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을 지배하려는 의지는 기술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날 가능성이 커질수록 더욱 절박해질 것이다” 인공지능이 만들어 갈 미래의 모습을 그려보는 일은 일종의 수다이다. 미래 이야기는 과거 이야기보다 좀 더 쉽다. 일어난 일에 대한 말 속에는 어떤 식으로든 그것에 대한 평가가 수반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세인(世人)들의 미래 이야기는 수다 이상의 지위를 얻기 어렵다. 인공지능 미래 담론은 수다임에 틀림이 없지만, 그 주제가 핫하고 많은 유명인들이 이에 한 마디씩 거들고 있다는 이유에서 교양있는 수다로 인정받는다. 한편 수다는 논쟁으로 이어지기 십상인데, 그 논쟁에는 인공지능에 의한 인간 삶의 침탈을 경고하는 스티븐 호킹과 같은 유명인들, 그리고 그들의 주장에 반대하는 앨런 머스크와 같은 기술지상주의자들, 낙관론자들이 단골 손님으로 초대된다. 이러한 수다는 이윽고 좀 더 본질적인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는데, 그 때 늘 거론되는 말 들 중 한 가지가 “AI 포비아(phobia), AI 필리아(philia)”라는 개념 쌍이다. 수다의 지향점이 과거로 옮겨간다는 것은 대화의 종착역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뜻한다. 기술비평노선의 종착역을 알리는 단어쌍은 테크노포비아(Technophobia), 테크노필리아(Technophilia)다. 글의 처음에 등장한 인용구는 이 무렵 등장한다. “사람들은 기술을 정신적으로 장악하기를 바란다. 기술을 지배하려는 의지는 기술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날 가능성이 커질수록 더욱 절박해질 것이다” 사실 이 말은 1950년대, 그러니까 지금부터 무려 70여 년 전 독일의 라인 강에 위용을 드러낸 수력발전소를 바라보며 뱉은 하이데거라는 철학자의 시대진단이다. 전후 시대인 당시를 원자력 시대라고 규정한 이 철학자는 지금을 인공지능 시대라고 규정하는 우리들보다 발 빠르게, 그리고 더 처절하게 사유했다. 그리고 이제 그는 이 예언을 통해 지금 인공지능 시대를 날카롭게 진단하고 있다. 항상 반 박자 느린 인간의 이성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기술은 인간의 삶을 휘감고도 남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정신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기술이었다. 그래도 칸트가 말했듯 질문은 인간의 본성인지라, 기술에 대한 물음은 당시 독일의 사상계를 지배하고 있었다. 하이데거의 후기 철학도 “기술에 대한 물음”으로 점철되어 있다. “기술이란 수단일 뿐 그 자체로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다”라는 야스퍼스의 말에 그는 “그렇건 그렇지 않건, 우리는 기술에 붙들려 있다”고 답한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기술은 더 이상 단순한 수단이 아니다. 기술은 우리를 둘러싼 생명이 있는 분위기이며 공기이다. 그가 볼 때, 야스퍼스와 같은 사람은 이미 자가 호흡을 시작한,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최근 들어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기술이라는 정령(精靈)의 힘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기술은 그저 기술적인 것이 아니다.” 그는 원자력 시대를 살아가는 현 존재들에게 삶에 개입해 있음은 물론이거니와 이를 구성하고 있는 기술 그 자체에 대해 항상 깨어 성찰할 것을 당부한다. 기술의 사회적 침습은 곧장 학문의 세계로 이어진다. 하이데거의 스승이었던 훗설은 우리의 생활세계를 건조한 산술의 언어로 이해하려는 실증주의 일변도의 당시 학계의 분위기를 “학문의 위기”라 진단한다. 위기는 이념 학문의 사실 학문에로의 환원에서 시작된다. 그는 정갈한 숫자로 주변의 모든 것을 재단하여 보여주는 것이 외관상 세련되어 보이지만, 오히려 삶의 참모습을 가리는 차폐물이 된다는 주장으로 과학주의적 세계관에 응전하였다. 한편 응전은 다른 양상으로도 진행되었다. 살펴본 바와 같이 전혀 다른 패러다임을 제시하면서 공격 진영의 위용에 맞불을 놓는 전략도 있는 한편, 상대방의 장점을 흡수하여 자신의 에너지로 내재화하면서 자신의 영역을 더 공고히 하는 방법도 있다. 예컨대 훗설과 같은 시대를 산 딜타이는 지향성과 주관성을 기치로 실증주의와 대결 구도를 펼친 그와는 다른 행보를 보인다. 삶의 철학자 딜타이의 “정신과학”이라는 용어를 음미해 보라! “정신-과학”은 어떤 사람에게는 형용모순처럼 들릴 수도 있다. 딜타이는 수학이라는 공용어를 무기로 세력을 넓히고 있던 자연과학으로부터 인문학의 고유영역을 확보하기 위해 그것의 보편적 방법론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보편적 방법론의 유효성을 과학으로부터 목격한 그는 이러한 방법론의 도입을 통해 자기 독백적 성향을 지닌 심리주의를 극복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는 다른 한편으로 체험, 이해 등과 같은 키워드로 정신과학의 고유한 방법론을 수립함으로써 맹렬히 뻗어오는 자연과학의 손길로부터 유유히 벗어난다. 이러한 전략은 다름 아닌 근대 계몽의 완성자 칸트에게서 따온 것이다. 노년의 형이상학자 칸트는 그의 오랜 벗 멘델스존에게 형이상학을 갈아 없애버린 자(Allerzermalmer)라는 평을 듣는다. 어쩌면 그의 인생을 부정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는 이 표현은 역설적이게도 칸트 철학의 토양에서 성장한 소위 칸트 키드(Kant Kid) 카시러에 의해, 그것도 하필이면 칸트를 기리는 학술지 칸트 연구(Kant-Studien)에서 다시 언급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가난한 시간 강사였음에도 불구하고 ‘형이상학’ 전공 교수 자리가 아니라는 이유로 청빙마저 마다한 이력이 있는 그에게 이는 너무 가혹한 평가가 아닐 수 없다. 당시의 상황도 하이데거, 훗설, 딜타이가 경험하였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술의 최전선에 닿아있는 과학은 칸트의 시대에도 혁신을 거듭하며 발전하고 있었다. 자연과학자 뉴튼은 최고의 스타였고 칸트는 그의 팬이었으리라. 칸트가 평가하길 “형이상학은 끝나지 않은 전쟁터에서 여전히 암중모색”을 거듭하고 있었다. 뉴튼의 역학이 그러하듯, 아르키메데스적 고정점 수립만이 형이상학을 굳건한 학문의 길에 들어설 수 있게 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그는 그를 영원한 스타로 만들어 준 “순수이성비판”을 집필하였다. 멘델스존이 볼 때 사유하는 자들의 발자국이 빚어 낸 오솔길 위에 수학이라는 계측기와 자연과학이라는 트럭을 동원해 고속도로를 낸 자가 칸트였을 것이다. 철학의 아버지 데카르트의 후예들은 그렇게 칸트를 욕하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데카르트는 어떠했을까? 과학혁명의 소용돌이 속 그의 철학은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남았을까? 신의 목적이 전 우주와 우리의 정신까지 지배하고 있을 때, 자연에는 자연만의 법칙이 있다는 세계관이 등장하였다. 이윽고 이 기계론적 세계관이 힘의 균형을 깨뜨리면서 근대라는 과학의 시대가 열렸다. 기계론이 목적론을 대체해 가고 있을 때, 데카르트는 마음과 세계, 즉 정신과 물질을 구분하고, 물질의 세계는 자연과학의 지배를 받는 영역임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전략을 취한다. 이 전략의 숨은 목적은 ‘생각하는 주체’라는 정신 세계의 최후의 보루를 성역화하는 것이었다. 살을 내어주고 뼈를 지키는 전략이 적중한 것일까. 이렇게 지켜낸 ‘생각’이라는 보루로부터 근대의 학문은 다시 꽃을 피웠다. ‘생각’은 과학혁명 응전기의 전리품이다. 살펴본 바와 같이 기술이란 존재는 항상 다른 얼굴을 하고 우리 주변을 지배해왔다. 그리고 철학은 태생상, 그런 기술을 항상 마주할 수 밖에 없었다. 두 눈은 크게 떴지만 빈곤하기 짝이 없는 외양을 한 철학은 어마무시한 권력체인 기술에 항상 매몰되는 듯이 보였으나, 때로는 기술에 마주 서고, 때로는 체질을 현격히 변화시키며 생명을 연장하고 몸집을 키워왔다. 마찬가지로 인공지능 기술의 태동기에 한 몫을 하였던 철학이 이제는 그로부터 버림받은 것 같아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싸워나갈 미래의 모습에 왠지 모를 기대감이 생기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역사에 있다. 인공지능 수다의 원동력은 미래에서 다가오는 전조(前兆)에 대한 한계 지워진 반응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원자력 기술이 가져온 변화를 몸소 체험한 하이데거의 통찰은 지금 우리에게 더 소중하게 다가온다. 그는 경험을 했지만 우리는 아직이기 때문이다. “일어났던 것은 후에 다시 일어날 것이고, 행했던 일은 또 행해지게 될 것이다. 하늘 아래에 새 것은 없다.”(전도서 1장 9절) 김형주(중앙대 인문콘텐츠연구소 HK교수)
[칼럼이 있는 AI톡]⑩ 우리들의 기술응전기(技術應戰記) <칼럼이 있는 AI톡 <인사이트 <기사본문 - AI타임스 (aitime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