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라는 용어가 ‘공식적으로’ 처음 등장한 것은 1956년 여름 뉴햄프셔에서 열린 다트머스 컨퍼런스(Darthmouth Conference)에서다. 이 회의는 1955년 8월에 미리 작성된 제안서를 토대로 진행됐는데, 참석자는 존 메카시(J. McCarthy), 클로드 섀넌(C. E. Shannon), 마빈 민스키(M. L. Minsky), 너대니얼 로체스터(N. Rochester) 등으로 컴퓨터 공학 분야의 전문가들이다. 핵심 의제는 컴퓨터가 인공지능의 수준으로 발전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근본문제를 정리하여 컴퓨터공학의 연구방향을 설정하는 것이다. 여기서 제안된 문제는 7개 항목으로 컴퓨터의 자동화, 컴퓨터가 자연어를 사용하도록 프로그램 하는 방법, 뉴런연결망(인공신경망), 연산의 규모에 관한 이론, 컴퓨터의 자기개선, 데이터의 추상화, 데이터 산출의 무작위성과 창의성에 관한 것이다. 현재 인공지능과 관련된 가장 중요한 문제들을 거의 망라하고 있다.
이 제안서에서 로체스터는 인간에 대한 기계의 ‘비교우위’를 언급한다. 컴퓨터는 어떤 문제가 주어졌을 때 인간을 대신하여 해결책(solution)을 찾아내도록 고안된 연산기계다.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에서 앨런 튜링이 나치의 암호 애니그마를 해독하기 위한 기계를 설계하듯이 말이다. 보통의 경우에는 인간이 축적해 놓은 거대한 지식 체계 속에 답이 있다. 추우면 불을 피우는 가장 단순한 지식에서부터 지구 온난화로 해수면이 상승하니 탄소배출량을 줄이기로 합의하는 세계 기후조약 등이 그 예다. 그것이 문명의 힘, 요컨대 지성의 힘이다. 따라서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인간은 과거의 지식을 뒤져 유사한 사례가 있는지 살펴서 적합한 해결책을 찾고자 한다. 그런데 전혀 새로운 유형의 문제가 발생했을 때, 혹은 인간이 ‘사고’를 시작한 이후 여전히 해답을 찾지 못한 문제와 관련해서는 사정이 다르다. 또한 과거에 해답을 찾아냈지만 그보다 훨씬 문제가 복잡할 경우 불확실성도 커져 해결 규칙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어떤 해결책이 유효한지 여러 가능성을 테스트해야 한다. 예컨대 여러 변수가 개입하는 틱택토 게임에서처럼, 그보다 훨씬 복합적인 변수가 존재하는 체스나 바둑, 홀덤 게임의 경우처럼 규칙을 아는 것만으로는 답을 찾아낼 수 없다. 나의 결정 뿐 아니라 상대의 결정, 주변 환경 등 여러 복합적인 요인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탓이다. 나아가 한 개인이 해결책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규칙 안에 답이 없는 경우도 있다. 이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어쩔 수 없이 과거의 지식과 경험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방법으로 답을 찾아야 한다. 말하자면 ‘예상 밖에서’, ‘상상을 넘어서’ 여러 가능성을 차근차근 하나씩 대입하는 수밖에 없다. 무엇이 맞는 답인지 알 수 없기에 이 ‘대입’은 무작위로 진행된다. 이 방법을 로체스터는 ‘몬테 카를로 방법(Monte Carlo Methode)’를 확대 적용한 것이라고 밝힌다. 몬테 카를로 방법은 무작위로 추출한 난수를 통해 함수 값을 확률적으로 계산하는 알고리즘으로 근사치를 찾아냄으로써 문제를 해결한다. 어떤 답이 맞는 지는 적용해봐야 알기에 예단은 금물이며 방법은 오직 인내심을 갖고 랜덤하게 하나씩 대입한 후 기다리는 것뿐이다. 모래밭에서 바늘 찾는 격이나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는 근사치에 가까운 해결책이 나온다. 인간에 대한 기계의 비교우위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새로 주어진 난제를 풀기 위해 한 인간, 예컨대 과학자가 평생 노력해도 답을 찾을 수 없다면 다른 과학자들과의 협업이 필요하다. 이 경우 그들은 중복 대입을 피하기 위해, 말하자면 불필요한 낭비를 줄이기 위해 긴밀하게 소통해야 하나 이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또한 내쉬균형(Nash equilibrium) 이론에 따라 경쟁 관계에 있는 인간들은 개인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문제 해결과 상관없는 복합적인 여러 다른 전략을 취할 수 있다. 나아가 그들은 기존의 지식과 관습이 물려준 편견과 선입견에 따라 어떤 가능성은 무시하거나 배제해 버릴 수 있다. 한편 기계는 쉬지 않고, 지치지도 않고, 잠도 자지 않으며 모든 가능성을 시도해 볼 수 있다. 당연히 편견이나 선입견, 다른 기계와의 경쟁 심리도 없다. 기계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방대한 정보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속도와 용량뿐이다. 그래서 연산의 규모가 중요하다. 다트머스 회의에서 나온 의제에 따라 ‘개량된’ 현재의 인공지능은 다양한 영역에서 인간이 풀지 못했던 난제들을 해결하고 있다. 기계의 ‘비교우위’가 거둔 성과라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반대로 기계에 대한 인간의 ‘비교우위’는 어디에 있는지 궁금해진다.
박평종 (중앙대학교 인문콘텐츠연구소 HK연구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