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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회 인문페스티발 인공지능인문학 추천도서 독후감 경연대회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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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02 12:04



미래가 아닌 지금, 이곳에서

  90년대 중반 ‘장애는 개성이다’를 피력하는 목발 장애인을 만났다. 당시 나는 특수교육과 학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말이 억지스럽다고 느꼈고, 대중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논리로 장애인권운동을 펼치는 것이 위험하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로부터 27년이 흐른 지금, 그를 회상하게 된 건 「사이보그가 되다」라는 책을 읽고 나서이다. 그리고 27년이 흐르는 동안 세상의 인식은 바뀌었을까, 변화가 있다면 얼마나, 어떻게 달라졌을까, 인식 변화의 배경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진지하게 전개되었다.
 스물에 막 들어선 나이였지만 내가 특수교육을 선택한 건 장애인에 대한 인내나 사랑, 희생 따위의 고상한 정신 때문이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인간에 대한 관심과 궁금증이 많았던 나는 인간과 삶을 알고 싶어 특수교육을 선택했다. 생각하는 인간, 도구적 인간이 인간의 가치를 규정하는 존재 조건이라면, ‘생각할 능력’도 ‘기능적으로 몸을 활용할 능력’도 없는 장애인의 존재와 가치는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던 것 같다. 당시에는 ‘의존하는 인간’이나 ‘연립하는 인간’과 같은 개념을 들어본 적조차 없었으니 말이다. 어쨌든 강의실에서 시작된 특수교육학은 ‘장애는 Disability가 아니라 ‘Handicap이다’라는 명제에서 시작되었다. 기득권의 논리로 무장한 교육과정 안에서는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기에 나에게는 다소 충격적이었고, 이 논리는 내가 장애학생들과 동고동락할 수 있는 무기가 되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특수교육 현장에서 20년을 보낸 지금, 특수교사로의 자존감과 인식 수준을 고백하자면 감정노동과 육체노동에 지치고, 테크놀로지와 사회적 지원망에 대한 허무와 좌절이 반복되었던 것 같다. 대학을 갓 졸업한 현장교사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던 ‘이론과 현실은 다르다’라는 그 성급한 결론을 나는 아주 서서히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 것이다. ‘우리 아이가 학급에 적응할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 예비 입학생 부모의 질문에 나는 항상 확신에 찬 말투로 대답했었다. ‘그럼요! 어른들의 염려와 달리 아이들은 다 적응해요. 적응할 수 있도록 물리적인 환경을 구축해주고, 교육적, 심리적 지원을 해주는 것이 저희 역할이고요.’라고 말이다. 나의 대답은 내 신념이자 의지의 표명이었고 인간의 적응 능력에 대한 경험적인 믿음이었다. 그렇게 학부모의 불안을 가라앉히고 나면 나는 항상 말을 보탠다. 
  “요즘은 시대가 정말 달라졌어요. 교사들은 신경다양성 측면에서 아이들을 인정해야 한다는 인식을 지니고 있고, 일반 아이들은 오히려 우리 아이들의 특성에 쉽게 익숙해져서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어요. 아이가 겪을 일들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어요.”
  이렇게 장애학생과 그들의 부모님을 만나 함께 인식을 다지고, 마음을 다독이며 수년을 함께 한다. 장애로 인한 신체 및 감각적 어려움, 심리적 고통과 관계의 곤란함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함께 해결책을 찾아가는 과정을 겪지만, 부모로서 자식의 장애를 받아들이기란 전혀 쉽지 않다. ‘어젯밤에 아이가 말문이 틔어 또박또박 말을 하는 꿈을 꾸었다’는 지후 엄마의 수다가 예사롭지 않은 건, 장애를 가장 긍정적이고 담백하게 받아들인 사람이 지후엄마였기 때문이었다. 여하튼 장애를 제거하고 싶은 소망은 당사자와 그의 부모에게 가장 절박한 문제이기에, 장애를 제거하는 일이 아이의 특성으로 인한 Handicap을 제거하는 과정이어야 함을 설명하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그 설명을 입증해내는 일의 어려움,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현실 조건과 실력의 문제였던 것 같다.       

 이런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나에게, 장애인 당사자들이 자기 이야기를 바탕으로 기록한 책「사이보그가 되다」는 깊은 공감과 위로를 주는 책이었다. ‘장애인의 신체와 환경이 어떤 영향을 주고받으며 장애를 구성하는지’에 대한 그들의 성찰로부터 나아가 환경이 신체 그리고 정신을 어떻게 규정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좀 더 구체적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 자기 몸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로부터 작가이자 장애인권변호사로 성장한 김원영 씨의 글들을 보면서 유난히도 예민했던 휠체어 이용 학생들을 떠 올렸다. 지체장애학생들과 관계 맺는 데에는 특별한 어려움이 있었는데 그건 그들의 몸을 지지하고 이동을 돕는 신체적인 어려움이 아니라 그들이 지닌 불안과 예민함 때문이었다. 놀잇감이나 재밌는 사건을 따라 우르르 몰려다니는 초등학생들 틈에서 지체장애 학생들은 덩그러니 남겨지기 일쑤였는데 그럴 때마다 휠체어에 몸을 맡긴 아이의 눈에는 서운함과 불안함이 가득했다. 자기 몸을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경우에는 위기 대처를 할 수 없다는 불안함, 남들처럼 움직이고 싶으나 의지대로 내 몸을 움직일 수 없는 무기력감, 언제나처럼 혼자 남겨질지 모른다는 외로움에 쌓여 그들은 부모나 특수교사에게 무례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김원영 작가를 글을 보면서 나는 불안과 무기력, 외로움에 시달렸을 그의 과거를 떠올렸고 고민과 성찰, 글이라는 매개를 통해 그런 감정들을 긍정적으로 승화시킨 그의 자존감에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하지만 특정한 방식의 장애인의 삶이 다른 무수한 장애인들의 삶을 과잉 대표하는 현상을 또한 경계해야 한다는 전제에 깊이 동감하였기에 그에 대한 마음은 찬사가 아닌 존경의 마음으로 묻어두기로 했다. 더욱이 초등학교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지체장애인들은 선천적인 장애인이라 지적장애나 자폐성장애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고 말이다. 어쨌든 인간의 사고와 행동이 환경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는 장애 학생의 교육을 책임지는 주체로서 면밀하게 다루어야 할 고민이 틀림없다. 이 과정에서 중심을 잃었을 때 ‘자립’과 ‘의존’ 사이의 균형이 깨지고 그들의 문제를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하게 되거나, 특수교육 본연의 취지와 역할에 대한 감각을 잃는 순간이 찾아오는 것 같다. 
 장애가 손상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가 아니라 공간에 따라 재규정될 수 있는 개념임을 절감하는 또 다른 순간은 시각장애학생과 함께 하는 체육시간이다. 특수학급에는 다양한 장애학생들이 모여 있어 장애인체육회 강사가 진행하는 체육수업에 지적장애 및 자폐성장애, 시각장애 학생이 함께 참여한다. 이때 기능적인 수행 능력이 가장 좋은 학생은 전맹 판정을 받은 가은이다. 강사의 설명과 촉각 매체, 청각적 자극을 통해 모든 신체 활동을 따라하고 몇 번의 연습을 통해 신체와 기능을 스스로 조절하는 가은이를 보면서 그 활동 시간에 가은이의 시각이 장애로 규정될 수는 없음을 실감했다. 반면 시각 매체 위주의 수업과 활동으로 이루어지는 통합학급 교과수업 시간은 장애를 경험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일반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학생이었기에 아직 시각장애 관련 보조기기를 거의 활용하지 못했고, 점자책에도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려서 색칠하기, 오려 붙이기 활동 위주로 진행되는 교과 활동지를 할 때 나는 가은이의 장애를 실감한다. 개인을 교정하는 것으로 장애를 해결하는 대신 환경과 접근성 문제를 고려해 다른 세계를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저자들의 말에 깊이 이해하는 순간들이다. 또한 보편적인 설계를 지향하되 장애 정의의 접근성 실현을 설계의 중심에서 제외하지 않고 장애인이 지식 생산의 주체가 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는 지론에 공감하는 경험이기도 했다. 일반학급에서 사용하는 교육활동 매체들이 보편적 설계를 지향하여 구성되었다면 가은이 역시 접근성이 떨어지는 특별한 보조 수단으로 꾸역꾸역 버텨내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장애인 당사자로 느끼는 불편을 긍정적으로 반영하는 과정이 바로 지식 생산의 주체가 되는 일임을, 그리고 이런 과정을 적극적으로 주도하는 일이 특수교사로서 나의 역할임을 다시금 생각할 수 있었다.

  「사이보그가 되다」는 장애가 사라지거나 감춰진 미래가 아니라 장애인들이 세계의 일부로 살아가는 미래를 꿈꾸는 이들의 삶이자 기록이다. 청각장애인 김초엽 작가는 ‘미래가 아닌 지금 이곳에서 조금 더 잘 살아볼 수는 없을까?’를 고민한다고 했다. 행복을 유예하는 치료나 회복이 아니라 현재를 잘 살아갈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는 인식과 고민의 배경을 알 것 같았다. 감각장애로 인한 어려움, 보조기기의 장단점을 지속적으로 경험하면서 깨달은 그녀의 철학이 세상살이에 시달린 보통 사람들의 철학과도 맞닿아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손상과 취약함, 의존에 대한 우리의 근본적인 태도를 바꾸는 것, 몸과 정신의 다양성을 긍정하는 사회가 되어야 현재의 행복을 볼모로 치료에 집착하는 시행착오를 극복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장애를 부끄러워하거나 부정하지 않겠다는 자기 인식은 장애인들이 발 딛고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이루어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꿈꾼다면 우리의 삶을 덜컹거리게 만드는 장애를 무조건 극복하겠다거나 완벽하게 치료해줄 수 있다는 약속에 매달리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선언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라는 저자의 말이 얼마나 많은 자기 다짐 속에서 나왔을까 생각하니 그가 경험했을 척박한 현실이 그려진다. 그는 장애를 극복한 것이 아니라 장애를 극복하라고 종용하는 세상의 인식을 극복한 것이다.
 서로의 불안정함, 의존성, 연약함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세계로 나가려면, 인간의 의존성을 긍정하고 더 잘 의존할 수 있도록 만드는 기술이 필요하다. 특수교사로 살아온 시간이 쌓일수록 가중되는 버거움은 장애로 인한 불안정함과 의존성, 연약함이 내가 견딜 수 있는 역치를 벗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더 잘 의존할 수 있는 사회구조와 지원망, 기술의 결합을 제대로 엮어내지 못했던 제도와 역량의 한계 속에서 답을 찾을 필요가 있다. 특히 우리의 존재 조건에 기술문명이 깊이 결합되어 있는 포스트휴먼의 시대에는 이러한 문제인식이 더욱 절실하다. 타자를 돕고, 타자로서 돕고, 타자를 돕는 일을 도우며 사는 돌봄 사회가 원활하게 순환하기 위해서 장애 정의와 접근성의 문제가 기술의 핵심 가치에 포함되기를, 장애학생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나 역시 지식생산의 주체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열망해본다.

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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