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전쯤부터 대학에서 많이 듣는 말이 있다. ‘인문학이 위기에 빠졌다.’ ‘인문학이 무너지고 있다.’, ‘인문학이 사라질 것이다.’ 등의 말들. 주로 인문계열의 과들이 통폐합되고 학과들이 사라지는 상황에서 들리는 목소리들이었다. 윤리학 전공자인 나도 ‘이러다가 인문학이 정말 사라지는 건 아닐까’하고 두려워했었다. 그렇게 세기말이 지나 밀레니엄 시대가 열리고 21세기도 안정세에 들어갈 때쯤에 ‘특이점이 온다.’라는 말이 들려왔다. 그 말은 내게 정말 특이하게 다가왔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넘어서는 시기라니, 인문학의 붕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두려움이 다가왔다. SF 영화의 암울한 미래상이 그려지고, 이제 더 이상 인간 사이의 따뜻함은 없을 것만 같았다. 나만의 걱정은 아닌지, 사회 이곳저곳에서 특이점에 관한 이야기가 솔솔 들려오기 시작했다. 특이점 이후의 세계와 삶의 방식에 대한 다양한 분석이 신문, 인터넷, 뉴스 등에서 쏟아져 나왔고 당장이라도 인류가 멸망할 것처럼 떠들어대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로부터 10년이 흘렀다. 아직 특이점은 오지 않았지만 그 시간은 우리에게 좀 더 가까워졌다. 『AI를 이기는 철학』은 이러한 우리의 두려움에 맞닿아 있다. 인간이 더 이상 인간답게 살 수 없는 사회가 언제고 들이닥칠 수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두려움을 이겨내고 인간으로서의 고귀한 가치를 유지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과 근본적 해결책을 향한 우리의 바람이 이 책 안에 담겨 있다. 작가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한다. ‘이렇게 살면 된다’라고 자신 있게 얘기하기도 한다.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지 말고 낙관적으로 바라봐도 된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너무나 자신 있게 말하니 사이비 종교에 빠진 이단아처럼 광신의 마음이 생겨나기도 한다. 책을 처음 접한 독자들 또한 작가의 자신감에 덩달아 고취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작가의 자신감은 20여 년 전에 사라질 것만 같았던 인문학을 지금까지 버텨낼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인문학 내 서열 1위인 철학에 기인한다. 작가는 AI와 맞설 수 있는, AI는 흉내 낼 수 없을 인간만의 고유한 능력을 이야기한다. 그중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모호성’이 오히려 인간을 강력한 존재로 유지해줄 것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허무맹랑한 주장만은 아니다. 이미 몇천 년 전 동서양의 철학자들이 했던 주장이 그 근거다. 『AI를 이기는 철학』은 가까운 미래인 2025년에 관한 이야기로 서두를 연다. 너무 먼 미래가 아닌 불과 몇 년 후임에 귀가 솔깃하다. 이렇듯 가까운 미래의 이야기에 인공지능을 들먹이는 속내에는 이유가 있는 듯하다. 작가는 ‘언젠가는 인공지능에 의해 이렇게 될 거야, 저렇게 될 거야’라는, 막연해서 우리의 삶과 영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일을 말하지 않는다. 그는 실제 발생할 수 있는 일들과 그러한 상황을 분석하여 먼 미래의 후손이 아닌 지금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말하고 있다. 『AI를 이기는 철학』은 독자들이 앞으로 몸소 경험하고 구성하게 될 삶의 방향을 제시하고, 과연 어떤 삶이 좋은 것인지 충고하며 독자들을 끌어들일 것이다. 2025년은 특이점이 발생하는 시기는 아니다. 다만 이 책은 특이점이 눈앞에 들이닥치기 전에 인간만의 강점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인공지능에게 밀리지 않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독자들에게 강력하게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작가는 뻔하지만 그래서 더욱 설득적인 방법을 제안한다. 바로 공부다. 그것도 천천히, 천천히. 작가는 12가지 공부 방법을 제시한다. 그중 하나는 지금까지의 공부방식이 연산 중심의 빠른 지식 습득에 중점을 두었다면 앞으로는 AI와는 다른 방식의 공부를 하라는 것이다. 작가는 급할 것이 없는 즐거운 공부를 하라고 말한다. ‘그것이 과연 21세기에 어울리는 공부일까’라는 의문은 책을 읽다 보면 저절로 해소된다. 독자들은 때론 당연하고 때론 기발한 공부법에 설득되어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공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공부의 힘을 기르기 위해 꼭 필요한 10가지 철학적 사고법을 제시하여 AI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것을 독려한다. 작가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철학적 사고법을 통해 누구나 AI보다 뛰어난 사고력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앞서 말한 12가지 공부법과 10가지 철학적 사고법은 작가가 임의로 만든 것이 아니다. 작가가 분석한 다양한 철학 사상이 그 안에 녹아들어 있다. 소크라테스부터 레비스트로스까지, 노자로부터 스즈키 다이세츠까지(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일본의 불교학자이다). 독자들은 작가가 제안하는 공부법과 사고법을 경험하며 동시에 여러 철학자를 만나고 그들의 생각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책의 내용을 보면 유행하는 자기계발서 중 하나 같기도 하다. 나도 처음 『AI를 이기는 철학』을 보았을 때는 인공지능을 머리글 삼아 쓴 흔한 자기계발서의 일종이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읽어가면서 『AI를 이기는 철학』이 자기계발서보다는 철학책에 가까우며 어쩌면 미래를 분석한 책 같다고도 생각하게 됐다. 포켓북 사이즈의 이 가벼운 책은 보기보다 묵직하다. 술술 읽히면서도 자꾸 생각에 빠지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는 책이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시험 기간 때마다 교과서를 베고 자면 책의 내용이 머리에 들어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자고 일어났더니 교과서의 내용이 머리에 저장되어 시험에서 만점을 받는 것은 게으른 인간들의 가장 큰 바람일 것이다. 이런 바람도 미래에 AI가 발달하고 기술이 발전하고 나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알고 싶은 지식을 뇌의 신경세포에 전달하려는 노력과 연구는 끊임없이 진행 중이며, 관련 기술도 계속해서 개발되고 있다. 만약 그런 날이 온다면 지식 습득의 노력은 불필요해질 것이다. 과거 노동으로부터 소외되었던 인간이 다시금 지식으로부터도 소외된다면 인간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이 인간의 가치를 유지해 줄 수 있을까. 독자들은 책을 읽는 중간중간 숱한 생각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것이 작가가 원하는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고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책을 읽고 난 후에도 계속해서 무언가를 고민한다는 것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철학의 세계에 발을 디디고 철학적으로 사고하고 있다는 뜻이니까. 역사적으로 세기말에는 다양한 예언이 나타난다. 긍정적인 예언보다는 대부분 부정적인 예언들이다. 하지만 인간은 모든 부정적인 상황을 극복하고 지금의 유례없이 발전된 문화를 이룩하여 향유하고 있다. 다가올 미래에 대한 불안은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유한한 인간이 가진 공통 특성일 것이다. 불안을 인식하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것은 생각하는 힘을 가진 인간 만의 특성이며, 인간은 이러한 특성을 바탕으로 자신을 극복하며 더욱 발전할 것이다. 여러분들도 『AI를 이기는 철학』를 읽고 인간의 발전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한층 업그레이드할 수 있기를 바란다.
송욱빈 (영동고등학교 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