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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아닌 기계와 나누는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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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02 11:12



우리는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영유아기부터 감정을 주고받았다. 양육자로 시작한 감정 교류 대상자는 이후 확대되어 또래, 선생님, 낯선 이, 불특정 다수를 포함하게 되고, 더 나아가 기계(주로 컴퓨터)를 통해, 그리고 기계와 교류하며 살아간다. 기술이 발달한 이 시대에도 누군가는 여전히 사람과의 교류가 지배적인 환경에서 살아가지만, 또다른 이의 환경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1인 가구 회사원 A씨를 예시로 생각해보자. A씨의 회사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로 사무실을 대폭 축소하고 전면 원격 근무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A씨는 아침 9시부터 6시까지 원격으로 근무하고, 주로 배달음식으로 식사를 하며, A씨의 가족은 모두 고향에 살고 있다. 원격 근무 중에 A씨는 주로 채팅과 이메일로 소통하고 이틀에 한번 정도 비디오 컨퍼런스 플랫폼에서 회의를 한다. 배달음식은 앱으로 주문하고, 저녁 식사 이후에는 홀로 운동을 하고 편의점에 들러 셀프 계산을 하여 물건 가격을 지불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A씨의 일상에 사람과 대면하여 소통을 하거나 감정을 교류하는 일은 거의 없다.  

기계가 매개하는, 또는 기계와 소통하는 커뮤니케이션 장면은 다양하다. 본고에서는 사람들이 키오스크, 챗봇, 소셜 로봇과 같은 기계와 소통하며 경험하거나 교류하는 감정을 살펴봄으로써 이러한 경험축적이 미래 인간 간 감정교류에 과연 도움을 줄 것인지를 논하고자 한다. 

키오스크와 같은 스마트 인공물을 사용할 때 사용자의 감정 경험에 대한 대다수의 연구는 사용자의 부정적인 태도를 포함했다. 대표적으로, 많은 연구에서 인용되는 로봇에 대한 부적 태도 척도(Negative Attitude Towards Robots Scale: NARS)를 살펴볼 수 있겠다. 해당 척도는 일상 생활 속 소통 로봇에 대한 사용자의 태도를 측정하기 위해 개발되었으며, 1) 로봇과 소통하는 상황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 2) 로봇의 사회적 영향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 그리고 3) 로봇과 상호작용할 때 발생하는 감정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으로 구성된 하위요소들을 가지고 있다(Nomura et al., 2006). 긍정적인 감정으로는 재미(fun)가 많이 보고되었으며, 고객의 긍정적인 감정 반응은 접근 행동을 정적으로 예측하고 회피 행동을 부적으로 예측했다(Ahn & Seo, 2018). 

챗봇은 어떨까? 챗봇과 소통에서 가장 많이 연구된 주제는 호전적 언어 사용이다. 키오스크와 마찬가지로 챗봇-사람 상호작용 맥락에서도 부정적인 감정이 많이 연구되었다. 예를 들어 Wang과 Nakatsu(2013)의 연구에 따르면 챗봇이 관련성이 낮은 응대를 했을 때 사용자들은 불쾌 또는 당황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경험하는데, 이러한 부정적인 (나쁜) 감정은 이후 소통을 악화시키거나 중단시키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챗봇이 진화함에 따라 의인화 수준에 따라 사용자의 감정 교류는 질적으로 변화했다. 한 예로 Fitzpatrick 등(2017) 은 불안 및 우울 증상을 보이는 대학생을 위해 챗봇(워봇)을 개발했다. 대학생 연구 참여자들이 2주 동안 워봇을 사용했는데, 연구 결과 워봇을 사용한 조건의 연구 참여자들의 우울이 유의하게 감소했다. 그들은 높은 관여도를 보였고, 거의 매일 채팅을 사용했으며, 챗봇의 공감적인 반응이 지닌 가치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로써 공감을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 아닌 상대와 치료 목적의 관계가 성립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소셜 로봇은 더욱 다양한 사회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사용자들은 소셜 로봇과의 소통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목표한 기술을 익히고, 외로움을 해소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아동을 치료하는 과정에 소셜 로봇을 도입할 경우, 사회성, 주의력, 언어적 기술이 향상하고, 바람직하지 않은 반복적인 행동을 감소하는 결과가 나타났다(Pennisi et al., 2016). 또한, 비공식적 돌봄 서비스직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 연구 참여자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소셜 로봇에게 더 오랜 시간 동안 말했고, 자신을 노출하는 정보를 더 많이 제공했다(Laban et al., 2022).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인해 소셜 로봇의 감정 표현이 더욱 정교해지자 연구자들은 소셜 로봇의 감정을 소통 대상자가 얼마나 정확하게 재인하는지, 그로 인해 어떤 결과가 따르는 지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많은 학자들은 미래에 소통이 기계를 거쳐 이뤄질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기계가 매개하는 소통만큼이나 기계와의 소통이 급증할 것이란 예측에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사람은 소통의 대상인 기계와 관계를 형성하고 이를 통해 바람직한 감정을 경험한다. 미래의 주요 소통상대인 로봇은 더 섬세하게 사용자의 감정을 분석할 것이다. 감정 분석을 통해 성격을 분석하여 고용주에게 사용자를 추천한다. 화가 난 사용자에게는 명상하는 방법을 제안하고, 우울한 사용자에게는 상담가 이상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위로를 건낼 것이다. 이를 통해 사용자는 즉각적인 이득을 얻지만 이것이 과연 사용자의 감정적 성숙도를 향상시킬 것인지에는 의문이 든다. 사회적 모델링을 통해 섬세한 로봇의 반응을 보고 학습하여 사람과 더 나은 감정 교류를 이룰 것인지, 아니면 실제 경험 부족으로 인해 공감 능력을 잃을 것인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오늘날 강조되는 정서지능(EQ)의 미래는 어두워 보인다. 사람이 아무리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알아차리고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여 대응한다 해도 그 수준은 인공지능을 갖춘 기계의 능력에 못 미칠 것이고, 그에 따라 사람들은 점차 정서지능에 바탕을 둔 다른 사람의 호혜적 반응을 기대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의 미래는 옛날 SF 영화가 그리던 감정 없는 딱딱한 모습이 아닌 사람이 아닌 다른 존재와 감정을 더 많이 주고받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바람직한 결과물을 예측하던 EQ 개발에 힘써온 오늘날의 교육, 기업 장면에서 어떤 새로운 역량에 주목할 것인지 궁금하다.  


문혜진(한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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