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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회 인문페스티발 인공지능인문학 추천도서 독후감 경연대회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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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10 16:13
 

사이버 렘브란트 시대를 위한 유물론

지난 2022년 9월, 미국에서는 예술사적인 대전환이라 부를 만한 일이 발생했다. 콜로라도에서 열린 주립박람회 미술대회의 디지털 아트 부문에서 인공지능(AI) ‘미드저니’를 통해 생성된 작품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이 사람이 그린 작품들을 누르고 당당히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1996년 체스 인공지능 ‘딥 블루’가 체스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를 꺾음으로써 세간에 충격을 주었던 인공지능의 인간 대체 흐름이 어느덧 예술의 발목까지 차오른 것이다.

하지만 회화 분야가 인공지능에게 정복되었다는 소식은 체스나 바둑이 인공지능에게 함락된 것과는 또 다른 울림을 준다. 체스나 바둑은 어디까지나 경우의 수를 계산하는 능력과 깊이 연루되어 있고, 따라서 인간보다 월등한 계산 능력을 지닌 인공지능이 인간을 쓰러뜨리는 일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회화는 숫자로 환원되지 않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분야라는 인식이 널리 수용되어 왔으며, 그런 회화가 인공지능에게 정복되었다는 것은 ‘이제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인간만의 영역이 남아있긴 한 것인가’에 대한 공포를 야기한다.

이러한 공포의 본질은 다음과 같다. 예술은 흔히 재료에 예술가의 심상(心想)을 입혀서 완성되는 것이라 여겨진다. 하지만 그림 인공지능에게는 심상이랄 것이 없다. 만약 그림 인공지능이 현재보다 더욱 발전하여 예술가의 심상이 들어간 예술 작품이 인공지능이 무작위로 생성한 작품보다 전혀 나을 것이 없게 된다면, 예술가의 심상이 가지는 가치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그림 인공지능의 진보는 예술가의 심상, 더 나아가 인간 관념의 존재론적 의미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고 볼 수 있다. 

기존의 관점에 따르자면 이에 대한 대안은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다. 하나는 기존의 관념론을 고수하여 ‘체스, 바둑, 회화도 무너졌지만 인간에겐 아직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 남아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철저한 유물론적 관점에 입각하여 인간의 관념이란 단지 뇌의 전기적 신호에 지나지 않는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이 관점에 의하자면 인공지능이 진보함으로써 인간의 관념이 가치가 없어지게 된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은 단지 원래부터 특별하지 않았던 인간의 관념을 폭로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두 가지 대안 모두 현대를 살아가는 인류에게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전자의 경우 단지 차례대로 쓰러져가는 도미노에 찰나의 순간을 포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인공지능은 현재 회화뿐만 아니라 음악, 문학에서도 인간을 대체해 가고 있으며 그 끝이 어디일지, 혹은 끝이 있긴 한 것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후자의 경우는 인간 관념에 대한 변호 자체를 포기하는 것으로 지극히 자해적인 논리다. 이를테면 전자는 장기적으로 가능하지 않고, 후자는 수용할 수 없는 것이다. 

바야흐로 피조물인 인공지능이 창조자인 인간에게 한 수 가르치는 시대가 도래했다. 창조와 피조의 경계마저도 불분명해지는 이 시대에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관념론과 유물론은 그 실효성을 상실하고 있다. 새롭고 대안적인 존재론이 필요한 시대인 것이다. 문규민 교수가 저술한 『신유물론 입문: 새로운 물질성과 횡단성』은 그 대안적인 존재론으로서 ‘신유물론’을 소개하고 있다.

문규민 교수는 우선 신유물론이라는 관념 체계가 단일하고 일관된 학문적 배경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지적한다. 저자에 따르면 신유물론은 새로운 물질성과 횡단성이라는 공약수로 구성되는 학자군(群)에 지나지 않는다. 신유물론으로 규정되는 학자들 사이에 공감대가 상당히 한정적이어서 단일한 학파라고 부르기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다만 기성의 유물론과 사회구성주의의 주장들을 부분적으로 계승하고, 또 부분적으로 거부한다는 차원에서 신유물론이라 불릴 따름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존재의 변화를 질료인, 형상인, 작용인, 목적인의 4원인으로 분류한 바 있다. 여기서 4원인은 존재론적으로 구분할 수 있음이 전제된다. 이것이 이른바 형이상학적 개체주의다. 하지만 오늘날에 이르러 과학적 발견, 특히 양자역학의 발달로 인해 4원인의 구분가능성은 지속적으로 의문시 되어왔다. 질료인인 물질이 그 자체로 작용인이 될 수 있다는 과학적 증거들이 누적되기 시작한 것이다. 작용인이 되는 질료인, 이것이 바로 신유물론이 말하는 새로운 물질성인 것이다.

신유물론은 이러한 새로운 물질성의 함의를 사회구성주의의 논의에 접목한다. 사회구성주의는 물질조차도 사회적으로 구성된 결과물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반면 신유물론은 물질이 스스로 사회적 의미를 구성하는 담론적 작용을 한다고 주장한다. 물질은 자신의 물질성과 담론성 사이를 횡단한다. 즉, 사회구성주의가 사회의 구성적 힘이 물질과 관념에 작용하는 양상에 주목한다면, 신유물론은 물질이 그 자체의 횡단성을 통해 사회적 담론을 가지게 되는 반대 방향의 가능성을 개진하는 것이다. 

『신유물론 입문: 새로운 물질성과 횡단성』이 소개하는 새로운 물질성과 횡단성은 서두에서 제기된 그림 인공지능의 문제에 어떻게 접목될 수 있는가? 신유물론은 이 문제에 대해서 예술가가 아닌 재료에 주목할 것을 요구한다. 재료에 예술가의 심상을 주입하여 예술 작품이 완성된다는 전통적인 관점에 따르면, 예술 작품에 사용되는 재료들은 단지 작용인을 기다리는 질료인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신유물론이 제기하는 새로운 물질성의 관점에 따라 이 문제에 접근하면 전혀 새로운 의미가 도출된다. 이를테면 재료는 예술가의 심상이 주입되어야 비로소 예술 작품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재료 그 자체가 본연의 물질성과 예술적 담론성 사이를 횡단하고 있는 것이다. 

때로는 미술관에 걸려 있는 풍경화에 담긴 석양보다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는 석양이 더 아름다울 수 있다. 단지 후자는 지금까진 ‘아름다운 풍경’이지 ‘예술 작품’으로 칭해지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이 어째서 예술이 될 수 없단 말인가? 물론 예술가가 아닌 사람들은 자신이 포착한 아름다운 것들을 표현할 기술적 능력이 부족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기술적 능력이 예술과 예술이 아닌 것을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면 인공지능이 그 기술적 능력을 보완하는 도구가 아니라고 주장할 근거는 없을 것이다. 예술과 예술이 아닌 것의 경계를 기술적 능력의 유무로 잡는다면 당초에 이 문제의 핵심으로 지적된, 예술가의 심상이 지니는 의미란 구제할 수 없는 심연 속으로 침잠해버릴 것이다. 

신유물론에 입각하면 이 문제에 대한 새로운 활로가 트인다. 예술성은 예술가가 전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재료에 이미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예술가가 예술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예술가가 가지는 차별화된 능력은 무엇인가? 신유물론적 관점으로 재해석하자면 예술가란 재료가 지니는 담론적 순간을 포착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캔버스 위에 그림을 그리는 것도, 감동적인 순간을 사진으로 담는 것도, 그리고 인공지능이 생성한 그림들 가운데서 가장 아름다워 보이는 그림을 선택하는 것도 재료가 지닌 담론적 순간을 포착하는 행동이라는 점에선 모두 예술이라 부를 수 있다. 한편 누구나 담론적 순간을 포착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포착된 아름다움들 사이에 우열이 존재할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아름다움이란 구성적 힘의 산물이긴 하지만 보편적으로 더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순간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존재할 수 있으며, 예술가의 심상이 지니는 의미란 일반인들보다 더 우월한 아름다움을 포착할 수 있는 능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들릴 수 있는 이야기겠지만 물질에 초점을 맞추는 신유물론이 그림 인공지능의 가파른 발전으로 위기에 처한 예술가의 심상이라는 관념의 구원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글은 『신유물론 입문: 새로운 물질성과 횡단성』에서 제시된 새로운 물질성과 횡단성의 개념을 최근 화제가 되었던 그림 인공지능의 발전이라는 주제에 접목해서 그 함의와 잠재성에 대해 살펴보았다. 물론 신유물론의 가치란 인공지능이 불러일으키는 인간의 존재론적 위기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이 책에서 제시되듯 인공지능뿐만 아니라 팬데믹, 핵 확산, 인간안보 등 다양한 주제에서 ‘불온한 물질’은 인간을 위협하고 있으며, 신유물론은 이 위기의 시대를 헤쳐 나가게끔 도와줄 길잡이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경남 창원시 박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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