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tGPT와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에 대한 전세계적인 관심은 확실히 메타버스나 블록체인, NFT 등 과거 유사한 버즈워드로 등장한 신기술에 향했던 그것과 구별되는 독특한 특징이 있다.
먼저 인공지능에 대한 ‘전 세계적’ 관심이 단순한 수사에 불과하지 않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학위 공부를 하던 필자는 2021년 9월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한 가지 당황한 부분이 있었다. 사람들을 만나거나 뉴스 지면을 살필 때마다 ‘메타버스’라는 키워드가 너무 자주 언급되었기 때문이다. 고백하건데, 직전까지 미국에서 공부하면서도 단 한 번도 ‘메타버스’가 무엇인지 들어본 바 없었기에, 미디어 학자로서 스스로가 너무 시류에 뒤쳐진 것이 아닌지 한탄하며 검색해 찾아본 경험이 있다. 구글 트렌드에서 최근 5년 기준 메타버스에 쏠린 사람들의 관심을 국가별로 비교한 데이터를 보면, 중국과 한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의 메타버스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그리 높지 않다. 미국의 경우만 해도, 2021년 10월 (구)페이스북의 마크 주커버그가 사명을 ‘메타’로 변경하며 (지금은 잠정적인 실패로 끝난) 메타버스를 그의 미래 청사진으로 선포하기 전까지 여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드물었다. 메타버스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한낱 ‘찻잔 속의 태풍’에 머무른 측면이 있다고 생각되는 이유다. 이에 비해, 생성형 AI에 대한 전세계의 반응은 실제로 더욱 열광적인 듯하다. OpenAI의 ChatGPT를 시발점으로 세계 유수의 빅테크들이 본격적인 기술 경쟁을 시작하며 독자적인 AI 모델을 앞다퉈 공개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에 대응하여 중국, 인도, 미국, 유럽, 브라질, 캐나다, 일본 등 각국에서 인공지능 기술의 진흥 및 규제를 위한 법안을 속속 발표하고 있다. 국내외 미디어에서도 인공지능 모델들이 생성해내는 ‘답변’을 비교하며 그 성능과 사회적 영향을 가늠하는 보도를 끊임없이 쏟아내고 있다. 또다른 특징은 생성형 인공지능 기술의 고유한 리터러시(literacy, 문해력), 즉 활용 능력을 둘러싼 관심에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에게 보다 ‘똑똑한’ 답변을 이끌어내기 위한 입력값을 일컫는 ‘프롬프트(prompt)’의 구성을 목적으로 하는 ‘프롬프트 엔지니어링(prompt engineering)’이 그 대표적 예다. ‘엔지니어링’이라는 단어가 풍기는 공학적 느낌에 두려움을 가질 이도 있겠으나, 실상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에서 요구되는 주된 역량은 우리 인간이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 능력이다. 복잡한 컴퓨터 언어나 프로그래밍을 몰라도 평소 사용하는 말과 글로 답을 찾기를 원하는 내용을 인공지능에 전달하면 되는 것이다. 블록체인이나 NFT에 대한 뜨거운 관심이 ‘그래서 과연 이것이 무엇이고,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 것인가’에 대한 반복되는 질문으로 귀결되던 것에 비해, 현재의 생성형 인공지능 기술은 더욱 쉽고 직관적으로 대중에 다가가고 있다. 코딩 능력이 AI 시대의 역량으로 강조되던 과거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인공지능을 쉽게 배우고 활용하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이 같은 특징은 또한 AI로 인한 기술 격차에 대한 사회적 우려를 완화시키며 기술의 대중적인 수용과 확산에 일조하는 순기능이 있다. 그러나 주지의 사실은,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능력이 미래 인공지능 활용 역량의 본질은 아니라는 것이다. 킹스칼리지런던 비즈니스 스쿨의 학장인 오구즈 아카르(Oguz Acar) 교수는 경영전문잡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기고문에서 프롬프트 구성에 선행하는 ‘문제 정립(problem formulation)’ 능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전문적인 인공지능 개발 능력은 차치하더라도, 좋은 프롬프트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결국 인간이 우리 스스로의 ‘문제’가 무엇인지 명확히 파악 및 분석하고, 이를 설명하기 위한 사고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프롬프트의 구성이나 표현 자체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다양한 언어적 표현을 보다 잘 이해하게 될수록, 또는 자체적으로 ‘모범’ 프롬프트를 작성할 수 있도록 발전함에 따라 점차 무용해질 수 있는 한편, AI에게 무엇을, 왜 묻고 싶은지 그 질문의 기초가 되는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능력은 다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디어학 영역에서 오래 전부터 미래 인간의 핵심 역량으로 강조해 온 바 있는 ‘디지털 정보 리터러시’ 역량은 디지털 기술에 대한 활용 능력, 그리고 이를 통해 얻은 정보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다. 디지털 기술을 능숙하게 이용해 원하는 정보를 검색하고 찾아냄과 동시에 찾아낸 정보에 대한 비판적 이해와 분석, 판단, 활용 능력을 포괄하는 비판적 사고력을 갖추어야만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 현상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기술이 가져오는 기회를 주체적으로 누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기술에 매몰되지 않는 인간 고유의 주체적 사고 능력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비판적 사고 능력은 프롬프트 구성에 선행하는 문제 정립을 위한 사고 능력에 대한 논의와 유사한 맥락에 있다. 결국 기술이 얼마나 발전하든, 이에 대응하는 이른바 기술 리터러시의 열쇠는 언제나 ‘휴먼 리터러시’에 있는 셈이다. 박소영 (중앙대학교 인문콘텐츠연구소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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