가상세계로 묘사되던 ‘메타버스’는 당시 작가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발전된 형태의 가상세계였다고 할 수 있다. 
  퍼스널 컴퓨터와 웹2.0이 대중화되면서 문학적 상상력에서 출발한 ‘메타버스’는 과학 기술적 측면에서 디지털 시대의 미래를 상상하고 전망하는 용어로서 유의미하게 재등장했다. 2007년 미국의 ASF(Acceleration Studies Foundation)의 ‘MetaVerse Roadmap’ 보고서에서 가상과 현실이 융합된 메타버스를 전망한 것이다. 하지만 아직 2차원 세상에 머물러 있던 월드와이드웹은 메타버스의 문학적 상상력을 재현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2000년대 중후반 ‘메타버스’의 현실적 구현은 기술적인 한계에 부딪혔지만, 그 가능성은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활발하게 모색되었다. <달빛조각사>(2007.01~2019.07), <소드 아트 온라인>(2009.04부터 발매 중) 등과 같이 VR기기를 통해 가상과 현실 세계를 오가는 수많은 게임 판타지 장르의 작품들이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고, <매트릭스>, <아바타>와 같은 SF 영화를 통해 가상과 현실의 상호작용이 서사화되었다. 
 2010년대 중후반 IT 기술과 VR 기술 등이 발달하면서, 오큘러스 리프트나 바이브와 같은 휴대용 VR 장비가 상용화되고 게임 판타지 장르에서나 구현되던 VR 게임 역시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기존의 한계를 극복하고 3D 가상세계를 구현하는 과학 기술이 대중화되면서 메타버스에 대한 문학적 상상력은 더욱 다채로워졌다. 현실과 가상을 이원화해서 인식하던 기존의 경향과 함께 현실과 가상이 겹쳐지고 현실 존재와 가상 존재가 상호작용하는 메타버스의 세계를 구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2021년 현재, 실감 콘텐츠를 가능하게 하는 5G・VR・AR 기술의 발전과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비대면 시대의 급속한 도래로 메타버스는 차세대 플랫폼으로 급부상하였다. 닐 스티븐슨이 상상했던 3D 가상세계로서의 메타버스는 이미 실현되었고, ASF에서 전망했던 가상과 현실이 융합된 메타버스 역시 다양한 형태로 시도되고 있다. 물론 ‘사이버 멀미(VR기기를 착용한 눈과 귀가 인식하는 가상세계와 플레이어의 신체가 감지하는 현실 환경의 어긋남 때문에 발생하는 어지러움이나 울렁거림)’와 같은 기술적인 한계로 인해 현실과 메타버스의 경계는 사실상 명확하게 체감된다. 하지만 VR 기술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가상세계의 감각적 몰입도, 감각적·인지적 충실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그 결과는 가상과 현실의 융합, 현실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자연스러운 가상세계의 구현으로 나타날 것이다. 
  메타버스에 대한 문학적 상상력이 과학 기술로 재현되었던 과거를 비추었을 때, 게임 판타지나 SF 영화에서 상상했던 ‘플레이어(Player Character)’와 ‘NPC(Non Player Character)’ 또는 ‘인간’과 ‘인공지능’이 상호작용하는 메타버스 또한 기술적으로 구현될 가능성이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가능성의 실현을 위해서는 이동 통신 기술 및 VR 기술의 발전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이야기와 인공지능 기술의 융합이 필요할 것이다. 
  존 닐(John Niels)은 『호모 나랜스(Homo Narrans)』에서 인간은 이야기하려는 본능이 있고, 이야기를 통해 사회를 이해한다고 주장한다. 브라이언 보이드(Brian Boyd)는 『이야기의 기원(On the Origin of Stories)』에서 ‘이야기’가 인간의 진화에 매우 중요한 ‘적응’이었다고 파악하고, 조너선 갓셜(Jonathan Gottschall)은 『스토리텔링 애니멀(The Storytelling Animal)』에서 ‘이야기의 시뮬레이션 이론’을 제기하며 이야기가 인간의 생존에 유리한 본능임을 주장한다. 이러한 견해들은 결국 ‘이야기’가 인간을 이해하는 본질임을 나타낸다. 따라서 ‘이야기하는 인간’과 상호작용하며 소통할 수 있는 인공지능은 ‘이야기하는 인공지능’일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이야기와 인공지능 기술의 융합은 이미 시도되고 있다. 2016년 일본에서 SF 단편소설 공모전 예심을 통과한 인공지능, 2017년 중국에서 시집을 출간한 인공지능 등 언론 보도를 통해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글 쓰는 인공지능들이 그것이다. 이러한 사례들은 이야기하는 인공지능의 미래, 이야기와 인공지능 기술의 융합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후 2019년 OpenAI에서 ‘GPT-2(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 2)’라는 인공지능 언어모델을 공개하고, 연이어 그보다 발전된 ‘GPT-3’를 공개하였다. 2021년에는 네이버에서 한국어 맞춤형 언어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HyperCLOVA’를 공개하였다. 이러한 인공지능 언어모델은 방대한 텍스트 데이터를 사전 학습함으로써 인간이 쓴 글인지 기계가 쓴 글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인간적인 글쓰기에 근접했고, 이야기와 인공지능 기술의 효율적인 융합 가능성을 높여주었다. 그리고 2021년 8월에는 AI 스타트업 '다품다'와 자연어 처리(NLP) 스타트업 '나매쓰'가 협업하여 개발한 AI 소설가 ‘비람풍(毘嵐風)’이 500여쪽 분량의 장편소설을 집필했다는 뉴스가 보도되기도 했다. 인공지능의 언어생성 기술이 인간의 소설 창작 행위와 유사한 수준까지 발전한 것이다.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문학 연구자들이 인공지능 언어모델을 통해 소설작품을 분석하는 디지털 인문학 역시 이야기와 인공지능 기술의 융합 가능성을 높이는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상호소통의 측면에서 이야기하는 것만큼 이야기를 듣는 것도 중요하다는 점에서 이야기 분석 능력은 ‘이야기하는 인공지능’에 꼭 필요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인공지능 기술을 통해서 문학작품에 나타난 감정을 연구하려는 시도들이 있어 주목된다. 문학작품에 나타난 감정을 연구한다는 것은 작품에 대한 단순 분석을 넘어 인문학적 해석과 이해의 영역으로 이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구들에서 인공지능은 긍정과 부정의 감정을 비교적 정확하게 판별하지만, 아직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감정을 식별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인공지능이 학습하는데 필요한 데이터 즉 개별 감정을 식별한 데이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공지능에게 인간의 감정을 이해시키기 위한 연구들이 계속해서 진행되고 이를 통해 수많은 감정 데이터들이 축적된다면, 언젠가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감정을 구체적으로 식별하는 날도 올 것이다. 그리고 머지않아 인간의 이야기를 듣고 인간에게 이야기하며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인공지능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강우규(중앙대학교 인문콘텐츠연구소 HK연구교수) 

*해당 원고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운영하는 아트앤테크 플랫폼에 게재된 원고를 수정한 것입니다. https://www.arko.or.kr/artnte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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