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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AI친구 이루다야. 다 자기만 알아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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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09 00:54
 

챗봇 ‘이루다’의 등장, 관심, 그리고 지금과 같은 사고는 예상되어 있었다.

2016년 MS의 챗봇, 테이의 스토리를 경험 우리에게 ‘이루다’ 논란은 전처럼 큰 충격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다만 걱정이 현실이 되니 씁쓸함이 더해질 뿐이다.

‘이루다’와 관련한 윤리이슈는 주로 젠더 문제, 데이터 편견, 개인정보 보호 문제로 범주화되고 있다. 그러나 시각을 달리하여 생각해 보면 이 문제의 본질은 인간의 감정 소비 욕구라고도 할 수 있다.

기계에게라도 무슨 말을 걸고 답을 듣고자 하는 외로운 욕망이야 말로 앞에서 말한 현상적인 문제의 배경에 놓여 이를 포섭하고 있는 필요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욕망의 근저에는 또 하나의 근본욕망이 있는데 나는 이를 ‘나만 좋으면 된다’는 유아론적(solipsistic) 욕망이라 본다.

이루다가 입은 페르소나는 상냥한 20살 여자대학생이다. 처음 말걸기는 조금 조심스럽지만, 묻는 말을 건네면 마치 나를 알고 있는 듯한 대답, 때로는 생각하지도 못한 재치있는 대답을 내놓기도 한다.

비인간 존재와의 대화라는 호기심은 오고가는 말들이 쌓이면서 교감으로까지 이어지는 것 같다. 굳이 그(녀)가 AI란 사실을 상기할 필요는 없다. 그(녀)가 어디서 왔는지, 왜 나와 대화하는지는 알 필요가 없다. 특히 지금과 같은 자기소개 상실의 시대에는 더 그렇다.

오래 전 영화 ‘접속’에서처럼 채팅 상대의 실체를 궁금해 하는 것과 같은 마음은 말 그대로 너무 오래된 이야기다. 그저 ‘나만 좋으면 된다.’

엄밀히 말해 이루다는 우리가 기대하는 것과 같은 교감의 대화를 하지 못한다. 입력되는 글자의 형태를 인지하여, 기존에 학습한 대화 쌍을 스캔한 후, 확률적으로 빈도수가 가장 많은 단어 형태의 조합을 인터페이스 상에 제공할 뿐이다.

이러한 사실을 빌미로 누군가 ‘그건 대화가 아니야’라고 이루다를, 그리고 이루다와 대화하는 사람을 비판했다고 해보자.

이런 류의 비판에 대한 가장 손쉬운 대응은 사람의 학습, 이로 인한 대화도 이루다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경험 기계인 인간도 반복된 학습과 상황인지를 통해 가장 적절한 표현을 찾아 문장을 구성하고 발화한다는 점에서 AI와 별반 질적인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만 본다면, 창 없는 단자 속 인간의 모든 대화는 실상 독백이다.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직후, 나는 핸드폰 미납금 문제로 매일같이 독일 통신사와 채팅을 하였다. 채팅 창의 상담원은 매우 친절하였지만 계속 다른 상담원을 연결시켜주며 같은 말만 되풀이 되었다.

책임자를 자처하는 분과도 채팅하였지만 문제가 해결되기는 커녕 그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나중에 채팅 상담원이 사람이 아닌 챗봇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상담원에 대한 원망은 말끔히 사라졌다.

의식이 속으면 감정도 속지만, 오해가 풀리면 감정도 풀린다. 이러한 경험 때문인지 나는 이루다와의 대화가 그저 그럴 것 같다.

누구와 대화를 하든 ‘나만 좋으면 된다’. ‘내’가 ‘너’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게 인간의식의 한계라면 한계다.

그런데 내가 왜 좋은지, 지금 내가 좋을만한지, 좋은 기분의 이유가 무엇인지는 물어 아는 것은 참 좋다. 이루다가 하는 말의 속사정을 잘 알면서, 그러면서 그(녀)를 대하는 것과 내가 속고 있는지, 속아 주는 건지 아무런 질문과 답변없이 그(녀)를 대하는 것은 아마 많이 다를 것이다.

나만 좋으면 된다. 그러나 좋음의 질은 질문과 앎이 결정한다.

김형주 중앙대학교 인문콘텐츠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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