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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시대에 다시 쓰는 부고(訃告)> - 『아무도 죽지 않는 세상』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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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20 18:13

제 4회 인문페스티벌 독후감 부문 대상 수상작 (대학 일반부) 
 

 

‘부고’(訃告) 또는 ‘부음’(訃音)은 사람의 죽음을 알리는 글이나 통보를 가리킵니다. 가족 중 누군가 임종을 맞게 되었을 때 서둘러 하게 되는 일 중의 하나가 바로, 고인과 유가족의 지인에게 부고를 전하는 것입니다. 때로 누구에게까지 전해야 할지 그리고 혹시 잊고 전하지 못한 사람은 없는지 신경이 많이 쓰이는 일입니다. 장례식장을 정하고 입관일과 발인일 그리고 장지(葬地) 등이 결정되면 이제 부고 전달에 필요한 내용이 갖춰집니다.
요즘 부고에는 고인의 이름, 사망연월일, 자손의 이름, 발인일자, 장지의 위치 등을 명기합니다. 장례식장 입구와 개별 조문 공간 앞의 스크린에서 이러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때로 신문이나 인터넷 기사를 통해 알리기도 합니다. 4차 산업혁명이 삶의 곳곳에 뿌리내리게 될 미래 시대에 부고는 어떤 내용을 담게 될지 궁금해집니다. 4차 산업혁명은 생명공학과 나노기술을 통해 생명연장을 이룬 인간이 사물인터넷(IoT)으로 인공지능(AI) 로봇과 소통하며 편리한 일상을 영위하면서 물리적 세계만이 아닌 가상현실(VR)을 경험하고 가상세계(Virtual World)에까지 삶의 영역을 넓혀가도록 만들 것입니다. 그런 시대에 고인에 대한 소식을 전하는 부고는 어떻게 바뀔까요.

먼저 고인의 이름 옆에는 괄호 안에 또 하나의 이름을 적을 수도 있습니다. 가상세계에서 활동하던 또 다른 나, ‘아바타’의 이름입니다. 사망연월일은 신체의 활동이 멈춘 생물학적 사망일이 아니라, 인공장기의 작동을 중단한 날을 기록할지도 모릅니다. 인공장기로 가능해진 생명연장으로 죽음에 대한 판단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발인일자와 장소는 위성항법장치(GPS)상의 주소만 아니라, 장례예식을 중계할 인터넷 사이트 주소 또는 전혀 다른 형태의 장례식이 진행되고 있는 가상세계에 대한 정보도 함께 제공할 것입니다. 그리고 고인을 최종적으로 모실 장소인 장지를 적을 공간에는 지도상의 위치를 적거나, 아니면 빈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증강현실(AR)과 가상현실을 통해 현실감 있게 고인을 만날 수 있기에 따로 장지를 마련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좀 과한 상상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4차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인공지능이 일상의 곳곳에 영향을 미치며 시시각각 개인만 아니라 사회, 전 지구적인 삶을 변화시키는 상황에서 충분히 그려볼 수 있는 미래의 모습입니다. 죽음 그리고 죽음과 관련된 예식과 추모와 같은 활동은 삶과 분리되지 않는 일상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그래서 삶의 한 부분으로서의 일상의 변화가 그대로 반영됩니다. 인공지능은 죽음에 이르는 과정과 죽음을 판단하는 기준 또 장례 절차 그리고 추모 방식 등에 있어 실제적인 여러 변화를 일으킬 것입니다.

책 『아무도 죽지 않는 세상』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주제 중 하나인 인공지능과 인공장기를 통해 생명연장을 이룬 인류의 미래 모습을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주인공은 30대로 보이지만 실제 나이는 250살인 인간 빅터(Victor)로 이 책은 나노기술, 유전공학, 인지과학 등의 융합기술(CT)로 등장할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 시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빅터가 이렇게 이전세대 누구보다 더 영리하고 건강하며 젊은 모습으로 오래 살 수 있었던 것은 심장병을 앓았지만 인공심장을, 사고로 팔을 잃었지만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은 물론이고 힘도 훨씬 더 세진 인공 팔을, 망막 세포가 수명을 다했지만 컴퓨터 칩으로 교체를, 그리고 뇌신경을 이식받아 뇌 기능이 강화되면서 능력을 무한히 확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인간의 신체와 정신을 극한까지 강화하려는 움직임”인 트랜스휴머니즘이 도래할 세상은 심장, 콩팥, 폐, 간, 망막, 심지어 뇌까지도 인공장기로 대체하면서 질병의 치료와 인간 강화를 이룰 것으로 보입니다. 나노로봇은 몸속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손상된 세포를 고치고 암세포는 즉시 없애며 DNA 복제 오류까지 복구합니다. 인체의 한 부분이나 일부 장기를 기계 장치로 교체하면서 그 이전의 기능을 대신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인공지능으로 인간이 기계에게 다양한 명령을 보다 손쉽게 내리고 획기적으로 문제를 처리하는 것 이상의 일들이 벌어질 것입니다. 즉 기계와 기계, 더 나아가 기계와 인간이 상호작용하는 초연결의 차원으로까지 확장된 새로운 인류의 탄생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저자는 인공장기로 생명연장을 이루어 궁극적으로 죽음을 넘어서는 트랜스휴머니즘 세상에 대한 긍정과 부정의 측면을 함께 보여줍니다. 물론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 속에 부정적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순식간에 등장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측할 수 있는 것들만 아니라, 현재기술이나 인간의 상상력으로도 아직 예측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날 수 있기에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은 희망과 함께 공존합니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은 모든 인간이 추구하는 행복한 삶의 조건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거나 곧 죽게 될 상황에 직면해 두려움과 큰 슬픔을 경험합니다. 그런데 인공지능은 보다 정확한 질병에 대한 진단과 치료로 생명연장을 현실의 일로 이루었습니다. 앞으로는 기능을 다하거나 제 기능을 못하는 신체의 일부를 인공장기로 교체하면서 영원히 죽지 않을 세상이 올 것만 같습니다. 생명공학과 기술공학의 도움으로 이런 문제를 극복할 것처럼 말이지요.
하지만 이식한 장기라 하더라도 비활성화나 중단을 결정해야 할 순간이 찾아올 것이고 그 때, 누가 그것을 결정할 것일지에 대한 선택의 문제는 여전히 남습니다. 동시에 죽기 위해서는 인공장기가 고장 나기를 기다리거나 임의로 정지해야 하는데, 이런 선택과 기다림이 생명연장의 이유 중 하나인 행복한 삶에 부합하느냐 하는 점도 생각해야 합니다. 이 책의 주인공 빅터는 아내 일레인(Elaine)이 난소암으로 곧 죽게 될 상태였을 때 아내로부터 이런 요청을 받습니다.

“저는 살 만큼 살았어요. 집에서 평화롭게 눈을 감고 싶어요. 당신이 원하면 호스피스에 가도 좋지만, 그 이상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예요. 그저 평화롭게 죽을 수 있게 해주세요.” (Eve Herold, Beyond Human, 강병철 역, 『아무도 죽지 않는 세상』(제주: 꿈꿀자유, 2020), 18.)

물론 의사는 특수 제작된 나노입자를 주입해 암세포를 찾아내 없애버리면 완치될 수 있다고 장담했지만 일레인은 죽음을 선택했고, 그것은 빅터의 평생에 가장 힘든 일이었습니다. 일레인은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로운 죽음을 맞았습니다. 그럼에도 빅터가 겪은 상실감은 컸고 이처럼 인생에서 경험하는 수많은 고통의 문제는 시기의 차이만 있을 뿐, 여전히 언젠가는 감당해야만 하는 삶의 일부입니다. 트랜스휴머니즘 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앞으로 누구나 사용가능한 보편화된 기술이 개발되기 전이라면 생명연장의 혜택을 누리기 위해서는 부담해야 할 비용이 큽니다. 즉 특정 집단만이 누릴 수 있는 기술이 된다면 풀어야 할 정의의 문제와 그로 인한 사회적 갈등은 더 큰 혼란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기술의 실제적이고 효율적인 활용을 위해서 수집되어 사용하게 되는 수많은 개인 정보는 온라인상에서 언제든지 공개되거나 악용될 수 있기에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문제도 큰 이슈입니다.
그리고 저자가 언급하는 깊은 성찰의 주제가 있습니다. 자연사나 존엄사와 같이 죽음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인간 존재에 어울리는 선택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그렇다면 변화를 이루어온 인류의 지금까지 또 앞으로의 여정과는 어떻게 조화를 이룰지에 대한 문제입니다. 이것은 인간 삶의 지향에 있어 중요한 자기 결정권의 문제와 존엄성을 유지하며 삶을 살 수 있는 권리에 대한 것이기도 합니다. 변화와 혁신의 과정과 목표에서 인간됨을 극대화시킬 것인지, 아니면 그보다는 편의성과 완벽함의 추구에 우선순위를 둘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하게 만듭니다. 

4차 산업혁명은 우리의 일상만 아니라, 죽음의 순간과 누군가의 죽음 이후의 의례까지도 바꾸어 놓았고 앞으로는 더 큰 변화를 만들어낼 것입니다. 우선 인공지능과 생명공학으로 트랜스휴먼과 같은 새로운 인류가 등장하게 된다면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과 함께 죽음에 대한 정의도 새롭게 묻게 되겠지요. 인간은 점차 기계화되어 로봇과 구별하기 어려운 사이버 인간이 될 것이고, 기계는 보다 인간에 가까워져 인간 고유의 특성까지도 닮은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고인이 살아온 삶에 대한 빅데이터(big data)가 클라우드 컴퓨팅(cloud computing)으로 온라인에서 저장 및 활용되어 언제든지 어디에서라도 접할 수 있다면, 고인을 기억하기 위한 장례식과 추모의 의례 또한 지금의 모습과는 달라질 것입니다. 디지털 기술로 죽은 사람을 마치 살아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처럼 불러와 상호교감하게 될 것이니까요. 이렇게 변화된 환경에서의 삶을 위한 준비가 필요하듯, 삶의 또 한 측면인 죽음에 있어서도 인공지능으로 변화될 미래에 대해 준비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인간은 삶의 시간만 아니라, 죽음의 경험을 통해서 정의되는 존재입니다. 한 인간의 총체적인 모습은 살아 있을 때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태도로 일상을 대하느냐로 자리 매겨집니다. 동시에 언젠가는 맞을 죽음을 준비하며 오늘을 어떻게 살았는지에 따라 이후 사람들의 기억을 통해 평가됩니다. 사람은 살아 있는 때는 인식함을 통해 그리고 죽어서는 기억 속에 그가 누구인지 생각하며 인상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책 제목 ‘beyond human’은 ‘아무도 죽지 않는 세상’에 앞서, ‘누구나 잘 사는 세상’으로 풀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 신체를 보존하는 차원을 넘어 심리적인 내적 요인과 관용이나 사랑, 자유와 평등처럼 어느 시대, 누구에게서나 지켜져야 할 소중한 가치까지도 함께 잘 품어내는 삶으로 말이지요. 인간은 그런 다양한 면이 하나로 모아진 존재로 정의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죽지 않고 사는 생명의 연장만 아니라, 죽음 이후에도 기억을 통해 더욱 선명하게 존재할 수는 특별한 존재입니다. ‘인간으로서 정말 잘 사는 세상’, 이것이 인공지능을 통한 무한한 생명연장을 경험하게 될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류에게 묻고 함께 찾아야 할 질문입니다.

박인조 (재단법인 에덴낙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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