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기계보다 우월하지 않다는, 인공지능에서 시작된 인문학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시대 - ‘인간은 기계보다 특별할까?’를 읽고 그간 나는 인공지능이라는 단어에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조만간 인공지능이 인류를 위협할 거라는 주장이 허황하게만 들렸던 탓이다. 물론 이세돌은 알파고에 4대 1로 패배했고 IBM 사(社)의 왓슨은 수년간의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인간 의사나 법관과 거의 비등한 수준의 판단을 내린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데이터의 영역일 뿐, SF 영화의 단골 소재인 인간과 정확하게 같은 방식으로 사고하거나 느끼며 때론 우월하기까지 한 인공지능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그랬기에 처음 인문브릿지연구소에서 낸 ‘인간은 기계보다 특별할까?’라는 책의 제목을 보며 의구심이 들었다. 대체 인간과 닮은 인공지능이라는 허무맹랑한 공상에 관한 인문학적 논의에 어떤 가치가 있을까? 책을 다 읽은 지금도 고유한 생각과 감정을 가진 인공지능의 출현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최초의 생각은 그대로다. 하지만 기술적인 차원을 떠나, 인공지능을 계기로 우리가 ‘인문학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시대’에 들어섰음을 실감하게 되었다.
책 ‘인간은 기계보다 특별할까?’는 인공지능이나 빅데이터 등 첨단 기술의 등장으로 인한 다양한 인문학적, 윤리적 쟁점을 다룬다. 총 아홉 개의 질문으로 이루어졌는데, 각각의 질문을 다룬 각 장(章)은 해당 질문과 관련된 SF를 소개하며 시작하여 더 살펴볼 만한 전문가들의 의견으로 마무리된다. 아홉 개의 장이 고루 좋았지만, 그중 가장 나의 기억에 남았던 2장에 관해 얘기하고 싶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2장 ‘인간은 기계보다 특별한 존재인가?’는 영화 <A.I.>와 <엑스 마키나>에서 출발해 인간과 기계의 관계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라는 질문을 독자에게 던진다. 나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A.I.>를 무척 재미있게 봤기 때문인지 어렵지 않게 흐름을 따라갈 수 있었다. 전에는 <A.I.>의 암울하면서도 동시에 동화적인 분위기에만 집중해서 영화를 감상했다면, 책을 읽고 난 후에는 끝까지 모니카를 사랑하는 데이비드의 모습을 통해 과연 인간과 인공지능이 과연 얼마나 다른가, 하는 물음을 스스로 해보게 되었다. 영화의 주인공이자 인공지능인 데이비드는 모니카의 아들이자 불치병에 걸린 마틴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하지만 기적적으로 마틴이 건강을 회복하면서 데이비드는 버려지고, 데이비드는 로봇이 아닌 인간이 되어 모니카의 사랑을 받고자 먼 여정을 떠나게 된다. 영화에서 자신을 버린 모니카를 원망하지 않고 끝까지 사랑하는 데이비드의 모습은 모니카의 비정한 모습과 대비되며 관객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나 역시 그랬지만, 한편으로 그런 생각도 들었다. 애초에 모니카를 사랑하게끔 설정된 데이비드의 사랑을 인간의 그것과 비교할 수 있을까? 하지만 책을 읽은 다음에는 생각이 바뀌었다. 물론 데이비드가 특정한 사람을 무조건 사랑하게끔 설정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인간이 지닌 누군가를 사랑하는 감정 또한 인간이 스스로 획득한 게 아니라 창조주에 의해 주어진 것이다. 우리가 인간과 비-인간을 구분하는 기준은 그러한 능력이 어떻게 얻어졌는가가 아니라 단순히 그 유무가 아닌가? 그렇다면 기계가 감정을 갖는 것이 정말로 가능한 시대가 온다면, 그 감정이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이유로 그들의 감정을 무의미한 것으로 여기는 게 과연 온당한 일일까? 그리고 기계가 감정을 지니는 세상이 온다면 그때 인간을 인간이게끔 하는 것은 무엇이어야 할까? 이런 질문을 안은 채 2장은 다음으로 넘어간다. 책은 인공지능은 강인공지능과 약인공지능으로 나눈다. 앞에서 말한 왓슨과 알파고는 약인공지능에 속하고, SF 영화에서 인류보다 우월하여 인류를 지배하고자 하기도 하는 건 강인공지능이다. 역사적으로 인류는 지금껏 인간을 지성과 감성으로 정의해왔는데, 책을 읽으며 나는 약인공지능이 이성을, 강인공지능이 감성을 대변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렇다면 강인공지능이 정말로 가능해진다면, 이성과 감성이 더는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니게 되지 않을까? 이성과 감성이 모두 위협받는 시대에 인간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당장 떠오르는 건 이성과 감성이 모두 아닌 제3의 능력을 찾는 것이지만 이 역시 요원해 보인다. 일부 인문학자와 과학자는 이에 창의성이라는 답을 내놓지만, (강)인공지능이 정말로 스스로 생각하고 느낄 줄 안다면, 그것이 새로운 걸 창조하지 못할 이유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당장 현재도 일본에서는 AI가 쓴 단편 소설이 여타 인간 작가를 제치고 한 문학상의 1차 심사를 통과하는 일이 벌어졌는데 말이다. 이에 대해 책 ‘인간은 기계보다 특별할까?’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해답을 지성이나 감성과 같은 인간의 능력에서 구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사랑이나 성장과 같은, 구체적으로 말하면 ‘변화하고 성장해 가는 인간-되기로서의 인간’이라는 태도를 제시한다. 능력(能力)이라는 단어는 어떠한 일을 할 수 있는 힘이라는 사전적인 의미를 갖지만, 이면에는 그것을 할 수 있는 개체와 없는 개체를 구분하고 우열을 가리는 기능을 수행한다. 우리는 인간다움을 정의하는 일에 있어 이성과 감성이라는 능력을 내세워 우리와 다른 생명체를 구분하고 서열을 나누곤 했다. 책은 그러한 인간 중심적인 사고를 폐기하고 인간다움을 정의하는 요소로 타자를 인정하고 자신을 바꾸는 유연한 태도를 내세운다. 인간만의 고유한 능력은 존재하지 않고 우리는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보다 우월하지 않으므로, 인간을 다른 종과 애써 구분 지으려 한다면 우리는 길을 잃고 혼란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내부에서 우리를 폐쇄적으로 정의할 것이 아니라 다른 존재와의 관계 속에서 우리를 끊임없이 재확인해야 한다는 게 책의 주장이다. 그리고 이 모든 전환의 전제가 된 ‘인간은 결코 다른 존재보다 우월하지 않다.’라는 인식에 인공지능이 기여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위와 같은 다소 낯선 주장을 이해하는 건 쉽지 않지만, 책은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와 역사학자 브루스 매즐리시, 그리고 인공지능 연구의 권위자인 토비 윌시의 의견을 실어 이해를 돕는다. 그중 브루스 매즐리시의 이론은 내가 이 책의 관점을 이해하는 일에 특히 도움이 되었다. 그는 인류에게 충격을 준 사건으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다윈의 진화론, 그리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꼽는다. 세 학자의 이론의 공통점은 인간의 우월함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지동설은 인간의 거주지(지구)가 태양에 종속되어 있음을 밝혔고, 진화론은 인간은 동물(원숭이)에서 기원했다고 주장하였으며, 정신분석학은 인간이 결코 이성적이기만 한 존재가 아님을 세상에 알렸다. 매즐리시는 여기에 더해 현대의 인간이 기계보다도 우월하지 않다는 주장을 내세운다. 인류의 역사는 도구를 사용하는 능력에서 출발하여 기계와 함께 발전해왔기에 인간과 기계를 분리하여 생각하는 일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또한 그렇기에 인간이 특별하다는 자존심만 내세워서는 정체성을 확보할 수 없을 거라고도 경고한다.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강인공지능이 현실에서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라고 순진하게 믿고 있었는데, 그의 말을 듣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하긴 과거의 우리 조상 또한 자동차가 굴러가고 인공지능이 병을 진단하는 지금의 사회를 감히 상상할 수 있었겠는가? 다시 돌아와, 인간다움을 과연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이에 책은 인간이 특별하지 않음을 인정하고 인간다움을 정의하려고 하지 않아야만 우리가 우리로 남을 수 있을 거라 답한다. 분명 혁신적이지만 의구심은 여전히 남는다. 우월하지 않더라도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백인은 흑인이나 아시아인보다 우월하지 않지만 그들의 피부색은 여전히 다르다. 그러니 외양과 능력이 비등한 인간과 인공지능이 있을 때, 우리는 그걸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 것일까? 이 책은 거기에 대한 대답까지는 제시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기계보다 우월하지 않다고 주장하며, 인류가 “인문학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시대에 들어섰음”을 실감케 한다는 점에서 이 책의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다. 신과 종교의 시대에서 벗어난 이래 계몽주의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우리는 인간 중심적인 세계관 아래 살아왔다. 하지만 현재 지구온난화와 같은 환경문제, 불평등과 빈부격차, 분쟁과 전쟁과 같은 문제가 범람하는 지금 우리는 기존의 가치관에 의구심을 던지고 새로운 가치를 고민해봐야 한다. 인공지능의 등장은 언제까지고 세계의 정점에 서 있을 수 있다는 인간의 잘못된 신념에 충격을 가하고, 인간 또한 약자가 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 하에 타자와 연대하며 더불어 사는 새로운 세계관을 고민하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책 ‘인간은 기계보다 특별할까?’는 독자에게 그들이 자신 안에 내재한 인간 중심주의를 마주하고, 새로운 관점을 모색하며, 이를 실천으로 옮기는 구체적인 계기를 마련해줄 것이라 믿는다. 김민경 (서울시 양천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