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기계의 협업: 기계미학의 쟁점들
박평종 (HK연구교수, 중앙대학교 인문콘텐츠연구소)
이 연구는 기계미학의 관점에서 인공지능과 창작의 문제를 다룬다. 머신러닝을 통해 진화하고 있는 인공지능은 스스로 예술작품을 생산하는 단계까지 와 있다. 그런데 실상 현재의 인공지능은 진정한 ‘창작기계’라기보다는 과거의 작품들을 학습하고 모방하여 유사한 작품을 생산하는 ‘모방기계’에 가깝다. 그렇다면 이 ‘모방기계’가 수행하는 작업은 예술행위라고 할 수 없을까? 현재의 예술 패러다임에 따르면 ‘창의적’ 작품을 생산하는 자만이 ‘저자’로 간주된다. 예술작품은 모방적 행위가 아닌 창의적 행위의 산물이다. 관습적으로나 법적으로나 모방은 창작의 반대급부다. 인공지능이 수행하는 예술은 알고리즘과 프로그램의 산물이다. 그런데 프로그램은 예측 불가능한 무엇을 산출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이 가능하다. 말하자면 인공지능도 ‘창의적’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인간의 모든 창작 행위가 과거의 지식을 학습한 바탕에서 자기만의 규칙을 찾아나가는 과정이라면 근본적으로 새로운 것을 창작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즉 ‘창의성’은 그 자체로 이율배반적일 뿐만 아니라 신화적 개념이라는 뜻이다. 현재의 예술 패러다임에 따르면 인간만이 ‘창의적’ 저자일 수 있다. 하지만 점차 저자 개념은 확장되고 있다. 인공지능이나 프로그래머가 창작의 주체가 돼서는 안 된다는 관념도 흔들리고 있다. 중요한 문제는 창작의 주체가 누구냐가 아니라 창작의 결과물이다. 그런 점에서 진정한 프로그램은 ‘사전-문자(pro-gramme)’가 아니라 ‘사후-문자(post-gramme)’일 수 있다. 기계시대와 더불어 진행됐던 인간과 기계의 협업을 생각해 보자. 인간은 기계를, 기계는 인간을 모방해 왔으며, 그 과정에서 인간은 신체와 감각기관의 한계를 넘어 감각의 영역을 확장시켜 왔다. 이는 그 자체로 인간의 확장이다. 그런 점에서 이제 저자 개념에 대한 푸코의 질문을 차용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때가 됐다. “누가 창작을 하건 무슨 상관인가?”
주제어:인공지능, 프로그램, 저자, 창의성, 창작기계, 모방기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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