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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인공지능인문학 추천도서 독후감 경연대회 입상작 (대학일반부)
Level 10조회수26
2024-07-23 20:40

인공지능 시대의 낭만적 슬픔과 리얼리즘적 해답 

-‘인간은 기계보다 특별할까?’를 읽고

바야흐로 인공지능이 기술 진보의 특이점으로 부상한 시대다. 그러한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 역시 기술과의 결합을 통해 인간의 한계를 넘는 이른바 포스트휴먼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알파고와 이세돌 얘기는 우리에게 더이상 놀랍지 않다. 인간의 뇌에 칩을 이식하고 인공장기를 실제 인간 환자에게 이식하는 일이 현실화 되고 있는 시대다. 이 책은 그러한 특이점을 맞은 시대의 인간에게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하여 다양한 관점에서 질문을 던진다. 훌륭한 사유는 대개 좋은 질문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책은 포스트휴먼 시대에 대한 날카로운 9가지 질문들을 통해 여러 인공지능 인문학 도서들을 모두 아우르는 주제를 담고 있다. 다른 책들과의 차이가 있다면 인간이 정말 기계보다 특별한 존재인지 집요하게 묻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책은 내게 조금은 우울한 책이었다. 매 챕터마다 메타적인 관점에서 인간이 가진 나약함과 그 한계를 체감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원래 뭔가 특별하다고 생각하며 살다가 실제로는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자못 슬픈 법이다. 그러나 책의 말미에 언급된 영화 <매트릭스> 속 세계와 같이 진실에 눈 가리고 낭만에 젖은 파란 약만을 선택하며 살 수는 없다. 저자들은 그 첫번째 진실의 약으로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본 챕터에서 저자는 먼저 인간을 정의하려 한다. 인간이 지니는 기계와의 관계를 논하려면 인간이 어떤 존재이고 무엇을 할 수 있으며 어떤 특성을 가진 존재인지 생각해보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한마디로 요즘 MZ식 문법으로 ‘그래서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인간, 너 뭐 돼?’라고 묻고 있는 것이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한마디로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기계보다 우월하지 못하며 자연을 거스를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죽음을 비롯한 생명의 유한성을 과학기술을 통해 극복하려 하고, 인간적 한계를 인공지능 등의 기술을 통해 초월하려 하며, 그 과정에서 정복적 자연관에 의해 자연을 재단하고 통제하려 한다. 그렇게 유한한 인간은 기술 진보를 거듭해 트랜스휴먼을 넘어 포스트휴먼 시대로 나아가려 한다. 말하자면 인간 고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기술 진보를 갈망하고 포스트휴먼 시대를 꿈꾸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의 한계는 역설적으로 인간의 조건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주어진 삶이 유한함을 알기에 흘러가는 시간에 애타기도 하지만 또한 그래서 순간을 소중히 하며 살아갈 수 있다. 불멸의 존재에게도 경제학적 한계효용은 체감되는 법이다. 즉 인간은 자신이 가진 한계를 두려워하면서도 그 한계로 인해 삶의 가치를 갖는 존재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책에서 언급된 빌 조이(W.N. Joy)의 말대로 더 늦기 전에 기술 발전을 중단해야 할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본능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이고 지나친 디스토피아적 전망 역시 성급하다. 우리는 이러한 경고와 위험성을 인지하고서 인간과 기계의 적절한 공존의 해법을 모색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를 때쯤, 저자는 적시에 다음 주제로 질문을 던진다. 바로 그렇다면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이다.

기술과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 

기계와 인간과의 공존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주제가 바로 인간 노동과 그 디스토피아적 미래다. 인간보다 뛰어난 기계에 의해 노동자는 소외되고 급기야 기계가 모든 인간 노동 직역을 대체하게 되는 세상. 그런데 인간 노동이 기계에 의해 대체되는 세상이 반드시 인류에게 재앙일까? 어릴 적 TV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을 좋아했다. 많은 이들이 버라이어티 예능 프로그램으로만 알고 있는 <무한도전>은, 사실 프로그램 출범 초기 교정부호를 사용해 ‘무-모-한도전’이라 제목을 달고 인간의 무한한 도전을 주 포맷으로 삼던 시절이 있었다. 인간 주자들이 전철과 달리기 경주를 하고 굴삭기와 흙 퍼 담기 대결을 하던 일화들이 기억난다. 어린 나이에 그런 장면들을 보며 인간이라는 피조물의 연약함과 상대적 무력함에서 오는 허무를 느꼈다. 그리고 동시에 인간이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기계의 영역 성질을 깨닫게 되기도 하였다. 물론 인간 고유의 영역을 지키려 애쓰고 그 한계에 도전하는 인간의 노력은 숭고하며, 심지어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고집스런 차력쇼가 되지는 않길 바란다.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4장에서 언급된 토마스 바셰크(T. Vasek)의 말처럼 기술 진보와 기계로 인한 탈노동이 아닌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형태의 더 좋은 노동을 추구할 수도 있다. 

그렇게 저자는 인간의 한계와 기계의 거대함 앞에 우리에게 노동의 본질적 의미를 묻고 기술 진보 속에서 이를 사유해볼 것을 요청한다. 작금의 현대 사회는 좀처럼 사유할 틈이 없는 피로사회다. 이런 시대에 과연 기계는 인간을 노동으로부터 해방시켜주는 구원자일지 제레미 리프킨(J. Rifkin)의 말대로 노동의 종말로 인한 파국을 야기하는 존재일지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이 외에도 인공지능과 인간의 도덕적 딜레마를 비롯한 기술 윤리학의 문제, 과학기술 진보로 말미암은 생명공학과 생명 윤리학의 문제는 인간과 기술의 공존이 그리 만만치는 않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2부에서 기계 담론의 미시적 측면을 논했다면 저자는 이제 거시적 세계로 독자를 데려간다. 바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가상과 현실에 대한 이야기다.

가상인가 현실인가 

인류가 스마트폰을 통해 일정 부분 사이보그화된 현 시대에 플랫폼 미디어는 인간의 삶에 필수불가결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소셜미디어가 인간의 관계를 대신할 수 있을 것인지 우리에게 묻고 있다. 말하자면 미디어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이 인류의 소통과 인간관계에 미치는 그 영향력을 묻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다양한 철학자들과 사상가들의 사유를 제시하며 소셜미디어의 명암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그러한 미디어에 대한 의존과 현대인의 과도한 자아 의탁은 자연스레 다음 챕터인 ‘빅데이터’의 명암과 메타버스를 비롯한 ‘가상현실’ 담론으로 이어진다. 특히 가상과 현실, 인간과 세계가 불가분의 관계 속에 상호 발전해 나가는 역동적 관계임을 역설하는 부분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 속에 역사가 나아간다는 E.H.카의 사관을 떠올리게 한다. 어쩌면 가상과 현실의 세계 역시 일방적 관계가 아닌 서로를 모방하며 함께 변화해 나가는 상호적 관계인지도 모를 일이다.  

저자는 그 과정에서 영화와 소설 등 다양한 작품들을 매개로 가상과 현실을 오간다. 그러면서 적재적소에 위대한 철학자와 사상가들의 사유를 배치해가며 가상과 현실의 형이상학적 담론들이 공허하지 않게 설득력 있는 논리들을 전개해 나간다. 그 덕에 독자는 가상 세계를 다루는 기술 진보가 인간과 사회에 미칠 영향에 대해 지나치게 공허하거나 맹목적이지 않게 사유해 볼 수 있게 된다.

인간은 특별한 존재인가

책장을 덮으며 우리의 머리 속은 복잡해진다. 특히 마지막 장을 읽어내려 갈 때쯤, 어느 순간 인간이 기계보다 특별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머리에 스치며 알 수 없는 위기감이 전율한다. 글 초반에 MZ식 물음을 던진 적이 있는데, 이제는 ‘인간, 네가 기계 없이 뭘 할 수 있는데?’라고 묻고 있는 것만 같다. 특히 이 책은 우리에게 인공지능을 비롯한 기계와 인간 사이에 발생할 수 있는 실존적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영화와 철학을 오가는 저자들의 현란한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인간이 진짜 특별하긴 한 건가?’라는 우려가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오히려 그것이 진솔한 태도일 것이다. 이러한 초조한 현실에 우리는 21세기형 러다이트 운동(Luddite Movement)이라도 벌여야만 하는 것일까? 그러나 결코 우리는 그럴 수 없다. 지적 진보를 향한 인류의 호기심은 둘째 치더라도 이미 나아간 기술 진보를 되돌리는 것은 현 인류에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시나리오다. 당장 나부터도 기계 없이 단하루도 일상을 영위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이쯤 되면 책의 제목에 대한 대답이 비로소 가능하다. 인간은 기계보다 특별하지 않다. 결코 특별하지 않다. 내게 이 책은 그래서 우울한 책이었다. 매 챕터마다 인간은 이래서 특별하지 않고 기계는 어느 수준에 이르렀으며 그런데도 여전히 우월하기를 바라는 인간의 심리는 그 얼마나 어리석은지 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러한 불안감은 내게 전에 없던 기술 진보의 중단과 지연을 떠올리게 했고, 작년부터 논의되던 디지털 권리장전과 AI 윤리규범을 다시금 찾아보게 하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더이상 낭만적 슬픔에 진지할 수 없는 세상이다. 시대는 급변하고 인문학적 담론과 윤리와 규범을 논하는 사이, 지금도 세계는 군비 경쟁하듯 앞다투어 AI 주도권을 잡기 위한 패권 경쟁을 한다. 과거에도 역사는 대개 경제적 문제, 그러니까 ‘돈이 되냐 안되냐’의 문제로 진보를 ‘승인’해오곤 했다. 요컨대 중요한 것은 ‘할까 말까’의 문제가 아닌 ‘올바른 기술 진보를 택할 것이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다. 결국 인간이 기계보다 특별하다는 오만과 우월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기계의 거대한 가능성과 양면성을 올바르게 볼 수 있게 되고, 이를 인정할 수 있어야 공존을 전제로 함께 잘 살기 위한 규범과 기술 통제에 관한 논의도 가능할 것이다. 역설적으로 자신의 종이 특별하지 않음을 겸허히 인정하고 그 특별함에 도전하는 패러다임을 신중하게 수용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인간이 비로소 특별해지는 ‘특이점’일 것이고 인류에게 주어진 유일한 리얼리즘적 해답이 될 것이다. 

사회학자 C.밀스는 소중한 가치가 위협받는다고 느낄 때 인간은 ‘위기’를 경험하고, 소중한 가치에 대한 인식 없이 위협만을 느낄 때 ‘불안’을 경험한다 하였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지금 불안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 시대의 우리는 기계와 기술 진보로 인해 정확히 어떤 가치가 위협받고 있는지 무지하다. 따라서 인간과 사회는 어떤 소중한 가치를 지켜야 할지 적극적으로 탐색하고 고민해봐야 한다. ‘인간은 기계보다 특별할까?’라는 순진한듯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며 기술이 개입된 인류의 미래를 논하는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가 읽어야할 책이다.

글을 마무리하며 마지막으로 한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 일종의 뉴-튜링테스트다. 지금까지의 이 글은 인간이 쓴 것일까 기계(챗GPT)가 쓴 것일까? 후자라면 지금이라도 수상을 박탈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글쓴이의 양심 고백인지 그저 변죽을 울리는 것인지 불현듯 고민되고 의심되기 시작했다면, 그리고 그 의심이 충분히 가능하고 그럴듯한 개연성을 갖는 시대라면 한가지는 확실하다. 이제 정말 인간은 기계보다 특별하지 않다.


황 정 식 (건국대학교 융합인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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