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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사회의 발전과 인공지능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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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1 11:11

 기술전문가는 딥러닝, 뉴로모픽 반도체 등 인공지능 기술의 도래와 발전에 관하여 외치고, 사업전문가는 인공지능을 구현한 상품을 내놓으면 크게 성공한다고 외치고, 법률전문가는 고위험군 인공지능을 규제해야 한다고 외친다. 그러나 왜 인공지능이 우리에게 왔는지 산업과 시장, 문화적 배경을 알려주진 않는다. 왜 지금 인공지능일까.  
  서구사상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플라톤은 동굴의 비유를 통해 동굴 속 죄수들의 세상이 가짜이고 동굴밖 진짜 세상인 이데아를 찾아야 한다면서 인간의 삶을 동굴속 죄수의 삶에 비유했다. 중세에 와서는 이데아의 자리를 신이 자리했다. 인간 세상은 진짜인 신의 세상으로 가기 위한 가짜 세상에 불과했다. 독일 철학자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면서 그동안 가짜이던 인간 세상이 진짜가 되었다. 우리 인간은 이 진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하게 되었다. 종교개혁가 캘빈은 생업에 충실하면서 신을 믿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자본주의의 시작이다. 
   옛날을 기억해 보라. 물건이 부족하고 불량이 넘치던 때가 있었다. 산업사회의 미덕은 좋은 품질의 물건을 많이 생산해 판매하는 것이었고 산업화는 우리 삶을 풍족하게 만들었다. 불량이 줄었지만 과잉생산은 재고로 쌓였다. 재고를 팔기 위해 허위 과장 광고, 불완전 판매 등 과잉 마케팅이 활개를 쳤다. 기업이 빅데이터를 활용하면서 고객의 수요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고객이 원하는 시점에 고객이 원하는 장소에 고객이 원하는 방법으로 상품과 서비스를 공급할 수 있다. 품질이 높고 안전한 생필품은 소비자들의 수요에 따라 플랫폼을 통해 가격 비교 등을 통해 가장 싼 값에 공급되었다.  
  이제 더 이상 팔 것이 없는 세상이 되었다. 기업은 무엇을 팔 것인가. 진짜보다 더 진짜같은 가짜들이 나타났다. 가짜라고 나쁘다고 볼 순 없다.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그의 저서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에서 현실에 실제 있는 사물을 그대로 베낀 이미지 또는 기호가 현실에 있는 사물을 대체하는 현상을 시뮬라시옹이라고 했다. 그런데 실제의 사물이 없어지거나 사라지면 베낀 이미지가 더 진짜 같은 역할을 한다. 시뮬라크르는 현실에 없는 사물이지만 있는 것처럼 가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시뮬라크르는 현실에 없는 것이므로 그 자체로 고유의 가치를 가지고 현실을 지배한다. 생쥐는 질병을 옮기는 작은 짐승에 불과하지만 생쥐를 모방한 미키마우스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사업 아이템이다. 변기는 불결하지만 마르셀 뒤샹이 전시회에 출품하면서 ‘샘’이라는 이름의 예술작품이 되었다. 진짜보다 가짜가 성공한 사례다. 
  우리가 살아가려면 중요한 것이 음식, 옷, 집이다. 옛날에는 우리가 직접 채소, 나물을 재배하거나 가축을 키워 음식을 만들었고, 목화에서 나온 솜으로 옷도 만들었다. 흙을 개어 집도 만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그 모든 것을 돈으로 산다. 돈이 현실의 음식, 옷, 집을 지배하고 있다. 종이에 불과한 돈이 중요하듯이 모방된 이미지, 가장된 이미지가 현실을 다스린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대부분은 옷을 직접 만들지 못하고, 집을 직접 짓지 못하고, 농사를 직접 짓지 못한다. 그렇다고 돈을 충분히 가질 수도 없다. 그 간극에서 인간의 원초적인 불안이 나온다. 
  요즘 불록체인 NFT가 인기다. 방귀깨나 뀐다는 사람들이 모두 NFT를 외치고 다니는데, 블록체인도 어렵고 NFT까지 붙으니 더욱 어렵고 불안하다. 실제 공간에 존재하는 작품을 디지털 자산으로 만든, 대체할 수 없는 토큰, NFT는 시뮬라크르인가? 아니면 시뮬라시옹인가? 메타버스 안에서 이루어지는 거래에서도 NFT가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모든 것의 복제가 가능한 디지털 공간에서 위변조할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마이크 윈켈만이 본명인 디지털 아티스트 비플이 5천 일 동안 매일 만든 작품을 모아 놓은 창작물의 NFT는 경매에서 약 830억 원에 달하는 6,930만 달러에 팔렸다. 또 테슬라의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의 아내이자 가수 그라임스는 2021년 3월 NFT 기술이 적용된 ‘워 님프’라는 제목의 디지털 그림 컬렉션 열 점을 온라인 경매에 부쳐, 20분만에 65억 원인 580만 달러에 낙찰되었다. 트위터 창업자 잭 도시가 작성한 첫 트윗은 약 35억 원인 290만 달러에 낙찰되었다. 온라인 공간에는 많은 디지털 자산이 있다. 글, 사진, 그림, 캐릭터, 영화, 짧은 동영상 등 가치가 있다면 모두 디지털 자산이다. NFT는 각 디지털 자산에 별도의 고유한 코드를 넣어 위조와 변조가 어렵게 만든다. 만약 누가 그 NFT를 복제한다면 복제품인지 아닌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대체할 수 없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천 원을 빌리는데, 지폐로 받는다. 갚을 때는 그 지폐를 돌려줄 필요가 없다. 다른 천 원짜리 지폐도 좋고 500원짜리 동전 두 개를 돌려주어도 된다. 이것은 대체할 수 있다는 뜻이다. 축구 경기를 보러 갔는데 손흥민 선수를 만났다. 꿈만 같다. 손흥민 선수가 축구공에 직접 사인을 해 선물로 주었다. 그 축구공은 하나만 존재하므로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원본과 복사본을 구별하기 어렵다. 무한 복제가 가능하다. 그러나 원본을 블록체인에 등록하면 원본의 소유자가 누구인지 블록체인이 증명해준다. 복사본이 아무리 많이 돌아다녀도 원본의 소유자가 누구인지 증명되기에 소유자는 복사본을 가진 자에게 저작권 침해를 주장하며 보상을 청구할 수 있다. 이것이 NFT다. NFT를 만들어주는 회사들도 있다. 이 회사들이 운영하는 사이트에 파일을 올리면 블록체인에 등록해 NFT로 만들어준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비플이나 그라임스, 잭 도시처럼 많은 돈을 벌 수 있으리라 착각하면 안 된다. 
  무엇이 원본이고 무엇이 원본을 복제한 사본일까? 우리 인간도 최초의 인간 유전자를 가진 조상을 원본으로 복제한 사본일지 모른다. 인간을 원본으로 한 인공지능은 복제한 사본에 그칠까? 아니면 인간을 넘어설까?
  독일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아우라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 아우라는 원본만이 가질 수 있는, 그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신비하고 영적인 분위기를 말한다. 마크 로스코의 그림을 보자. 전시회를 찾은 사람은 큰 화면에 한두 가지 컬러로 가득 채운 그림을 보고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스마트폰으로 봐도 눈물이 날까? 쉽지 않아 보인다. 중세 종교화에서는 예수, 성모마리아의 얼굴 뒤에 후광을 넣어 아우라를 표시했고 경건한 신앙의 대상으로 표현되었다. 근세를 넘으면서 종교적 색채는 줄고 전시된 그림에서 나오는 특별한 순간의 신비하고 은은하게 드러난 경험과 감동을 아우라라고 느낀다. 기술 복제 시대에는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을 열면 수많은 복제를 거친 사본들이 돌아다닌다. 아우라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다빈치의 모나리자는 교과서나 각종 교양서적에 들어있고 디지털로 복제되어 인터넷을 돌아다니고 있다. 책받침에 프린트된 모나리자에 감동하는가? 쉽지 않다. 복제된 사본을 많이 접하면 실제 원본을 보더라도 감동이 적을 수 있다. 누군가 말할지도 모른다. “같은 그림이 우리 집에도 있는데 그게 더 예뻐.” 기술 복제 시대에 복제한 사본이 원본과 다른 새로운 아우라를 창조할 수 없을까? 가능하다. 원본의 복제에 그치지 않고 대중화되고 새로운 가치를 더할 수 있을 때 또 다른 아우라가 만들어질 수 있다. 그것이 장 보드리야르가 말한 시뮬라크르일 수 있다. 창작의 원본은 하나여야만 할까? 그것도 아니다. 앤디 워홀은 중국의 마오쩌둥, 마릴린 먼로, 통조림 캔 등 다양한 대상을 복제하고 다양한 컬러를 입혀 예술로 승화시켰다. 단순한 복제를 넘어서고, 원본을 넘어섰다. 새로운 아우라다. 이를 청출어람이라고 해야 할까. 무엇이 원본인지 따지는 시대가 저물고 있다. 
  우리는 오래전 오프라인을 넘어 온라인으로, 스마프폰의 등장으로 모바일로 옮겨왔다. 이제는 가상공간 메타버스를 이야기한다. 오프라인이 진짜 세상이라면 온라인, 모바일, 메타버스는 진짜를 베껴놓은 가짜가 아닌가. 가짜에서 원본의 아우라를 뛰어넘는 새로운 아우라를 찾는 것, 그것이 인공지능을 낳은 시대다. 인공지능은 가짜의 아우라를 만드는 기술이 되고 있다. 

법무법인 태평양 이상직 변호사 (‘나는 인공지능을 변호한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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