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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기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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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26 11:30

박사논문을 준비하던 2018년 어느 날, 핸드폰 알림을 통해 새로운 기억이 도착했다. 나에게 ‘새로운 추억’이 있다는 흥미로운 알림을 타고 들어가니 한 해 동안 내가 사진첩에 저장한 사진의 일부가 잔잔한 배경음악과 함께 짧은 영상으로 엮여있었다. 함박눈이 쏟아지던 날 집 앞 사진, 새로 산 꽃 화분 사진, 해바라기 밭에서 찍은 독사진, 뉴욕 여행 중 찍은 사진 일부, 친구의 졸업식, 미국에 방문한 가족들과 방문한 바닷가와 숙소 사진들이 차례로 이어졌다. 사진을 보며 흘러가버린 나의 2018년의 일부를 돌아보며 웃었지만, 한 편으로 박사논문 준비로 하루하루 초췌해져 가던 나의 한 해가 이렇게 아름답게 기억된다는 것이 우스웠다.  

나의 추억을 만들어서 가져다 준 건 애플의 인공지능 기반 사진배열 서비스, “추억 (Memories)”이다.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저장된 사진을 배열해 이른 바 ‘추억’을 만들어주는 서비스는 애플이 처음은 아니었다. 2017년 애플이 서비스를 시작하기 전 2012년부터 페이스북 (현, 메타)은 매 년 12월이 되면 이용자가 자사 플랫폼에 공유한 글과 사진 중 ‘좋아요’ 수가 높은 것들만 모아 한 해를 돌아보는 영상을 만들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였다. 2015년에는 구글이 구글포토스라는 대용량 사진 저장 서비스를 제공했는데 사진을 단순히 저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저장된 사진을 장소, 주제, 인물별로 검색할 수 있도록 했다. 뿐만 아니라 여행 사진은 따로 모아 앨범을 만들어주었는데, 따로 여행 중임을 알리거나 여행 사진 중 마음에 드는 사진을 직접 고르지 않아도 수 백 장의 여행 사진 중 제법 괜찮은 사진들만 모아 여행 앨범을 만들어 주었다. 단순히 ‘좋아요’ 수를 세던 초기 서비스에서 나아가 사진 자체가 갖고 있는 정보를 읽어 사진을 고르고 배열했는데, 서비스 첫 출시 후 몇 년이 흘렀고 이들이 사진을 골라내는 방식은 점점 정교해지고 있다.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매체는 더 이상 사진을 저장하기만 하지는 않는다. 카메라의 처음은 “시각적 무의식 (optical unconscious),” 즉, 인간의 눈으로는 관찰할 수 없는 지속적으로 움직이는 실재의 단면을 잘라 보여주는 ‘과학’의 영역이었다(Benjamin, 2008 [1935]). 카메라가 보편화되고 가족사진을 찍고 가족 앨범을 만드는 동안 사진은 흘러가는 시간을 이미지에 붙잡아 다른 시간으로 가져갈 수 있는 기억의 문화가 되었다 (Barthes, 1981). 디지털 카메라나 카메라가 장착된 스마트폰이 보급된 후에는 사진을 찍는 행위 자체가 너무나 일상적인 것이 되었고, 사진을 앨범에 넣어 방 한 편에 보관하지 않고 사회 관계망 서비스를 통해 온라인상의 지인들과 공유하는 것은 일상을 기억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 되었다. 

이제 인공지능이 또 다른 기억하기를 제안한다. 흘러가는 일상의 단면을 사진으로 남긴다. 사진은 자동으로 저장되고, 저장된 사진 중 어떤 사진을, 어떤 시점에 다시 보며, 어떻게 기억할지는 인공지능이 결정한다. 어떤 한 해를 보냈던, 밝고 빛나는 순간을 어떻게든 찾아내어 기억하고 추억하라고 부추긴다. 그동안 인공지능 기반 매체는 내가 사진을 찍은 기간이 공휴일인지, 주말인지, 방학 중인지, 혹은 생일인지 분석하고, 한 곳에서 얼마나 많은 사진을 찍었는지도 세어 가며 내가 사진을 왜 찍었을까 추론한다. 장소를 알아내기 위해 사진의 위치정보를 사용하기도 하고 사진 속 지형지물을 읽어내기도 한다. 사진 속에 꽃, 졸업가운, 웨딩드레스 같은 것들은 없는지, 사진첩에 자주 등장하는 얼굴이 있지는 않은지, 사진 속에서 눈은 떴는지, 입은 벌려 웃었는지 파악한다. 무엇을 기억할지 결정하는 감각 정보나 의미 작용은 수학적으로 계산되고 양화되며, 그 과정에서 나의 기억은 인공지능이 읽을 수 있는 패턴이 되고 우리 모두의 ‘추억’은 표준화된다. 

시각 및 청각 데이터를 기록하고 저장하던 매체는 이제 인공지능을 얻어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고, 어떻게 기억할지 결정하는 기억이 가진 가장 정치적인 부분까지 파고 든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던 우리가 누가 딱히 시키지 않아도 사진을 찍고 사회 관계망 서비스에 올렸듯, 우리는 인공지능이 생산하고 개입하는 기억의 방식을 육화하며 매체와 새로운 상호작용을 만들어 갈 것이다. 인공지능이 제안하는 ‘추억’이 일상을 기억하는 유일한 문화가 될 것이라고 속단할 수는 없지만, 인공지능 기반 매체는 사진을 찍고 저장하거나, 일상을 기억하고 잊어버리는 우리의 실천에 집요하게 개입하고 있다 (Lee, 2020). 

오늘, 당신은 무엇을 찍고, 내일, 당신은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인공지능은 일상을 기록하는 당신에게 매일 묻고 있다. 

참고문헌
Barthes, R. (1981). Camera Lucida: Reflections on Photography. Macmillan.
Benjamin, W. (2008). The work of art in the age of its technological reproducibility, and other writings on media. Harvard University Press.
Lee J. Algorithmic Uses of Cybernetic Memory: Google Photos and a Genealogy of Algorithmically Generated “Memory.” Social Media + Society. October 2020. doi:10.1177/2056305120978968

 이정현 (중앙대학교 인문콘텐츠연구소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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