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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기계의 결합: 하이브리드(hybrid) 존재, 사이보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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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05 12:21

산업혁명 이래 기계의 발전은 산업 전 분야로 확산하였으며, 그 급속한 발전 속도는 이전 시대와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폭발적이었다. 증기엔진의 성능은 빠르게 발전하였고, 이전의 축력, 수력, 풍력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생산력을 발휘하였다. 예를 들어 1712년 뉴커먼이 광산의 배수펌프에 사용한 최초의 증기엔진은 5.5마력에 불과했지만 1912년에 건조된 여객선 타이타닉호의 엔진은 최대출력이 59,000마력에 이른다는 사실에서 근대의 기계 발전 속도를 가늠할 수 있다. 본격화된 기계의 확산은 단순히 산업부문만이 아닌 사회 전체의 모습을 변화시켰다는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인간은 노동과정 중에서 육체의 힘이 필요한 모든 곳에 기계를 투입하기 시작했고, 기계는 인간의 육체적 한계를 훨씬 뛰어넘는 힘을 발휘하였다. 이제 인간은 육체노동으로부터 점차 해방되기 시작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에도 여전히 인간은 기계와 엄격히 구분되었다. 기계 때문에 일자리를 잃거나, 기계를 작동시키거나, 기계를 보조하거나, 기계를 파괴하거나 상관없이, 인간은 항상 비기계적 존재였으며 기계는 비인간적 존재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러나 오늘날 기계와 인간의 절대적 구분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인간과 기계의 결합은 19세기 말부터 과학소설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인간과 기계의 결합은 인간 능력을 초월하는 우월적 능력의 소유자로서 상상되어 현실적 한계를 극복하는 전형적인 인간의 로망스적 기대와 환상의 가공물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인간과 기계의 결합은 낯선 일도 소설의 가공도 아닌 현실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어쩌면 순수한 유기적 인간보다 생체칩을 이식하거나, 쟝 보드리야르가 말한, 신체의 한계를 보완하는 ‘보철’(les prothses) 기구를 지닌 인간들이 더 많은 세상이 생각보다 일찍 올지도 모른다. 신체적으로든 지적으로든 더 강한 인간이 되고자 하는 열망 또는 욕망이 인간과 기계의 결합을 더욱 촉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사이보그(cyborg)는 인간과 기계의 결합을 상징하는 대표적 용어이다. 사이보그의 사전적 의미는 ‘생물과 기계장치의 결합체’이다. 사이보그는 인간과 기계의 결합체를 연구하는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와 생물체, 유기체를 의미하는 ‘오가니즘’(organism)이라는 두 단어를 합친 것으로 1960년 맨프레드 클라인즈(Manfred Clynes)와 네이선 클라인(Nathan Kline)의 공저 󰡔사이보그와 우주󰡕를 통해 최초로 도입되었다. 그들이 말하는 사이보그는 우주를 여행하기에 적합하도록 개조된 인체로서 유기체와 기계, 생물과 무생물의 합성물을 의미한다. 

과학사학자이자 페미니스트 연구가 도나 해러웨이(Donna J. Haraway)는 사이보그 개념을 새롭게 제시한다. 그녀는 20세기 말 인간 사회와 자연 간의 분리적 사유에 반대하며 진리와 더불어 자연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형성된다는 생각을 지지하면서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사이보그’라는 용어를 통해 설명한다. 그녀에 따르면, 사이보그는 유기체와 기계로 구성된 하이브리드 존재이다. 해러웨이가 말하였던 사이보그는 더 이상 인간/비인간 또는 인간/동물, 인간/사물 등의 구분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전의 범주로 설명할 경우에는, 잡종적인, 곧 하이브리드적인 실체이다. 하이브리드 세계를 강조하는 것은 주체/객체로 대표되는 서구 근대의 이분법적 구분들이 현실 세계에서 전혀 유효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라, 그러한 구분이 더는 효과적으로 작용할 수 없는 실체와 현상들이 현대 사회에 나타나고 있음에 주목하는 것이다. 인간 사회를 비롯한 지구 행성 전체에게까지 심각한 위협을 낳고 있는 현대의 각종 재난 상황은 새로운 사유와 그것에 기반을 둔 혁신적 실천을 필요로 한다는 명백한 사실을 증명한다. 근대 이후의 시대이면서 동시에 근대를 벗어나지 못한 포스트모던 세계에서 해러웨이는 자연을 문화적 과정을 거쳐 형성되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녀가 생각하는 자연은, 인간 그리고 사회 밖에서 과학이라는 중립적인 관찰을 통해 그 완전한 모습이 밝혀지기를 기다리는 객관적 실체라기보다는, 인간 그리고 사회 변화 과정과 연결되어 함께 변화하고 의미가 형성되는 문화적인 것이다. 이런 인간과 사회와 분리되지 않은 문화적 자연을 설명하기 위해 해러웨이는 기존 범주들의 경계선상에 있는 하이브리드적 실체, 곧 ‘이상한 경계물(odd boundary creatures)―원숭이, 사이보그 그리고 여성―’에 주목한다. 해러웨이가 제시하는 사이보그 등의 현실 문제들은 인간/기계라는 분리적이고 단절적인 사고로는 다룰 수 없는 하이브리드적인 실체들로 구성된 것이다. 

행위자-네트워크 이론(Actor-Network Theory, ANT)으로 유명한 과학인문학(humanites scientifiques)’ 연구가 브루노 라투르(Bruno Latour)의 근대성에 대한 비판 역시 마찬가지로 인공지능, 사이보그, 로봇을 비롯한 각종 하이브리드가 존재하는 현대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인간+로봇 또는 인간+인공지능과 같은 복합적 존재는 각각의 요소, 곧 인간과 과학기술의 단순한 또는 산술적 합이라기보다는 인간과 인공지능의 요소로 환원될 수 없는 효과, 능력, 차원 등을 지닌 새로운 하이브리드로 이해되어야 한다. 라투르는 ‘근대성의 부재’라는 주장을 통해, 전근대/근대, 과거/현재, 객체/주체, 문명/비문명, 서양/동양 등의 구분을 고정적으로 수용하는 이분법적 사고 또는 인식 방식을 비판한다. 라투르에 따르면 실재 세계는 근대주의 신화에서처럼 이분되어 있지 않다. 라투르에게 세계는 이분법적 단절로는 설명할 수 없는 하이브리드들이 증식해 가는 곳이다. 이러한 사실은 단지 신문 기사만 보더라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지구 생태계 위기, 지구 온난화 혹은 기후 변화, 인공지능, 무역 분쟁, 질병, 유전자 조작, 미세먼지 등등의 문제들은 과학, 정치, 사회, 윤리, 경제라는 어느 하나의 구획 안으로 수용될 수 없는 다양한 인간과 비인간 행위자들이 혼합되고 연결된 문제이다. ‘정밀 지식과 권력 실행―말하자면 자연과 문화―을 분리하는 단절(coupure)’로는 해결할 수 없는 하이브리드들이 확산하는 곳이 라투르가 이해하는 ‘실재’ 세계이다.

인간 신체를 보완하는 인공치아, 인공안구, 인공 골절 등의 보철들이 신체의 확장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이를 인간 지능의 차원에까지 확장한다면 AI는 인간 계산 또는 지적 능력의 확장 또는 강화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본래 손기술에 그 의미의 기원을 두는 기술(technology)은 인간 신체의 연장, 다시 말해 인간 신체의 현실적 한계를 극복하려는 확장의 성격을 지닌다. 인간 신체가 현실에서 부딪치는 한계들, 힘, 속도, 감각, 지식, 지혜, 예측 부문에서의 인간 능력의 강화로서 기술을 이해할 수 있다. 그 기술의 성과는 기계로 구현된다. 오늘날의 인간과 기계의 결합은 전통적인 기술의 의미에서 인간 능력의 발전 또는 성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새로운 하이브리드 존재 또는 행위자를 산출함으로써 새로운 인식 태도를 요구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인간과 기계로 구성된 존재는 인간과 기계의 단순한 산술적 합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새로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양재혁 (한성대 인문과학연구원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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