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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규범윤리학」 이해의 첫 단추: ‘윤리’에 대한 오해 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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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19 20:02

‘인공지능 규범윤리학’을 이해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윤리(ethics)’의 개념을 올바르게 파악하는 것이다. 인간은 늘 윤리와 함께 살아간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윤리의 본질에 대해 확실하게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이 개념을 곡해하여 불편하게 받아들이거나 혹은 과소평가하는 모습을 종종 목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윤리학자의 시선에서 윤리에 대한 사람들의 잘못된 인식은 심히 염려가 된다. 그 같은 오해는 윤리와 연관된 인간 삶의 본질을 간과하게 만들며, 나아가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가 인간으로서 영위할 수 있는 좋은 삶을 누리지 못하도록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아래에서는 일상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윤리를 둘러싼 오해들에 대해 답변해보려 한다.

1. 윤리는 우연의 산물이다? 

윤리적 삶은 넓은 의미에서 ‘도덕적 숙고와 가치평가를 수행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삶’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인간에게는 특별한 욕구가 있다. 인간의 욕구는 삶에서 무엇이 옳은지, 좋은지, 중요한지 등에 대해 숙고하고 가치평가를 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부, 명예, 사랑, 정의, 영혼의 성숙(행복) 등에 관한 바람이 그런 욕구에 해당한다. 추구하는 대상이 무엇인가에 따라 개인의 고유한 정체성이 드러난다. 가치평가는 이따금 비의도적으로 수행된다. 많은 경우 사람들은 현재의 바람이 일정한 가치평가에 따른 결과물임을 자각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어떤 이들은 자신의 삶이 윤리와 무관하다고 착각하며, 윤리를 그저 인간의 필요에 의해 우연히 발생한 산물 정도로 간주하고 과소평가한다. 하지만 원초적 욕구에만 충실해서 살아가는 동물들과 달리, 인간은 인생의 대부분을 가치평가된 욕구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윤리의 차원에 서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차원은 우리가 인간으로서 본질적 삶을 영위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즉, 우리는 결코 이러한 차원에 우연적으로나 선택적으로 서는 것이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의 삶은 윤리와 필연적으로 연관된다.

2. 윤리는 상대적이다? 

윤리는 옛 그리스어 에토스(ethos: 어떤 사회나 민족을 특징짓는 특유의 관습이나 습관)로부터 유래된 말이다. 어원에서 암시되듯이 현상으로서 나타나는 윤리는 일정한 사회·문화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과 그들이 처한 역사적 배경, 지리적 환경 등에 따라 다양한 모습의 사회관습 및 규범으로 존재한다. 이 때문에 어떤 이들은 윤리란 언제나 상대적인 것이라고 단정 짓는다. 그러나 윤리적 현상과 이것들을 발생시킨 ‘윤리적 근본 원리’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많은 경우, 전혀 달라 보이는 윤리적 현상들 이면에 ‘인간 사회의 안녕 및 발전의 추구’와 같은 인류의 보편 원칙이 자리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여러 문화들이 서로 만나 자연스레 섞이기도 하고 충돌하기도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러한 때에 각 사회·문화의 윤리적 현상을 보이는 대로만 받아들이면서, 그 안에 담긴 공통의 가치나 원리를 놓친다면 가치 갈등이 심화될 수 있다. 갈등을 예방하고 해소하려면 다양한 윤리적 현상들에 대한 가치평가의 기준이 될 수 있는 근본 원리로서의 윤리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3. 윤리는 강제적이고 금욕적이다? 

윤리는 법과는 성격이 다르다. 법 규범을 위반했을 때 우리는 물리적, 신체적 제약을 받게 된다. 그러나 윤리를 위반한 경우에는 타인으로부터 도덕적 비난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그 이상의 강제적 제재를 받지 않는다. 윤리란 개인의 자율적인 판단과 결정에 의해서 자발적으로 준수되기를 요청받는 근본 규범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윤리를 개인의 자유를 가로막는 제약 혹은 강제와 동일시한다. 이는 자유의 의미를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로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과 다른 자연 존재와의 차이에 주목해보자. 동물이나 식물은 일생을 자연으로부터 부여받은 운동 법칙에 종속되어 살아간다. 즉, 그들은 오직 원초적 욕구를 채우는 일에 집중하며 마치 기계처럼 움직인다. 반면에 인간은 욕구를 스스로 조정하고 통제하면서 자신의 행위를 바람직하게 지도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 이는 인간의 내면에 욕구를 다스릴 수 있는 실천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인간이 욕구를 다스려 윤리적으로 살 것인가 말 것인가는 그의 실천 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문제다. 이런 점에서 인간은 분명 자유롭다. 또한, 윤리적 삶은 그 자체로 자유로운 삶이라 할 수 있다.

4. 윤리는 불이익을 가져다준다? 

좁은 의미의 윤리적 삶은 ‘인간이 그가 속한 사회의 관습이나 규범을 잘 따르며 살아가는 삶’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윤리적으로 살면 이득보다는 손해를 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홉스식의 ‘자연 상태’를 생각해보자. 행위 규칙이 완전히 부재한 상태에서 모두가 자기 이득만 추구하는 것을 허용한다면, 힘의 논리와 무한 경쟁이 발생하고 끝내 전쟁이라는 비극적 결말이 초래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윤리적 삶은 인간에게 생명과 안전 보장이라는 최소한의 이득을 보장한다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윤리는 인간에게 더 큰 이익을 선사할 수 있다. 앞서 말했듯이 인간에게는 특별한 욕구가 있는데, 이것의 실현이 인간에게는 곧 ‘좋은 삶’이다. 인간의 욕구는 대개 무리 지어 살기에 발생한다. 가령, 무인도에 갇힌 로빈슨 크루소에게 부, 명예, 정의, 사랑 등은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좋은 삶을 영위하는 데 타인(사회)은 필요조건이다. 한편, 개성이 다른 인간들의 욕구는 언제나 상충 될 위험이 있다. 상호 욕구를 조화롭게 실현하려면 ‘무엇을 행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등의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해야 한다. 윤리는 사회를 이루는 개인들의 도덕적 숙고와 합의, 실천 속에서 확립된 결과물이다. 그러므로 윤리란 무리 지어 살아가는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것이다.

이연희 (경상국립대 교육연구원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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