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뉴딜 시대, 인재가 없다] <하> 한국형 DNA 인재양성 나서야
AI 등 핵심인재난...오히려 고급인력 해외유출 가속화
미·중은 물론 터키·대만·이스라엘보다도 핵심인재 적어
AI대학원·이노베이션아카데미 개설 등 노력에도 역부족
다양한 인재육성 로드맵 구축...연구자·엔지니어 키우고
장기·원천연구 확대...교수·연구원의 기업 겸직 허용 필요
주요대학 AI학과 개설하고 AI 인문학도 병행해 논의해야
국내 대표적인 반도체·인공지능(AI) 전문가인 김정호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기·전자공학부 교수의 제자들은 구글·애플·테슬라·마이크로소프트·페이스북·엔비디아·인텔·램버스 등 실리콘밸리 기업 취업을 선호한다. AI 등 고급인력의 경우 연봉이 4~5억원을 훌쩍 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현지 우수 인프라를 활용해 글로벌 인재들과 실력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개방적인 문화에 성과에 따라 많은 보상을 받는 시스템이 인재들을 끌어 당기는 것이다. 실제 김 교수 연구실 출신 석·박사 80여명 중 거의 40%에 육박하는 30여명이 실리콘밸리로 진출했다. 이 중에는 테슬라에서 전기차의 고주파 소음 문제를 해결하거나 엔비디아에서 성과를 내 최고경영자(CEO)의 집에 초대를 받기도 했다.
현재 실리콘밸리 기업에서 인도와 중국 출신이 각각 30%가량을 차지하고 있는데 한국 출신도 이처럼 계속 늘고 있는 것이다. 구글의 AI 연구팀인 구글 브레인 출신인 최윤재 KAIST 인공지능대학원 교수는 “실리콘밸리는 인재를 경쟁적으로 유치한다”며 “AI 연구자는 물론 빅데이터를 다룰 수 있고 고품질의 코드를 짤 수 있고 AI 기술을 잘 이해해 상품과 서비스에 접목할 수 있는 인재는 얼마든지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의 제자 중 한 명인 유웅환 SK텔레콤 부사장은 “저도 인텔에 10년 근무했지만 많은 경험을 축적해 귀국하면 굉장히 바람직한데 실상 국내로 유턴하는 경우는 절반도 안될 수 있어 국내 기업과 대학, 연구소의 여건을 좋게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맛집 추천에 AI·빅데이터를 활용하는 안병익 식신 대표(컴퓨터과학 박사)는 “FAANG(페이스북·애플·아마존·넷플릭스·구글)이 인도, 중국, 한국 출신 소프트웨어와 AI 인재를 흡수하고 있는데 우리도 인재 유치와 육성에 비상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제조업과 서비스업, 바이오·생명과학·금융·유통 등 각 분야에서 AI·빅데이터·반도체·클라우드 핵심 인력이 가장 중요한데 우리나라는 미국의 1% 수준이라는 게 김 교수의 냉철한 분석이다. 원천기술 없이 남의 것을 따라 다녔고 미국 기업들과 겨루기에는 혁신성이나 창의성, 영어 활용도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AI 핵심 인력의 경우 삼성 등 국내 기업도 3억~10억원 이상 연봉을 받을 수 있으나 글로벌 기업을 선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삼성전자와 네이버 등 국내 IT 기업들이 국내외 주요 대학과 연구소의 인재를 유치하거나 스타트업이나 연구개발(R&D)센터를 인수하는 등 ‘AI 퍼스트’에 나서고 있으나 아직은 역부족이라는 얘기다. 지난해 이승환 소프트웨어정책연구원 박사의 ‘AI 두뇌지수: 핵심인재 분석과 의미’에 따르면 세계 AI 핵심인재 500명 중 한국 출신은 1.4%로 미국(14.6%)과 중국(13%)의 10% 수준에 불과하며 터키·대만·이스라엘보다 낮다. 앨리먼트AI에 따르면 AI 전문인력(2만2,400명)의 46%가 미국에 활동하며 우리나라는 1.8%에 불과하다. 인공신경망학회와 국제머신러닝학회의 ‘AI 리서치 랭킹 2019’에 따르면 미국의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이 1~3위, 중국의 텐센트와 알리바바가 6, 7위, 일본 토요타가 11위이나 우리 기업들은 한참 뒤처져 있다.
김 교수는 “제조업 혁신이나 원격의료, 교육혁명 등 AI를 활용해 ‘디지털 삼각 혁명’을 꾀하는 ‘AI-X’ 전략을 펴야 한다. 하지만 국내 기업의 핵심 인력과 기술이 부족하고 정부의 R&D 과제도 뒤처진 게 적지 않다”며 “장기·원천연구를 확대하고 교수와 연구원의 기업 겸직을 허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아울러 전국 대학에 AI 학과를 만드는 등 인력양성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문이다.
미국 대학의 경우 새로운 AI 과목을 개설하거나 AI 집중 학과와 대학원을 이미 운영하고 있거나 속속 설립하고 있다. 나아가유명 대학들은 AI 강의 등을 유튜브와 코세라 등에 무료로 공개하며 AI 헤게모니를 강화하고 있다. 중국 역시 실리콘밸리 등 해외에서 AI 등 고급인재를 적극 유치하려 노력하고 대학에서도 관련 학과를 잇따라 개설하고 있다. 최 교수는 “이런 식으로 가면 국가나 기업 측면에서 핵심인재의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우리나라는 작년 가을부터 KAIST, 고려대, 성균관대를 시작으로 현재 8개 대학에서 AI 대학원을 열어 정부에서 최대 10년간 190억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지만 이 정도 규모로는 턱도 없고 우수 교수진 유치에도 애를 먹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얘기다. 미국 MIT는 작년 가을 10억달러(1조1,500억원)를 투자해 ‘스티븐 슈워츠먼 컴퓨팅칼리지’라는 AI대학을 개설했다. 물론 우리나라도 후발주자의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프랑스 에꼴42를 벤치마킹한 이노베이션아카데미를 작년말 출범시키는 등 범용 소프트웨어 인력의 고급화에 나서고 있지만 좀 더 투자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미국·중국이 AI기술을 선도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AI 인재 육성 로드맵을 구축해야 한다”며 “최첨단 AI 이론 연구자뿐 아니라 AI 기술을 이해하고 서비스에 적용할 수 있는 엔지니어 양성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학에서 다양한 AI 교육이 가능하도록 좋은 교수진을 구축해 강의와 연구 프로젝트를 자유롭게 할 수 있게 하고 초·중·고에서는 코딩, 데이터 분석, 시각화, 간단한 로봇 구현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준화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은 “AI 등 인재양성을 공급 중심에서만 볼 게 아니라 기업이나 기관 등에서 AI를 많이 활용할 수 있는 수요확대를 동시에 꾀해야 한다”고 말했다.
AI 인문학을 개척해 온 이찬규 중앙대 인문콘텐츠연구소 HK+인공지능인문사업단장은 “AI 인문학을 동시에 발전시켜야 한다”며 “수학·공학뿐 아니라 철학·법학·의학·사회학·심리학·문학 측면에서 AI를 논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고광본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