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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자 패러다임과 집단지성의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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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10 17:31



‘창작자’가 되기 위한 진입장벽이 요즘만큼 낮은 시대가 없다. 영상, 소설, 음원, 미디어 아트, 기타 전문강좌 등 디지털 콘텐츠를 만들고 공유하는 기술이 발전하고 플랫폼의 영향력이 증가하면서, 누구나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게 되었다. 이들은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틱톡 등 소셜 네트워크 플랫폼에 본인의 일상이나 전문지식, 기발하거나 재미있는 짧은 분량의 영상인 ‘숏폼’ 콘텐츠를 업로드하거나 제페토, 로블록스 등 메타버스 플랫폼에 본인의 창의적인 디지털 아이템이나 콘텐츠를 판매해 수익화하며 창작자 경제(Creator Economy) 트렌드 확산의 주역이 되고 있다. 매년 실시되고 있는 청소년 직업선호도 조사에서도 창작자 직업군에 대한 높은 선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2020년 초·중등 진로교육 현황조사 결과에 따르면 ‘크리에이터’는 초등학생의 희망직업 4위, 중학생에서는 12위로 꼽혔다. 대중적 인지도가 있는 연예인일 필요도, 완벽한 외관이나 특출난 ‘끼’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나만의 콘텐츠’가 있다면 누구나 창작자로 활동할 수 있는 세상이다.

‘나만의 콘텐츠’라는 용어가 전달하는 의미에는 미묘한 이중적 울림이 있다. 먼저 다른 사람들과차별화되어야 할 필요성이다. 범람하는 수많은 콘텐츠 중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서는 남다른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하다못해 비슷한 류의 먹방이라도, 캐릭터나 ASMR, 소통 방식, 구성이나 분위기 등에서 다른 크리에이터와 다른 즐거움이나 새로움을 전달할 수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다른 의미로는, 결과로 남는 콘텐츠가 온전히 ‘나만의’ 창작물이라는 것이다. 개인방송을 실시간 중계하면서 시청자의 피드백을 받아 영상의 구성을 이어 나갈 수는 있으나, 최종적인 저작권은 (플랫폼을 제외하면) 방송을 기획, 제작 및 중계한 크리에이터에 있다. 예외적으로 저작물 공유원칙을 명시하거나 (예: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적용 등) 다른 창작자와 콜라보(collaboration)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최종 결과물로 생성된 창작물은 보통 크리에이터 개인이 원작자로 관련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크리에이터에 대한 대중적 열광과 낙관에 찬 미래 전망은 일말의 위화감을 선사하는 지점이 있다. 그리 멀지만은 않은 옛날, 인터넷에 대한 열광과 낙관이 네트워크의 힘과 이에 기반한 연결된 다수의 협력에 향했던 까닭이다. 미국의 법학자인 요하이 벤클러(Yochai Benkler, 2006)는 저서인 ‘네트워크의 부(the Wealth of Network)’에서 창의적인 공중(Creative Commons)에 의한 동료생산(Peer Production)이 어떻게 전사회적인 정보 생산 방식과 이를 둘러싼 경제생태계에 혁명적 변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는지 그 중요성을 설파한 바 있다. 우리는 여전히 위키피디아의 영광과 성공을 기억한다. 지금은 많은 경우 플랫폼 생태계의 패권적 행위자로 여겨지고 있으나, 구글 또한 당시 집단지성의 집약체로 여겨졌다. 이용자에게 가장 관련도가 높고 유용한 검색 결과를 보여주기 위해 여러 사람에 의한 선택과 인용 정도를 기준으로 웹페이지의 순위(PageRank)를 매겨 노출함으로써 기존의 검색방식에 일대 변혁을 일으켰던 것이다. 요즘은 가짜뉴스 현상으로 인해 부정적으로 해석되는 경향이 있으나, 소셜 미디어를 통한 정보 형성과 전파 또한 집단적 지성의 건강한 움직임으로 여겨졌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창의적인 공중(Creative Commons) 보다도 창작자(Creator)를 말한다. 다수의 협력에 의한 정보와 콘텐츠의 생산이 전하는 공공의 가치보다도 개인이 창작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유형의 이익에 방점을 두고 있다. 원래도 한국사회에서 위키피디아는 영어권 국가의 그것에 비해 그 품질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익숙지 않은 토론 문화, 기여나 기부에 대한 상대적인 적극성 결여, 포털 등 대체제에 의해 점유 및 포화된 정보환경 등 (정철, 2008), 한국형 위키피디아는 그 내용적 요소나 문장 자체의 품질에서 여러 한계점이 지적된 바 있다. 생산 과정에서의 협력의 구체적 사례를 찾기가 어렵다면 블로그 활동 등 다수의 사회적 생산의 총체는 어떠한가. 물론 양질의 정보 생산에 대한 노력을 목격할 수 없는 바는 아니나, 수많은 블로그 글에서 천편일률적인 양식에 광고와 홍보를 넘나드는 양산형 생산 방식의 흔적이 엿보이고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끊임없이 피드가 업데이트되는 소셜 미디어의 메시지는 적극적인 소통과 건강한 토론보다도 정보 과잉(information overload) 혹은 소음(noise)의 진원지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문화적 콘텐츠 융성을 기반으로 한 ‘한류’ 현상의 중심에 있는 우리 영상 콘텐츠의 문화적 가치는 명백하나, ‘남다른’ 콘텐츠로 타인의 주의를 끌기 위한 개인 제작 영상의 선정성과 비윤리성은 점차 더 큰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과연 우리 사회의 집단지성은 어디에 있을까. 어쩌면 이는 현 시대가 요청하는 질문이 아닐 수 있다. 메타버스나 NFT, 수많은 블록체인 가상화폐 프로젝트 등, 최근의 디지털 트렌드를 이끄는 일련의 화두를 둘러싼 논의의 중심엔 결국 이것이 얼마나 나의 지갑을 두둑하게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으로 귀결되는 듯하다. 물리적 현실과 가상의 세계의 경계를 넘어 언제 어디서나 모든 것을 연결한다는 초연결 사회에, 정작 사람의 연결은 각자의 크고 작은 아우성과 공허한 반향으로만 남게 될 것인가. 

박소영(중앙대학교 인문콘텐츠연구소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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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정철. (2008). 온라인 백과사전 만들기: 다음백과 2007 개편을 중심으로 한 필드 스터디. 한국사전학, (11), 65-110.
Benkler, Y. (2006). The Wealth of Networks: How Social Production Transforms Markets and Freedom. New Haven and London: Yale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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