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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매개하는 인간 관계와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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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5 11:17



코로나19가 우리 사회에 가져온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일상의 삶 속에서 사람들이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방식일 것이다. 극심한 감염병의 공포가 사회를 휩쓸던 시기, 업무, 학업, 일상적인 사교의 장에서 사람들 간의 ‘접촉’은 물리적 공간에서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 아닌 랜선 너머 화면 속 얼굴들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출퇴근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의 절감, 그리고 주어진 과업의 처리와 해결에 집중하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의 편리함에 대한 호평 이면에는 비대면 방식의 커뮤니케이션이 채워주지 못하는 소통의 공백과 결핍, 그리고 이것이 향후 우리 사회에 야기할 부작용에 대한 우려의 시선이 뒤따랐다. 각고의 시간 후 대학에 입학했는데 실제로 ‘아는’ 사람은 하나 없고, 사회성 부족으로 이후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적응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위 ‘코로나 세대’ 대학생들의 이야기는 현재 우리 사회가 실제로 감당하고 있는 코로나 시대가 남긴 부채의 일면이다.  

사람들이 직접 대면하지 않고 컴퓨터와 같은 정보통신 기기를 통해 상호작용하는 커뮤니케이션의 한 형태인 컴퓨터 매개 커뮤니케이션(Computer-Mediated Communication, CMC)은 사실 팬데믹 이전부터 우리 삶에 깊숙이 자리해 온 것이다. 인터넷과 월드와이드웹은 온라인 상에서 인간 사이의 소통과 관계의 새로운 장을 열었고, 이어 스마트폰의 확산은 전세계적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대중화를 이끌며 사람들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들며 상호작용할 수 있게 했다. 여기에 코로나 팬데믹은 또 한번의 거대한 전환점이 되었다. 급격한 디지털 대전환에 힘입어 우리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촘촘히 직조된 디지털 연결망을 가지게 되었고, 인공지능을 위시한 기술의 발전은 기존의 커뮤니케이션의 여러 장벽을 허무는 데 일조하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지연이나 멈춤, 끊김 현상이 없을 뿐 아니라 보다 생생한 디지털 페르소나를 구축하고 현실감을 부여할 수 있는 가상의 공간에서 자유롭게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다. 심지어 의사소통의 근본적 장벽인 언어의 차이조차 인공지능 기술로 어렵지 않게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되었다. 이처럼 현대 기술이 인간 커뮤니케이션의 간극과 균열을 효과적으로 메우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그러나 기술을 통한 연결이 진정으로 사람들 간의 인간적인 '연결'을 강화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글자나 음성, 생생한 이미지나 영상, 또는 그 밖의 수단으로 상대방과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게 되면서 사람들은 상대방과 더욱 진정성 있게 소통하게 되었을까? 디지털 네트워크를 통해 점점 더 많이, 더 강하게 연결됨에 따라 사람들은 더욱 긴밀하게 교감하고, 친밀감을 주고받으며, 참된 인간관계를 형성해 가게 되었을까? 급속한 기술의 발전과 함께 우리들은 정말 더 가까워지고 덜 외로워지고 있을까?

인공지능 시대, 인간 사이의 관계와 소통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인공지능 관계소통학(가제)>은 위와 같은 고민에 뿌리를 두고 있다. 기술이 어떤 방식으로 변화하든, 그 속에서 인간이 필연적으로 갖게 되는 불변의 질문은 궁극적으로 이것이 우리의 행복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있으며, 그 행복의 근원은 적지 않은 부분 우리가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고 관계를 유지해 나가는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공존과 상생의 방법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사회를 구성하는 규범, 관습, 문화, 제도, 질서를 형성하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인간의 상호작용과 관계 맺음은 개인의 삶을 넘어 사회의 유지와 발전에 또한 핵심적인 요소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까닭에서 저자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 화상 회의 플랫폼, 메타버스, 인공지능 통역 및 번역 등 코로나 전후 인간의 소통과 관계를 매개하는 대표적인 기술 사례를 들어 각 기술의 특성과 이용양식이 사람들 사이의 소통과 관계에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 적지 않은 분량을 할애하여 주의 깊게 들여다보고 있다. 

팬데믹 기간 동안 줌과 같은 화상 회의 플랫폼의 사용이 보편화되며 이로 인해 사람들이 대면 상호작용에 대해 불편한 인식을 갖게 될 수 있다고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어느 정도 일상으로 복귀한 지금, 오히려 화면 너머로 소통하는 것이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낯설고 어색하게 여겨진다고 토로하는 목소리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기술이 가져다 주는 다양한 기능과 편의와는 별개로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하는 인간관계의 본질은 기술의 선 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닐 수 있음을 암시한다. 기술의 발전과 무관하게, 직접적인 교류를 자연스럽고 편안한 것으로 느끼는 인간 본성의 관성적 작용을 간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는 우리에게 현실 세계에서 기술과 인간이 상호 작용하는 과정에서 그 해석과 의미가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 지속적인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을 촉구하는 신호일 수 있다. 결국, 기술은 고정된 의미를 가지지 않고, 인간과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그 의미가 유동적으로 변화할 수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함을 역설하는 것이다. 

이 책의 전반에서 다루는 기술을 둘러싼 다양한 관점과 해석은 정해진 결론이나 답을 제시하기보다는 더 많은 질문을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 메타버스, 화상 회의 플랫폼뿐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을 매개하는 수많은 기술이 어떻게 인간 사이의 소통에 영향을 미치며 관계를 구성하고 있는지 스스로의 관점에서 한 번 더 성찰하고 질문을 던져 봄으로써, 우리는 기술의 변화를 관조하거나 단순히 수용하는 것을 넘어 어떻게 이를 통해 진정한 인간적인 연결을 촉진할 수 있을지 보다 심도 깊게 사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박소영(조선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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