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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AI시대의 고등교육 | 조지프 E. 아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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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26 16:55

인공지능의 발달은 필연적으로 교육의 본질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근대 교육체계가 자리 잡은 이후 학교와 학습법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읽기(reading), 쓰기(writing), 셈하기(arithmetic)의 3R 능력 위주로 의무교육과정이 만들어졌고, 고등교육은 해당 분야의 전문지식과 기술을 연마하는 경로로 정착했다. 하지만 알파고와 딥러닝으로 대표되는 인공지능의 인지기능은 지금까지 고등교육의 목표이자 대상이던 지식과 기술이 이제 모두 손안의 기계에 들어 있는 세상임을 알려주고 있다. 인공지능은 많은 영역에서 인간 최고수를 압도하는 능력을 과시하며 인간을 왜소하게 만들고, 교육의 새로운 방향과 내용에 대한 질문을 불러왔다.  

언어학자이자 미국 보스턴의 노스이스턴대 총장인 조지프 아운(Joseph Aoun)의 <AI시대의 고등교육>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지다. 이 책은 이세돌-알파고 대국이 세간에 충격을 던진 그 이듬해인 2017년 미국에서 <로봇 프루프(Robot-Proof)>를 원제로, ‘인공지능시대의 고등교육’을 부제로 매사추세츠공대(MIT) 출판부에서 출판된 책이다. 로봇에 밀려나지 않을 ‘항(抗)로봇’ 고등교육이 무엇일지를 탐색한 내용이다. 

직무 수행에 필요한 전문적 지식과 역량을 길러내는 게 그동안 고등교육의 주된 사명이었다. 하지만, 자동화와 인공지능 기술의 발달은 정형화할 수 있는 직무 대부분이 더는 사람의 일이 아님을 입증해가고 있다. 미래엔 정형화할 수 없는 직무, 즉 매뉴얼로 처리할 수 없고 매번 고유성을 갖는 직무만 사람의 일이 되리라는 게 직업의 미래에 관한 일관된 전망이다. 저자는 직업에서 로봇과 자동화의 위험을 피해갈 수 있는 독창적인 ‘로봇 프루프 교육’을 “노동자가 아닌 창조자를 키워내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인공지능 시대의 교육은 ‘창의성’이 핵심이라고 회자되어온 터라 이 규정 자체는 새롭지 않다. 저자의 주장이 가치 있는 대목은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과 전략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로봇 프루프 교육’을 위해서 ‘인간학(Humanics)’이라는 개념을 주장한다. 인간학의 목적은 인간 고유의 특징인 창의성과 정신적 유연성 함양이다. ‘로봇 프루프 교육’인 ‘인간학’은 과거의 문해력 교육과 다른 새로운 리터러시 교육을 의미한다. 과거 리터러시는 중세 시기 라틴어를 읽고 쓰는 능력으로, 근대 이후엔 모국어를 읽고 쓸 수 있어 시민사회의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능력으로 규정되어 왔고 교육기관은 시대에 걸맞은 리터러시를 학생들이 함양토록 하는 곳이었다. 저자는 대학 교육에서 기존의 문해력에 이어 새로 추가할 세 가지의 리터러시를 제시한다. 데이터 문해력(data literacy), 기술적 문해력(technological literacy), 인간 문해력(human literacy)이 그것이다. 빅데이터를 읽어내고 알고리즘 및 디지털 기술 구조를 파악하는 능력인, 데이터와 기술 문해력은 4차산업혁명 시대의 낯익은 개념이지만 인간 문해력이 새롭다.

저자에 따르면 인간 문해력은 인간과 문화를 읽어내는 능력이다. 그것은 인문학, 의사소통, 디자인 교육으로 함양되며, 학생들이 사회 환경에서 제 역할을 하는데 필요한 능력이다. 세 가지 새로운 리터러시가 구체적인 학습을 필요로 하는 역량이라면, 이와 함께 새로운 태도 또한 요구된다. 저자는 이를 세상을 대하는 사고방식인 인지능력의 변화라고 말한다. 환경에서 만나는 다양하고 상이한 기능들 속에서 통합적이고 총체적 관점을 갖는 ‘시스템적 사고’가 그 첫 번째이다. 그 뒤를 이어 기업가정신, 문화적 민첩성, 비판적 사고가 각각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인지능력으로 제시되었다.

대학 교육으로 대표되는 고등교육은 인공지능 시대에 위기를 맞고 있다. 하지만 이는 기존 대학 교육의 위기를 의미할 뿐이며, 인공지능 시대에 고등교육의 가치와 필요성은 오히려 강조되고 있다. 미래가 불확실하고 불안할수록 그에 대한 적응 수요는 높아진다. 사람이 불안한 미래에 적응하고 준비하는 최고의 방법은 교육이다. 인공지능 시대에 고등교육은 역설적 상황과 직면해있다. 사람의 역량을 능가하는 인공지능으로 인해 기존의 고등교육에 대한 불신과 불안은 어느 때보다 높아진 것이다. 하지만 로봇의 미래에 대한 대응책으로서, 새로운 고등교육에 대한 수요는 어느 때보다 커졌다. 

기존 고등교육은 사회변화와 기술 발전을 추동하는 동력 역할을 했다. 대학은 사회적으로는 지식을 창출하고 전수하는 기술 진보의 엔진 역할을 했고, 개인적 차원에서는 발달하는 기술 변화에 맞춰 개인들의 이력을 업그레이드시켜 삶의 질을 높이는 기회를 제공했다. 하지만 자동화 기술과 인공지능의 발달에 따라 기존의 고등교육이 담당해온 지식 창출과 전수의 기능이 위협당하고 있다. 하지만 역사를 돌아보면, 기술 변화와 사회 변동의 국면마다 사람들은 새로운 교육을 통해서 환경에 적응하고 과거에 없던 직무를 개발해내곤 했다.

방직기 도입으로 밀려난 노동자가 기계를 조작하는 방법을 배워 고임금 고숙련 노동자와 관리자로 변모한 것처럼, 교육은 변화를 수용해 새 질서에 적응하는 가장 탁월한 도구다. 저자는 “이러한 과거의 역학이 똑똑한 기계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라고 단언한다. 기술이 폭발적으로 발전하기 때문에 교육에 대한 의존도가 과거보다 오히려 더 커지고 있으며, 대학은 이러한 학습 요구를 충족시킬 의무가 있다.

미래는 지금까지와 비교할 수 없이 광범하고 빠른 변화가 지속되고 가속화하는 사회다. 새뮤얼 아브스만이 <지식의 반감기>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미래로 갈수록 지식의 유효기간은 짧아진다. 지식정보사회에선 갈수록 더 많은 사람이 더욱 방대한 지식을 끊임없이 생산하기 때문이다. 대학 졸업장과 전문직 자격증의 유효기간도 짧아진다. 과거엔 4년간 대학 교육으로 획득한 지식과 자격으로 개인의 일생에 요구되는 기본적인 직무 역량과 자격을 포괄할 수 있었지만, 지식의 반감기 환경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대학이라는 고등교육 기관은 학생들에게 4년간 학업의 성과물로 졸업장을 주는 곳이 아닌 생애주기 내내 평생 학습을 제공하여 학생들에게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역량과 태도를 길러주는 곳으로 바뀌어야 한다.

저자가 미래의 새로운 문해력과 태도로 제시하는 주요 개념은 창의성과 비판적 사고이다. 이것이 고등교육의 핵심 목표라는 데 다른 의견이 없지만, 창의성과 비판적 사고의 함양은 미래 핵심 역량이라고 강조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창의성과 비판적 사고는 인간 삶을 개선하고 역사를 발전시켜온 원동력이지만, 두 가지 모두 기존의 체제에서는 무시되고 억눌려 있는 것이 현실이다. 창의성은 효율성 위주의 산업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칫 효율성을 떨어뜨릴 수 있는 비합리적인 행위이고, 비판적 사고는 기존의 권위와 가치체계를 흔들고 붕괴한다는 점에서 기득권에게 지극히 불편하고 불안한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창의성과 비판적 사고가 미래 고등교육의 핵심이라며 제시한 것은 타당하지만, 교육과 사회 현실에서 ‘실제로는 장려되지 않는’ 점을 고려한다면 좀 더 전복적이고 도전적인 처방전이 필요하다. 자신이 일군 기업인 애플컴퓨터에서 쫓겨났다가 1997년 회장으로 복귀한 스티브 잡스가 복귀 직후 역점적으로 진행한 장기프로젝트는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라는 광고캠페인이었다. 만델라, 에디슨, 다윈, 간디, 알리 등 세상을 움직인 창의적 인물들을 소개하며 잡스는 “여기 미친 사람들이 있다. 부적응자들, 반항아들, 문제아들, 우리 사회의 틀에 들어맞지 않는 사람들, 사물을 다르게 보는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창의성을 실제로는 배척하는 사회에서 진정 창의적이기 위해서는 부적응자, 반항아, 미치광이임을 감수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함을 깨닫게 한다. 

구본권 (<한겨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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