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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자의 다양한 얼굴과 공동체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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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19 13:57

온라인 공간에서의 자기표현과 소통에 익숙한 MZ세대에게 전달되는 메시지를 오로지 ‘듣기만’ 해야 한다고 강제하면 어떻게 될까. 이는 답답함과 불편을 넘어 기본적인 표현의 자유의 침해와 다름없이 해석되어 이들의 분노와 저항을 초래할 수 있다. 특히 Z세대의 경우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메시지의 수신인으로만 존재하는 대중은 역사책에서나 볼 수 있는 옛날 이야기일 것이다. 이들에게 실시간으로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불특정 다수와 소통하며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없는 세계는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인류의 지고한 역사에 비추어 볼 때 생각보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이야기이다. 백여 년 전까지만 해도 불특정 다수에 대한 동시적 메시지 송출조차 혁신이었다. TV와 라디오 등 소위 매스미디어의 매체적 특징이 그렇듯,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방향적으로 송출되는 메시지의 수신만 가능했음에도 그랬다. 제 1∙2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전개에 따른 통신 기술의 발달과 맞물려 선전과 선동, 아군의 사기 진작을 위해 다수의 대중에 전파되는 메시지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에 쏠리는 각계의 관심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이 과정을 연구하는 초기 커뮤니케이션학의 주류는 매스 커뮤니케이션mass communication으로, 여기서 ‘매스(군중)’는 메시지를 받는 입장인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을 일컫는다. 개성을 가진 개별적 존재보다 집단으로, 사안을 스스로 판단하는 능동성보다도 수동적인 존재로 표상되는 이들은 단순히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는 ‘수용자’로, 극에 참여하지 않는 관객audience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인터넷이 등장한다. 연결된 사람과 사람 간 주제에 국한하지 않고 자유롭게 정보와 의견 교환이 가능한 시대가 도래했다. 20세기 말, 독일의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가 ‘공론장’public sphere의 개념을 창시하며 합리적 이성을 가진 시민들의 집합에 의한 공중(public)의 형성과 이들의 공공 의제에 대한 여론 형성이 국가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한 축으로 작용하게 된 사회구조적 변동을 역설하기에 이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평범한 다수의 사람들이 각자의 이해 관계를 기반으로 독립적이고 자율적으로 사고하는 지성을 가진 참여자로서의 지위를 인정받게 되었다. 이후 소셜미디어와 모바일 컴퓨팅의 확산에 힘입은 사회적 연결망social network이 현대사회를 이해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가 된 지는 채 20년 정도에 불과하다. 위키피디아, 혹은 우리나라의 경우 네이버 지식인의 사례를 통해 흔히 논해지는 집단지성wisdom of crowd에 대한 희망과 낙관을 기억하는가. 이 시기 사람들은 주어진 기술의 이용자이자 생산과 소비를 겸하는 ‘생비자’prosumer로, 정보와 지식, 데이터, 기타 창의적 생산의 일익을 담당하는 연결된 다수이자 개체였다. 

소수 플랫폼 사업자의 독과점에 따른 부작용에도 불구, 미디어의 역사에서 인간을 규정하는 인식의 변화는 인간성 존중과 인간 능력의 잠재력에 대한 신뢰라는 측면에서 인본주의의 부흥과도 맞닿아 있다. 충분히 고무적인 이야기이나,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이러한 진화의 과정에 소요된 시간이다. 

코로나는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바꾸었다. 기존의 중앙집중형 체제의 대안으로 등장한 분산형 네트워킹 방식의 블록체인 기술이 한 예로, 우리가 알고 있는 자산asset의 개념뿐 아니라 온라인 공간에서 공동체가 만들어지고 작동하는 방식에도 거대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그 대표적인 형태가 바로 분산된 개인이 스마트 계약을 통해 자유롭게 네트워크 커뮤니티에 참여하여 소유권과 의결권, 수익권을 행사하는 ‘분산형 자율조직’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 DAO이다. 공동목표의 실현을 위해 구성원들이 자원을 지원하는 일종의 프로젝트 그룹으로 전통적 벤처투자펀드나 크라우드펀딩이 이와 유사한데, 다른 점이 있다면 블록체인 네트워크 시스템에 계약 당사자 간의 협의 내용을 오픈소스 컴퓨터 코드로 구현하고 특정 조건이 만족했을 때 자동화된 계약 이행이 가능하게끔 하는 것이다. 계약 협의 내용은 프로젝트 네트워크 참여자의 투표에 의해서만 결정 및 변경되고, 그 과정 모두가 블록체인 장부에 투명하게 기록되어 은폐나 위조가 불가능하다.

DAO의 장점은 계약과정을 자동화함으로써 관리자나 이사회 등 별도의 수직적∙중앙집중적 체계 없이 수평적 커뮤니티 운영이 가능하며, 의사결정에 모든 구성원의 투표를 거치므로 중요한 의제의 제안이나 논의, 실현에 있어 커뮤니티가 가장 원하는 바를 우선적으로 채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프로젝트를 통해 창출된 가치를 참여자 전원에 분배하는 DAO의 작동 원리는 경제적 가치 창출과 직결되는 참여의 유형과 기회를 확대함과 동시에 이용자 참여의 강력한 촉매로 작용하고 있다. 경제적 기회와 참여유형이 다양해진 만큼 요구되는 ‘이용자’의 모습도 다양해지고, 지난한 백여 년의 역사 속에서 비교적 느린 진화를 거쳐 왔던 이용자의 면모는 지난 몇 년 사이 그 어느 때보다도 변화무쌍해졌다.  


암호화폐 투자자 중 하나인 쿠퍼 털리(Cooper Turley)는 이러한 변화를 반영하는 DAO를 그 특성에 따라 여덟 가지 유형으로 나누고 있다. DAO 구성을 위한 운영체제와 도구를 지원하는 데 특화된 운영체제operating systems DAO, 암호화된 프로토콜을 관리하는 프로토콜protocol DAO, 기존 투자펀드와 유사하게 가치 있는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투자investment DAO, 유망한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하고 육성하는 그랜트grants DAO, 지루한 원숭이들의 요트클럽Bored Ape Yacht Club 등 NFT화된 예술작품과 음원 등의 수집을 위해 모인 수집가collector DAO, 다른 DAO에 대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서비스 DAO, 소셜클럽 형성을 목적으로 하는 소셜 DAO, 콘텐트 제작자와 소비자의 상호작용에 바탕을 둔 미디어 DAO가 그것이다. 이용자는 여기서 놀이하는 사람으로서, 학습자로서, 창작자로서, 투자자로서, 노동자로서, 소통자로서, 기여자로서, 참여자로서 네트워크 가치창출에 기여하고 공동으로 그 가치를 향유할 수 있게 되었다. 이용자에 대한 인식적 측면에서, 이러한 급진적인 변화는 환영할 만한 진전이라고 본다. 이용자 간 협력과 기회의 폭 확대는 다방면에서 인간의 잠재적 역량을 발휘할 새로운 창구를 열고 있으며, 특히 과거 타자에 의해 규정되어왔던 이용자 스스로의 존재양식을 스스로 결정할 주도권을 얻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우리의 미래 공동체의 양식에 있어서도 DAO가 제시하는 비전은 일견 매력적이다. 수평적이고, 참여를 원하는 모두에 열려 있으며, 모든 구성원이 주권의식을 갖고 공정하고 투명하게 조직의 운명을 함께 논의하고 결정할 수 있는 매커니즘을 갖춘 조직.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상향으로 제시하는 조건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모든 과학기술의 발전이 그렇듯 여기에도 양면성이 있다. 우선 사람들이 구성하는 커뮤니티가 주로 경제적 이해관계에 기반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는 커뮤니티의 목표가 경제적 환원주의로 귀결되어 커뮤니티 외부의 더 넓은 ‘공동체’의 존재 혹은 소위 돈이 되지 않는 정신적 가치를 논의에서 배제할 소지가 있으며, 경제적 이익이 기대에 못 미칠 때 조직의 유대와 지속력에 현저한 위협이 될 수 있다. 커뮤니티 참여자들의 관여와 참여가 결국 눈에 보이는 경제적 가치로 산정되기에, 인간성이 경제적 수익성과 동일하게 취급될 수 있는 인간성의 상실도 또다른 위험이다. 또한 ‘그들만의 리그’가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좁게는 낮은 기여도 대비 높은 기여도를 보이는 소수 구성원 사이의 간극이, 넓게는 기술과 사회경제적 조건으로 인해 리그에 입장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사람들 대비 커뮤니티 구성원들 사이의 격차가 문제가 될 수 있다. 기술이 태동하는 현 시점에서 아직 미래를 예측할 수도, 그럴 필요도 없다. 다만 시험대에 오른 기술을 지켜보는 우리 인류 또한 동일한 시험대에 서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박소영 (중앙대학교 인문콘텐츠연구소 HK연구교수)
 

참고문헌: 
CoinYuppie (Jan 9, 2022). The future and potential pitfalls of DAO work. Available at: https://coinyuppie.com/the-future-and-potential-pitfalls-of-dao-work/
El Faqir, Y., Arroyo, J., & Hassan, S. (2020, August). An overview of 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s on the blockchain. In Proceedings of the 16th international symposium on open collaboration. pp.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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